로마 교황/201대~현직 교황

바오로2세

Mintaka5 2025. 5. 18.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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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피에트로 바르보(Pietro Barbo)

211대 교황 바오로2세(Paulus PP. II, 1417~1471, 재위1464~1471)

  전임 교황 당시 재직 교황 후임 교황
직위 210대 교황 211대 교황 212대 교황
출신 시에나 공화국(코르시냐노) 베네치아 공화국, 베네치아 제노바 공화국, 첼레리구레
명칭 비오2세
Pius PP. II
바오로2세
Paulus PP. II
식스토4세
Sixtus PP. IV
생몰년도 1405.10.18 ~ 1464.08.14 1417.02.23 ~ 1471.07.26 1414.07.21 ~ 1484.08.12
콘클라베기간 4일
(1458.08.16~1458.08.19)
3일
(1464.08.28~1464.08.30)
4일
(1471.08.06~1471.08.09)
재위 1458.08.19 ~ 1464.08.15 1464.08.30 ~ 1471.07.26 1471.08.09 ~ 1484.08.12

교황 바오로2세, 출처-위키피디아

출생

1417년 2월 23일 베네치아 공화국 베네치아(Venezia)에서 아버지 니콜로 바르보(Niccolò Barbo, ?~1429)와 어머니 폴리세나 콘둘머(Polissena Condulmer, ?~1467)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211대 교황으로, 외삼촌인 교황 에우제니오4세(Eugenius PP. IV, 1383~1447, 재위1431~1447)의 영향을 받아 성직자의 길을 걷고 이후 삼촌이 1431년 207대 교황으로 즉위하게 되면서 승품이 매우 빨라져 23세가 되던 1440년 부제급 추기경에 서품될정도로 고속 승진한다. 외삼촌의 후임교황으로 즉위하는 니콜라오5세와 갈리스토3세때까지는 나름 이전만큼의 영향력을 발휘하는데, 온화한 성품을 가졌지만 특유의 사치와 호화스러움, 권위를 추구하던 태도로 역시 독선적 정치행태를 추구했던 비오2세(Pius PP. II, 1405~1464, 재위1458~1464)와는 상당한 마찰을 일으켜 영향력이 많이 떨어진다. 1464년 비오2세가 선종하고 열린 콘클라베에서 교황으로 선출되어 바오로2세로 즉위한다. 

 

성직

무역으로 큰 돈을 벌은 바르보 가문에서 태어나 넉넉하게 자라오면서 어릴때부터 외삼촌이였던 가브리엘레 콘둘머 추기경(미래의 교황 에우제니오4세)으로부터 인문학 교육을 받고 성직 교육을 받기위해 베네치아에서 로마로 이주하게 된다. 로마에서 성직교육을 마친 다음 사제 서품을 받고 교황청에서 성직자로서의 업무를 맡아 경력을 쌓기 시작하는데, 삼촌인 가브리엘레 콘둘머 추기경이 1431년 3월 콘클라베에서 교황으로 선출되어 에우제니오4세(Eugenius PP. IV, 1383~1447, 재위1431~1447)로 즉위하면서 고속 승진을 하게 된다. 삼촌 에우제니오4세의 치세 중반인 1440년 피에트로는 부제급 추기경(추기경 품계 : 주교급 추기경>사제급 추기경>부제급 추기경)에 서임되고 1451년 교황 니콜라오5세(Nicolaus PP. V, 1397~1455, 재위1447~1455)로부터 비첸차 교구 교구장에 임명되어 사목활동을 하게 되고 1458년에 교황청 총서기가 되면서 사실상 교황청의 행정 전반을 담당하는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다. 

 

1464년 콘클라베

1464년 8월 15일 교황 비오2세(Pius PP. II, 1405~1464, 재위1458~1464)가 선종하면서 콘클라베가 소집된다. 1464년 8월 28일 공식적인 콘클라베가 시작되면서 추기경단이 교황추천을 하는데, 총29명의 추기경 선거인단중 10명이 불참한 19명의 추기경이 투표를 하였고 이번 콘클라베는 이전 교황 비오2세의 족벌주의로 인한 혼란으로 인해 추기경 임명과 친족에 대한 성직증여에 대한 추기경단의 동의를 구해야한다는 조건하에 교황 후보를 추천하였다. 8월 30일 첫 투표때 피에트로 바르보 추기경이 득표1위를 하였지만 2/3에 미치지 못하는 11표를 받아 불발되어 다시 재투표에 들어가고 2차 투표때 2/3이상의 표를 획득해 교황으로 선출된다. 교황명은 '바오로(Paulus)'를 사용하여 바오로2세로 명명하여 즉위하게 된다. 

 

교황

I. 행정 개혁

즉위 이후 교황령 내 지방 행정 개혁에 착수해 부패, 공직 거래를 금지하였고, 교황의 공문서를 맡은 기관을 1466년 폐쇄시켜 앞선 공직 거래를 금지하는 본보기를 삼게 된다. 그리고 1469년엔 로마 시민들의 동의를 얻어 로마 법령을 개정하기에 이르면서 더욱이 재물을 통한 로비로 타락한 관리들을 처벌하기에 이르고 1470년 법인세 납부 기준을 15년에서 5년으로 축소시켜 교황청 내 세금구조까지 손봐서 재정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II. 권위의식

앞선 부패 척결, 재물을 통한 로비 금지, 법인세 부과기준 변경등 눈에 보이는 정책으로 로마 시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제스처가 큰 정책들을 펼치지만 정작 본인인 교황 바오로2세는 화려하고 호화스러운 자신의 궁전에서 사치와 더불어 큰 돈이 드는 오락거리를 즐기는 식으로 교황직의 신성성과는 거리가 먼 행동을 취하자 전임 교황 비오2세의 조카인 자코모 암만나티 피콜로미니(Giacomo Ammannati Piccolomini, 1422~1479)추기경과 베사리오네(Bessarione, 1403~1472)추기경으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한다. 교황 바오로2세는 더욱이 추기경들을 휘어잡기 위해 절대적이고 독재적인 모습을 보여 교황이 추기경들을 지배하려는 본인의 욕망을 강조하고자 교황으로서의 권위를 세우고자 예식의 규모를 크게 하고 스스로를 화려하게 치장하고 값비싼 보석을 수집하는등의 행보를 보인다. 

 

III. 유대인

위에도 언급했듯이 바오로2세는 오락거리에 관심이 많았는데 특히 경마에 관심이 많아서 로마 비아 델 코르소(Via del Corso)라는 1.6km에 달하는 라타 거리에서 경마 경기를 개최할 정도로 열정적이였지만, 이 경기는 바오로2세가 유대인들을 알몸상태로 라타 거리를 질주하도록 강요하는 것으로 유럽인들의 웃음을 유발하기위한 오락거리로 전락시키고 만다. 더욱이 유대인들에게 공공장소에 머무를 시 노란색 손수건을 착용시키게 하여 구별할 수 있게끔 하는데, 이러한 행위는 480여년이 지난 1939년에 발발하는 제2차 세계대전(1939.09.01~1945.09.02)때 유대인 홀로코스트 시기때도 똑같이 사용되어버린다. 

 

선종

바오로2세는 1471년 7월 26일, 54세의 나이에 갑작스러운 심근 경색으로 인해 선종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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