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 :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Jorge Mario Bergoglio)
266대 교황 프란치스코(Franciscus PP., 1936~2025, 재위2013~2025)
전임 교황 | 당시 재직 교황 | 후임 교황 | |
직위 | 265대 교황 | 266대 교황 | 267대 교황 |
출신 | 바이마르 공화국 바이에른 주, 마르크틀암인 |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
명칭 | 베네딕토16세 Benedictus PP. XVI |
프란치스코 Franciscus PP. |
레오14세 Leo PP. XIV |
생몰년도 | 1927.04.16 ~ 2022.12.31 | 1936.12.17 ~ 2025.04.21 | 1955.09.14 ~ |
콘클라베기간 | 2일 (2005.04.18~2005.04.19) |
2일 (2013.03.12~2013.03.13) |
2일 (2025.05.07~2025.05.08) |
재위 | 2005.04.19 ~ 2013.02.27 | 2013.03.13 ~ 2025.04.21 | 2025.05.08~현직 |
출생
1936년 12월 17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에서 아버지 마리오 호세 베르고글리오(Mario Jose Bergoglio, 1908~1959)와 어머니 레히나 마리아 시보리(Regina Maria Sivori, 1911~1981)사이에서 태어났다. 사목표어는 'Miserando atque Eligendo(자비로이 부르시니)'이다.
배경
266대 교황으로 12년간 교황청을 통치했던 로마의 주교로서 카톨릭 역사상 최초의 아메리카(북아메리카, 남아메리카)출신 교황이다. 1936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중위 계층의 부모 밑에서 태어났고 1953년부터 사제가 되기로 결심해 예수회에 들어가 교육(철학, 인문학, 신학, 각종언어)과 수련과정을 마치고 1969년 사제 서품을 받는다. 사제가 되고난 이후에도 스페인에서 계속 교육을 받고 1973년부터 6년간 아르헨티나 예수회 관구장으로 역임한 뒤 산미겔 대학원 교수, 독일 유학을 거쳐 1992년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 보좌 주교로 임명됨과 동시에 주교 수품을 받는다. 1997년 부교구장 대주교를 거쳐 1998년 아르헨티나 교구장 콰라시노 추기경이 선종하면서 베르고글리오 대주교가 교구장직을 승계받고 2001년 교황 요한 바오로2세(Ioannes Paulus PP. II, 1920~2005, 재위1978~2005)로부터 사제급 추기경에 서임되기에 이른다. 이후 2013년 당시 재직중이던 교황 베네딕토16세(Benedictus PP. XVI, 1927~2022, 재위2005~2013)가 고령으로 인한 직무가 어렵다고 판단해 사임함으로서 소집된 콘클라베에서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이 교황으로 선출되면서 성 프란치스코(Sanctus Franciscus, 1181~1226)로부터 이름을 따와 프란치스코로 명명하여 즉위하게 된다. 즉위이후 교황청을 개혁하여 보수적 관례를 깨고 상당히 진보적인 개혁을 했다는 평을 듣는데, 재정의 투명성을 강화하기위한 재정개혁, 형법개혁, 외교를 통한 평화를 추구하였다. 그 외에도 아르헨티나 군부독재(1976~1983)정권에 결탁했다는 의혹과 성범죄 묵인 주교를 옹호했다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스스로 실수를 인정하여 용서를 구하고 행동으로서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려 노력한 교황으로 남아있다.
초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나 어릴적 화학공학자, 나이트클럽 경비원등으로 일하다가 1953년 사제가 되겠다 결심하여 예수회에 들어가 신학을 포함한 다양한 교육과 함께 성직자가 되기위한 수련과정을 마쳐 1969년에 33살의 나이로 사제 서품을 받게 된다. 1970~1971년까지 스페인 알칼라데아네라스에서 교육을 받은 뒤 1973년 아르헨티나 예수회 관구장을 지내는데, 관구장 재임당시 1976년 아르헨티나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 7년간의 독재정권이 들어서게 되면서 베르고글리오에게도 한차례 위기가 다가온다. 이 군부독재정권 기간동안 군사정권은 성직자들을 박해하는 정책을 쓰는데, 이에 베르고글리오는 성직자들을 보호하기위한 측면에서 군부독재에 대항하기보다는(아마 대항하면 더 많은 피를 흘렸을 것이다) 유화책을 선택해 관계를 손상시키지 않는 차원에서 성직자들을 보호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가 이후에 여러 논란으로 번지게 된다.
성직
I. 주교 수품
1992년 1월 27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장인 추기경 안토니오 쿠아라시노()로부터 주교 수품을 받아 'Miserando atque eligendo(자비로이 부르시니)'사목표어를 선택한다.
II. 대주교 수품
1997년 6월 3일 대주교 수품을 받으며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장 안토니오 쿠아라시노(Antonio Quarracino, 1923~1998)추기경의 보좌대주교가 되었고, 이듬해 1998년 2월 28일 안토니오 쿠아라시노 추기경이 대교구장을 맡던 도중 선종하면서 베르고글리오 대주교가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장을 승계받게 된다. 대교구 행정을 재편성함과 동시에 불합리한 부분에 있어서는 과감하게 손질을 해서 질서를 바로잡았다는 평을 받는다.
