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 : 알레산드로 오타비아노 데 메디치(Alessandro Ottaviano de' Medici)
232대 교황 레오11세(Leo PP. XI, 1535~1605, 재위1605)
| 전임 교황 | 당시 재직 교황 | 후임 교황 | |
| 직위 | 231대 교황 | 232대 교황 | 233대 교황 |
| 출신 | 교황령, 파노 | 피렌체 공국, 피렌체 | 교황령, 로마 |
| 명칭 | 클레멘스8세 Clemens PP. VIII |
레오11세 Leo PP. XI |
바오로5세 Paulus PP. V |
| 생몰년도 | 1536.02.24 ~ 1605.03.03 | 1535.06.02 ~ 1605.04.27 | 1552.09.17 ~ 1621.01.28 |
| 콘클라베기간 | 21일 (1592.01.10~1592.01.30) |
19일 (1605.03.14~1605.04.01) |
9일 (1605.05.08~1605.05.16) |
| 재위 | 1592.01.30 ~ 1605.03.03 | 1605.04.01 ~ 1605.04.27 | 1605.05.16 ~ 1621.01.28 |

출생
1535년 6월 2일, 피렌체 공국 피렌체(Firenze)에서 곤팔로니에레인 아버지 오타비아노 데 메디치(Ottaviano de' Medici, 1484~1546)와 어머니 프란체스카 살비아티(Francesca Salviati, 1504~1566)사이에서 1남4녀중 막내로 태어났다.
배경
메디치 가문 출신의 교황으로, 어머니 프란체스카 살비아티가 교황 레오10세(Leo PP. X, 1475~1521, 재위1513~1521)의 조카이므로 알레산드로는 레오10세의 외손주였다. 당대에 강력한 재력과 정치력, 명망깊은 가문 메디치 가문 출신으로서 이미 가문에서 2명의 교황(217대 교황 레오10세, 219대 교황 클레멘스7세)을 배출하였고, 알레산드로 역시 성직의 길을 걷게 되면서 기대를 받게 된다. 11세때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피렌체 근처 도미니코회 빈첸초 에르콜라노부터 교육을 받으면서 신앙의 간증을 듣고 사제가 되기로 결심하지만 유일한 아들이였던 탓에 어머니 프란체스카가 반대하였고 삼촌역시 반대하면서 알레산드로의 사촌형이였던 코시모1세 데 메디치(Cosimo I de' Medici, 1519~1574, 피렌체재위1537~1569, 토스카나대공1569~1574)에게 알레산드로를 맏기지만 1566년 어머니 프란체스카가 사망하면서 이전부터 바라던 성직위를 받기로 결심한다. 1567년 사제로 서임되고 사촌형 코시모1세의 교황 대사로 파견, 1573년 주교 서품, 1574년 대주교, 1583년 추기경에 서임된다. 1596년 조카손녀(사촌형 코시모1세의 손녀)였던 프랑스 왕비 마리 드 메디시스(Marie de Médicis, 1575~1642)가 있는 프랑스 교황 특사, 1598년 교황청 주교성 장관에 임명된다. 1605년 교황 클레멘스8세(Clemens PP. VIII, 1536~1605, 재위1592~1605)가 선종하고 열린 콘클라베에서 교황으로 선출되어 레오11세로 명명되고 교황직을 수행하지만 즉위한지 27일만에 선종해버린다.
성직
I. 어머니의 반대
11세의 어린 나이에 아버지 오타비아노가 사망하면서 도미니코회 사제 빈첸초 에르콜라노()로부터 교육을 받으면서 신앙의 간증을 듣고 사제가 되기로 결심하지만 어머니는 유일한 아들 알레산드로가 성직에 몸담는 것을 결사반대하는데 알레산드로도 마찬가지로 뜻을 꺾지않는 팽팽한 상태를 유지하면서 알레산드로의 사촌형이자 프란체스카의 조카인 코시모1세 데 메디치(Cosimo I de' Medici, 1519~1574, 피렌체재위1537~1569, 토스카나대공1569~1574)에게 보내 성직의 뜻을 접고 공작밑에서 일하게끔 한다. 그러나 1566년 어머니 프란체스카가 사망하면서 중도에 포기할 수 밖에 없던 사제가 되기 위한 공부를 시작하면서 1567년 피렌체 대주교 안토니오 알토비티(Antonio Altoviti, 1521~1573)로부터 사제 서품을 받게 된다.
