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교황/201대~현직 교황

비오3세

Mintaka5 2025. 5. 16.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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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프란체스코 토데스키니 피콜로미니(Francesco Todeschini Piccolomini)

215대 교황 비오3세(Pius PP. III, 1439~1503, 재위1503.09.22~1503.10.18)

  전임 교황 당시 재직 교황 후임 교황
직위 214대 교황
알렉산데르6세
Alexander PP. VI
1431~1503
재위1492.08.11~1503.08.18
215대 교황
비오3세
Pius PP. III
1439~1503
재위1503.09.22~1503.10.18
216대 교황
율리오2세
Iulius PP. II
1443~1513
재위1503.10.31~1513.02.21
출신 아라곤 왕국, 발렌시아 시에나 공화국, 시에나 제노바 공화국, 알비솔라
명칭 알렉산데르6세
Alexander PP. VI
비오3세
Pius PP. III
율리오2세
Iulius PP. II
생몰년도 1431.01.01~1503.08.18 1439.05.29~1503.10.18  1443.12.05~1513.02.21
콘클라베기간 6일
(1492.08.06~1492.08.11)
7일
(1503.09.16~1503.09.22)
2일
(1503.10.31~1503.11.01)
재위 1492.08.11~1503.08.18 1503.09.22~1503.10.18 1503.10.31~1513.02.21

비오3세, 출처-위키피디아

출생

1439년 시에나 공화국 시에나(Siena, 현 이탈리아 토스카나주 도시)에서 아버지 조반니 테데스키니(Giovanni Tedeschini, ?~1460)와 어머니 라우도미아 피콜로미니(Laudomia Piccolomini, 1410?~1445)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215대 교황이자 210대 교황인 비오2세의 조카로 페루자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박사학위를 받은 뒤 교황청으로 들어가서 상당히 이른 나이인 21살에 대주교, 추기경에 서임되고 뛰어난 외국어 능력과 외교력으로 교황 특사로 1461년 마르케 특사, 1471년 레겐스부르크 회의 교황 특사등으로 파견되는등 능력을 인정받게 된다. 추기경으로서 1464년, 1484년, 1492년, 1503년 콘클라베에 참석하였고(1471년 식스토4세가 선출되는 콘클라베는 참석하지 않음)1503년 콘클라베에서 교황으로 선출되어 비오3세로 즉위하여 전임 교황 알렉산데르6세의 성직매매금지와 족벌주의 타파등 개혁적 성향을 드러내고자 의지를 다지지만 이미 좋지않던 건강에 통풍까지 겹쳐 앓다가 즉위한지 26일이 지난 1503년 10월 18일 선종한다. 비오3세는 역대 8번째로 재위기간이 짧은 교황이기도 하다. 

 

성직

페루자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박사학위를 받고 졸업한 뒤 교황청에 들어가 사도 증인이 되어 사목하는데, 1460년 2월 프란체스코의 삼촌인 교황 비오2세(Pius PP. II, 1405~1464, 재위1458~1464)에 의해 대주교로 승품되고 대주교가 된지 불과1개월만인 1460년 3월 부제급 추기경(추기경 품계 : 주교급 추기경>사제급 추기경>부제급 추기경)에 서임되기까지 한다. 든든한 삼촌의 배경덕분에 프란체스코는 마르케 특사로 임명되어 페사로(Pesaro, 마르케 지역 도시)로 향하게 된다. 로마를 왔다갔다 반복하면서 페사로에 머물면서 사목활동과 특사활동을 병행하다가 1463년 이탈리아 전역에 전염병이 퍼지면서 가족들이 머무르던 피엔차(Pienza)로 가기도 한다. 1471년엔 독일어에 능통한 덕분에 신성로마제국 레겐스부르크에 특사로 보내지게 되고 회의에 참석하여 삼촌 비오2세때부터 준비했던 오스만 십자군 원정을 촉구하여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이 결정나게 된다. 

 

콘클라베

I. 1464년 콘클라베

1464년 8월 15일 삼촌인 교황 비오2세가 59세의 나이로 안코나에서 오스만 제국과의 십자군 원정을 준비하던 중 선종하면서 콘클라베가 소집된다. 콘클라베는 비오2세가 선종한지 2주일가까이 지난 1464년 8월 28일에 열렸고, 총29명의 추기경 선거인단중 10명이 불참한 19명의 추기경이 콘클라베에 참석하여 셋째날인 8월 30일 첫투표가 열리고 그날 바로 결과가 나는데, 피에트로 바르보 추기경이 선출되면서 바오로2세(Paulus PP. II, 1417~1471, 재위1464~1471)로 명명하여 즉위하게 된다. 프란체스코 피콜로미니 추기경은 1471년 212대 교황 식스토4세(Sixtus PP. IV, 1414~1484, 재위1471~1484)가 선출되는 콘클라베에는 참석하지 않고 1484년 213대 교황 인노첸시오8세(Innocentius PP. VIII, 1432~1492, 재위1484~1492)와 1492년 교황 알렉산데르6세(Alexander PP. VI, 1431~1503, 재위1492~1503)가 선출되는 콘클라베에는 참석한다. 

 

II. 1503년 9월 콘클라베

1503년 8월 18일 교황 알렉산데르6세(Alexander PP. VI, 1431~1503, 재위1492~1503)가 선종하자 콘클라베가 소집된다. 그러나 당시 이탈리아 전쟁이 한창 진행중이던 터에 알렉산데르6세의 장례가 미뤄지면서 콘클라베도 1개월 뒤인 1503년 9월 16일 열리게 된다. 총39명의 추기경 선거인단이 참석하였고 콘클라베가 진행되던 때에도 프랑스 루이12세(Louis XII, 1462~1515, 재위1498~1515)추기경단들과 스페인 왕 페르난도2세(Ferdinando II, 1452~1516, 재위1479~1516)추기경단, 전임 교황 알렉산데르6세의 추기경단등이 경쟁하는데 특히 알렉산데르6세의 조카인 체사레 보르자(Cesare Borgia, 1475~1508)추기경이 이끄는 21명의 이탈리아 추기경들이 절반을 넘었다. 그러나 체사레 보르자 추기경이 병을 얻어 점점 추기경들을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병약해지면서 1차투표때 3위를 했던 프란체스코 토데스키니 피콜로미니 추기경이 9월 22일 콘클라베 시작 일주일만에 교황으로 선출된다. 교황명은 자신의 삼촌 비오2세의 이름을 따서 비오3세로 명명하고 즉위하게 된다. 

 

 

교황

비오3세는 이전부터 교황청 내에서 오랜기간 행정일을 맡으면서 연륜이 쌓일데로 쌓이고 나이도 즉위당시 60세가 훌쩍 넘었는데다가 온화한 성품을 가졌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콘클라베 소집 이전부터 고령으로 인해 건강이 좋지 않았는데, 1503년 9월 22일 선출되어 즉위한다음 스스로 개혁안을 만들어 전임 교황 알렉산데르6세가 취했던 성직매매와 족벌주의를 혁파하고자 쇄신을 단행하기로 마음먹었지만, 건강악화로 인해 중요 행사들을 생략하고 휴식에 들어가지만 10월 13일 통풍이 발병해 몸져눕게 된다.

 

 

선종

통풍 발병후 계속 건강이 악화되다가 1503년 10월 18일 64세의 나이로 선종한다. 즉위한지 26일밖에 되지 않았던 시점이였고 이후 콘클라베가 재소집된다. 역대 교황중 8번째로 재위기간이 짧은 교황으로 기록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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