III. 추기경
2001년 2월 21일 베르고글리오 대주교는 당시 교황 요한 바오로2세(Loannes Paulus PP. II, 1920~2005, 재위1978~2005)로부터 사제급 추기경에 서임된다. 추기경에 서임된 이후 교황청 산하 부서 장관을 역임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가고 2005년 콘클라베와 2013년 콘클라베에 참석한다.
베네딕토16세
이미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은 2005년 교황 요한 바오로2세가 선종하면서 열린 콘클라베에서도 강력한 교황 후보에 올랐었다. 2005년 콘클라베 당시 베르고글리오 추기경도 많은 표를 얻었지만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베네딕토16세)의 표가 좀 더 나오면서 교황에 선출됨에 따라 베네딕토16세(Benedictus PP. XVI, 1927~2022, 재위2005~2013)로 즉위하게 된다. 베네딕토16세는 즉위당시 이미 나이가 80에 가까웠고(78세)이에 건강이 좋지 않다는 것에 우려가 많았지만 능력이 출중했고 뛰어난 외국어 구사능력등으로 뽑혔지만 사실상 본인은 나이가 너무 많기도 했고 조용히 보내고 싶어했다고 한다. 그러나 점점 시간이 갈수록 건강이 더욱 악화되고 부축을 받아야 움직일 수 있는 수준에 이르면서 2013년 2월 11일 바티칸 공의회에서 교황직을 사임한다는 중대발표를 한 뒤 2월 28일 사임하게 되면서 콘클라베 시작을 서두르는 교서를 반포하기에 이른다.
2013년 콘클라베
사임한 베네딕토16세를 뒤로 새로운 교황을 선출할 콘클라베가 2013년 3월 12일에 열리게 된다. 베네딕토16세가 콘클라베 시작을 서두르는 교서를 반포하여 약2주만에 바로 열린 콘클라베는 총117명의 추기경 선거인단이 투표에 참석(불참2명)하여 진행되었다. 수석 추기경 안젤로 소다노(Angelo Sodano, 1927~2022)추기경이 콘클라베를 주관하면서 투표가 진행됨에 따라 다음날까지 쉼없이 투표를 진행한 결과 2013년 3월 13일 오후7시 6분 시스티나 성당 굴뚝에서 흰 연기(검은 연기는 재투표, 흰 연기는 교황 선출되었다는 신호)가 올라오면서 교황청에서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이 교황으로 선출되었음을 발표하고 교황 선출인이 프란치스코로 명명했다고 알린다.
교황
선출 이후 2013년 3월 19일 바티칸 베드로 대성당에서 즉위식이 거행된 이후 활발한 행보를 보이게 된다.
I. 두 교황
교황으로 선출된지 채 보름이 되지않았을 때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임하여 물러나있는 베네딕토16세를 만나게 되면서 전세계의 화젯거리가 된다. 두명의 교황이 동시에 만난다는 것 자체가 보기드문 장면인 것인데(아비뇽 유수, 서방교회 대분열을 포함하는데는 무리가 있다), 이후에도 몇차례 더 만나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임 교황(베네딕토16세)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며 때로는 함께 기도를 올리기도 한다.
II. 성향
소위 프란치스코 교황을 소외된 계층에 한없는 관심과 애정을 보인 교황이라고도 표현한다. 교황 스스로를 봉사자로 여긴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난하고 사회에 소외된 계층의 사람들에게 한없는 관심을 통해 봉사정신을 이끌어내며 교황 스스로가 에이즈 환자의 발을 씻기고 키스를 하는등 한없는 사랑을 보낸다.
III. 교황청 개혁
교황 스스로 진보적인 행보를 보이면서 교황청자체의 개혁을 주도했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인데, 재정개혁을 통해 새로이 재무원을 신설해 관리 구조자체를 강화시켜 재정의 투명성을 높이고 동시에 가난한 사람들을 지원할 기금 조성 목적성을 띠어 재정을 개혁한다. 거기에 교황청 내 행정직원들의 관행 수정, 자문단들을 새로 신설하여 단순히 교황을 보좌하고 조언하는 업무만을 하지 않고 교황청 각 부서에도 자문을 하게끔 개혁을 단행한다.
IV. 분쟁 화해
교황은 외교적으로도 분쟁이 일어나는 지역이나 국가간 사이가 좋지 않은 곳에도 외교력을 10분 발휘하여 각 국가간의 화해를 주도하기위한 가교역할을 자청한다. 인도적 해결책을 제시하여 상호 관계 정상화를 이끌어내는데 큰 역할을 하며 관계회복을 꾀했다.
V. 희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5년 3월 13일 자신이 교황으로 선출된지 정확히 2년이 된 시점에 '자비의 특별 희년'을 선포하면서 개막을 선포하여 전 세계 모든 신자들과 사제들에게 이르기까지 죄를 사해주는 것, 자원봉사, 가난한 이들을 돕는일 등등 수많은 행동을 이어나가며 약 1년 8개월간 베드로 대성당 문을 닫는 폐문 예식을 거행하면서 자비의 특별 희년이 공식적으로 종료된다.
선종
이전부터 건강이 좋지않아 병원에 입원하고 힘든 모습을 보이던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5년 4월 20일 부활절 예배를 드릴만큼 건강이 회복된 것으로 보였으나 다음날 4월 21일 교황청 기준 오전7시 35분 88세로 선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