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교황/201대~현직 교황

율리오2세

Mintaka5 2025. 5. 15. 14:50
반응형

본명 : 줄리아노 델라 로베레(Giuliano della Rovere)

216대 교황 율리오2세(Iulius PP. II, 1443~1513, 재위1503~1513)

  전임 교황 당시 재직 교황 후임 교황
직위 215대 교황 216대 교황 217대 교황
출신 시에나 공국, 시에나 제노바 공화국, 알비솔라 피렌체 공화국, 피렌체
명칭 비오3세
(Pius PP. III)
율리오2세
 Iulius PP. II
레오10세
 Leo PP. X
생몰년도 1439.05.29~1503.10.18 1443.12.05~1513.02.21 1475.12.11~1521.12.01
콘클라베기간 7일
(1503.09.16~1503.09.22)
2일
(1503.10.31~1503.11.01)
8일
(1513.03.04~1513.03.11)
재위 1503.09.22~1503.10.18 1503.11.01~1513.02.21 1513.03.09~1521.12.01

율리오2세, 출처-위키피디아

출생

1443년 제노바 공화국 알비솔라(Albisola)에서 아버지 라파엘로 델라 로베레(Raffaello della Rovere, 1423~1477)와 어머니 테오도라 디 조반니 마니롤라(Teodora di Giovanni Manirola, 1425~1480)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216대 교황이다. 삼촌인 교황 식스토4세의 총애를받아 28세에 추기경에 서임되었고 뛰어난 외교력을 통해 영향력을 키워 1503년 콘클라베에서 교황으로 선출되지만, 콘클라베에서 자신을 지지해주고 보르자 가문의 보호를 약속했던 체사레 보르자(Cesare Borgia, 1475~1508)를 즉위 이후 배신하고 보르자 가문을 지우기위해 모든 수단방법을 동원하여 해체시킨다. 캉브레 동맹을 체결해 당시 강국 군주들과 손잡아 베네치아 공화국을 사실상 분해시켰으며 그 사이에도 동맹 내 분열로 서로 치고받고 싸우다가 공의회를 따로 개최하는등(피사 공의회, 라테라노 공의회)의 행보를 보이면서 교황으로서의 권위는 회복했지만 70세의 나이로 선종한다. 

 

성직

어려서부터 프란치스코회에 입회하여 성직 교육을 받고 라페루즈 수도원에서 다양한 분야를 배우며 과학에 특히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1471년 사제에 서품되었고 동시에 당해에 삼촌이였던 교황 식스토4세(Sixtus PP. IV, 1414~1484, 재위1471~1484)로부터 불과 28세의 나이에 추기경으로 서임된다. 삼촌의 총애를 받으며 교구들을 맡음과 동시에 교황 특사로 프랑스 왕 루이11세(Louis XI, 1423~1483, 재위1461~1483)왕정에 파견되어 직무를 수행하면서 영향력이 점차 커지게 된다. 1483년에는 집사였던 베르나르디노 데 쿠피스의 아내 루크레치아 노르만를 통해 사생아(딸) 펠리체 델라 로베레(Felice della Rovere,1483~1536)를 낳기도 한다. 프랑스에서 대사로 있을 때 1483년 루이11세가 사망하고 즉위한 어린 샤를8세(Charles VIII, 1470~1498, 재위1483~1498)는 어린 나이로 인해 누나였던 안 드 보주(Anne de Beaujeu, 1461~1522)가 섭정을 맡고 이후 샤를의 나이가 차면서 친정을 시작함에 따라 줄리아노 로베레 추기경은 샤를8세에게 이탈리아 반도로 쳐들어가 나폴리 왕국을 점령하도록 촉구하여 이탈리아 전쟁(1494~1498)가 촉발되게 된다. 

 

 

콘클라베

I. 1503년 9월 콘클라베

교황 알렉산데르6세(Alexander PP. VI, 1431~1503, 재위1492~1503)가 1503년 8월 18일 선종함에 따라 콘클라베가 소집된다. 콘클라베 날짜는 1503년 9월 16일에 시작되어 22일까지 7일간 지속되었는데, 1494~1498년 당시 프랑스 샤를8세의 이탈리아 침공으로 인한 전쟁으로 인해 주변 국가들의 긴장감이 고조되어있었고 콘클라베가 열리려고 하는 시기때 군사위협을 행하자 콘클랍베가 열리는 것이 상당한 지연이 발생하게 되어 알렉산데르6세 사후 1개월뒤에야 열리게 된다. 콘클라베는 프랑스 왕 샤를8세의 후임 프랑스 왕이 되는 루이12세(Louis XII, 1462~1515, 재위1498~1515)의 추기경단 7명, 스페인 왕 페르난도2세(Ferdinando II, 1452~1516, 재위1479~1516)의 추기경단 11명, 교황 알렉산데르6세의 추기경단 21명등으로 나뉘어져 경쟁한다. 그렇게 총39명의 추기경 선거인단으로 구성되었고, 알렉산데르6세의 사생아였던 체사레 보르자(Cesare Borgia, 1475~1507)추기경이 유력한 후보였지만 체사레 추기경이 갑자기 병에 걸려 몸이 약해지면서 점점 투표권에서 밀려났고 나머지 후보들도 건강악화로 인해 점차 프란체스코 피콜로미니 추기경에게 표가 몰려 1503년 9월 22일에 교황으로 선출되어 비오3세로 즉위하게 된다. 