II. 사제가 된 후
그렇게 원하던 성직자가 되면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가는데, 1567년 사제 서품 이후 활발한 신앙활동을 이어나가는데 1569년 사촌 형 코시모1세의 국가 토스카나에 교황청 대사로 임명되어 고향인 피렌체에 가서 사촌형과 교황을 동시에 보좌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알레산드로는 1584년까지 피렌체에 교황 대사로 파견되어 활발하게 활동을 하는데 거기다가 알레산드로의 조카(코시모1세의 아들)였지만 이미 추기경으로 있던 페르디난도1세 데 메디치(Ferdinando I de' Medici, 1549~1609, 토스카나대공1587~1609)의 보호를 받으면서 교황청 내 추기경들과 친분을 쌓을 수 있었고 그렇게 교황 비오5세(Pius PP. V, 1504~1572, 재위1566~1572)에게까지 알레산드로의 자질을 인정받게 된다. 사촌형 코시모1세는 친프랑스 정책을 시행했고 이를 지지한 알레산드로로 인하여 프랑스의 숙적이였던 합스부르크 스페인에 적대감을 사게 된다. 그러던 와중 1573년 자신을 사제로 서품시킨 피렌체 대주교 안토니오 알토비티가 중병에걸려 선종하면서 조카였던 추기경 페르디난도 데 메디치가 교황 그레고리오13세(Gregorius PP. XIII, 1502~1585, 재위1572~1585)에게 서신을 써서 삼촌 알레산드로가 피렌체 대주교 자리에 지명되어 임명되게 된다.
1574년 사촌 형 코시모1세가 서거하면서 조카인 프란체스코1세 데 메디치(Francesco I de' Medici, 1541~1587, 토스카나대공1574~1587)가 즉위함에도 계속해서 조카와 교황청을 보좌하는 임무를 맡게 되는데, 이후 교황 그레고리오13세로부터 1583년 추기경으로 서임된다. 조카 프란체스코1세와는 딱히 트러블을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헀지만 1590, 1591년 콘클라베에서 알레산드로가 교황후보에 오르면서 삼촌의 선출을 기대하던 추기경 출신 페르디난도1세(Ferdinando I, 1549~1609, 토스카나대공1587~1609)는 삼촌 알레산드로가 뽑히길 바랬지만 알레산드로가 1591년 조반니 안토니오 파키네티 추기경(인노첸시오9세)을 지지하면서 메디치 가문에 새 교황이 나타나길 바랬던 페르디난도1세가 삼촌에게 분노를 표출한다.
III. 프랑스 대사
1596년 알레산드로는 프랑스 왕국 교황 특사로 임명되고 프랑스로 가는데 당시 프랑스 왕비는 조카손녀였던 마리 드 메디시스(Marie de Medicis, 1575~1642)였다. 당시 조카손녀의 남편이자 프랑스 왕이던 앙리4세(Henri IV, 1553~1610, 나바라재위1572~1610, 프랑스재위1589~1610)가 알레산드로 추기경을 환영하고 프랑스와 스페인간의 회담자리등에 배석되는등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고 1598년 평화 회담을 성공적으로 주재하여 프랑스와 스페인 사이에 평화가 이루어지면서 파리로 돌아오면서 열렬한 환영을 받는다. 이후 1598년 11월 로마 교황청으로 돌아와서 교황 클레멘스8세(Clemens PP. VIII, 1536~1605, 재위1592~1605)를 알현하고 클레멘스8세는 그간의 공으로 알레산드로 추기경을 주교성 장관으로 임명하게 된다. 알레산드로는 추기경이 된 이후 5회에 달하는 콘클라베(1585, 1590, 1591, 1592, 1605)에 참석해 선거인단으로 활동했다.
1605년 콘클라베
1605년 교황 클레멘스8세가 선종하면서 콘클라베가 열린다. 60여명으로 구성된 추기경 선거인단은 알레산드로 추기경과 피에트로 알도브란디니 추기경(Pietro Aldobrandini, 1571~1621), 로베르토 벨라르미노 추기경(Robertus Bellarminus, 1542~1621)등이 주요 후보에 오르면서 경쟁하는데, 이미 프랑스에서는 그간의 공으로 앙리4세가 열렬히 알레산드로를 지지하고 엄청난 돈을 쏟아붓고 친 스페인파 추기경 피에트로 알도브란디니가 공개적으로 알레산드로를 지지하면서 알레산드로 데 메디치 추기경이 콘클라베가 열린지 2주만에 교황으로 선출된다. 알레산드로 추기경은 큰 할아버지인 교황 레오10세(Leo PP. X, 1475~1521, 재위1513~1521)를 기리기 위해 레오11세로 명명한 뒤 즉위한다.
교황, 선종
상당히 애석하게도 이미 교황으로 선출되었을 때의 나이가 70이였던 레오11세는 교황으로 선출된지 27일만에 선종해버린다. 피로와 추위에 노출되면서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어져서 선종해버린 것으로 1개월도 안되는 재위기간으로 인해 '번갯불 교황(Papa Lampo)'이라는 별칭으로 불린 교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