 

II. 1503년 10월 콘클라베

교황 비오3세(Pius PP. III, 1439~1503, 재위1503.09.22~1503.10.18)가 즉위한 지 1개월도 채 되지않아 선종해버린다. 이에 다시 1503년 10월 콘클라베가 소집되는데 콘클라베 역사상 가장 짧은 10시간만에 교황이 선출된다. 이는 1503년 10월 31일 오후에서 11월 1일 사이에 선출된 것으로 총44명의 추기경단중 38명이 참석하였는데 특히 비오3세는 짧은 재위기간동안 추기경조차 임명하지 못했기에 사실상 이전 콘클라베 구도와 상당히 비슷한 흐름이였기에 오히려 투표가 빨라졌다는 평이 있다. 그렇게 콘클라베에서 줄리아노 델라 로베레 추기경이 교황으로 선출되어 율리오2세로 명명한 후 즉위하게 된다. 

 

교황

I. 토사구팽

즉위 직후 이전에 콘클라베에서 유력 교황 후보였던 체사레 보르자(Cesare Borgia, 1475~1507) 추기경이 줄리아노 로베레 추기경에게 지원하여 교황 후보 지지를 약속하여 지지한 후 로베레 추기경이 교황에 선출되게 되지만, 정작 율리오2세는 즉위한 이후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오히려 보르자 가문을 정리하여 유럽내 강력한 가문들과 연결되어 복잡한 정치구도를 끊어버리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추진하게 된다. 그렇게 교황군과 외교력을 동원해 보르자 가문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체사레 보르자의 권위를 약화시키고 체포령을 내린다. 보르자 추기경은 교황령 로마를 빠져나와 스페인령이였던 나폴리로 도망치지만 당시 나폴리를 통치하던 스페인 왕 페르난도2세는 비밀리에 나폴리 총독 곤살로 데 코르도바()에게 지령을 내려 보르자 추기경을 체포하라고 지시하고, 보르자 추기경은 1504년 나폴리에서 체포되어 스페인으로 이송되어 수감되는데, 1506년 탈옥에 성공하여 처남이 통치하던 나바라로 가서 처남 호아네스3세의 보호를 받고 지내지만 1년뒤인 1507년 나바라 총사령관이 되지만 반란토벌과정에서 적병에 의해 전사함으로서 생을 마감한다. 

 

II. 캉브레 동맹

율리오2세는 즉위 후 교황권을 확실하게 잡고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시키고자 하는 야망이 있었는데, 이는 즉위5년이 지난 1508년, 율리오2세는 프랑스 왕 루이12세(Louis XII, 1462~1515, 재위1498~1515)와 신성로마황제 막시밀리안1세(Maximilian I, 1459~1519, 독일왕재위1486~1519, 황제재위1508~1519), 스페인 왕 페르난도2세(Ferdinando II, 1452~1516, 재위1479~1516)와 함께 캉브레 동맹을 결성한다. 각자 군주와 교황은 각각의 목표한 바가 비슷했고 명분을 모을 수 있었기에 베네치아 공화국을 공격하여 점령한 후 땅을 분할하여 나눠갖기를 원했다. 베네치아 공화국은 이에 대비를 하여 군비를 증강하지만 강대국들의 연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1509년 5월 아냐델로 전투(The battle of Agnadello, 1509.04.15)에서 처참하게 패배하여 후퇴를 거듭하다가 1509년 9월 파도바 공성전에서 베네치아가 차츰 위치를 잡는가 싶었지만 결정적으로 1509년 12월 폴레셀라 전투(The battle of Polesella, 1509.12.22)에서 패배하면서 1510년 2월 항복하게 된다. 그러나 율리오2세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더 큰 욕심을 품고 동맹국이였던 프랑스가 베네치아 항복이후 이탈리아 반도에 미칠 영향력을 경계해 프랑스 루이12세에게 성무 정지 조치를 받게되면서 교황군과 프랑스군이 부딫히게 된다. 루이12세는 신성로마황제 막시밀리안1세와 긴밀히 협조해 교황 율리오2세를 폐위시키기로 결정하여 1511년 피사 공의회를 소집하고 이에 맞서 교황 율리오2세는 라테라노 공의회를 소집한다.   

 

III. 1506년 스위스 근위대 창설

1505년 율리오2세는 교황청을 호위하는 근위대를 창설하기위해 스위스 연방국에 스위스 출신 용병을 보내달라고 요청한다. 그렇게 1506년 1월 22일 로마에 다달았고 공식 창설되기에 이른다. 근위대 대장은 카스파르 폰 실레넨(Kaspar von Silenen, 1467~1517)으로 하여금 첫번째 부대 150명과 함께 교황 율리오2세에게충성을 맹세한다. 

 

선종

토사구팽과 캉브레 동맹, 공의회등으로 교황령의 정치적 안정은 꾀했지만 1513년 2월 21일 70세의 나이로 고열로 선종한다.

반응형

'로마 교황 > 201대~현직 교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알렉산데르6세  (0) 2025.05.16
비오3세  (0) 2025.05.16
201대~현재까지 교황 목록  (0) 2025.05.14
클레멘스7세  (0) 2025.05.13
바오로3세  (0) 2025.0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