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회, 1532~1593
출생
1532년(중종26년) 조선 전라도 능주(현 전라남도 화순군)에서 아버지 최천부(1502~1552)와 어머니 평택 임씨 사이에서 3남중 막내로 태어났다.
배경
임진왜란(1592~1598)당시 4대 의병장(곽재우, 최경회, 고경명, 김천일)중 한명이고 고려시대 해동공자로 추앙받는 최충(984~1068)의 후손이기도 하다. 1561년(명종16년)생원, 진사시 합격, 1567년(선조원년)식년 문과 을과로 급제한 후 성균관 전적, 사헌부 감찰등 요직을 이어가다가 이후 영해군수를 역임하던 때 1590년(선조23년) 어머니 평택 임씨가 사망하여 벼슬을 내려놓고 3년상을 치르는 도중인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한다. 큰형 최경운(?~1596)과 작은형 최경장(1529~1601)과 고향 능주 사람들과 함께 의병을 논하다가 전라좌도 의병 고경명(1533~1592)이 전사하며 그의 휘하 의병이였던 문홍헌(1551~1593)이 최경회를 찾아와 의병을 논하고 있었는데, 최경회는 의병장이 되어 전라도 각 고을에 격문을 보내 의병들을 끌어모으게 된다.
초년
일찍이 양응정(1519~1581)과 기대승(1527~1572)문하에서 수학했고, 1561년(명종16년)생원, 진사시에 합격하고 1567년(선조원년)식년 문과 을과로 급제한 문관이 된다. 급제 후 출사하여 성균관 전적을 시작하여 사헌부 감찰, 형조 좌랑, 장수현감, 영암군수, 영해군수, 담양부사 그리고 임진왜란때는 경상우병사에 이르게 된다.
임진왜란
I. 어머니 3년상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이전인 1590년(선조23년) 당시 최경회는 영해군수를 역임하고 있었는데, 어머니 평택 임씨가 사망하면서 군수직을 내려놓고 고향 전라도 능주(현 전라남도 화순군)로 내려간다. 그렇게 3년상을 치르게 되는데, 3년상이 끝나갈 무렵에 임진왜란이 터진다.
II. 임진왜란 발발
1592년 5월 왜국 태합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 1537~1598, 관백재위1585~1592, 태합재위1587~1598)가 수십만의 병력을 조선으로 보내 발발 이틀만에 부산진과 동래성이 왜적의 수중에 떨어진다. 이에 최경회는 큰형 최경운, 작은형 최경장과 고향 사람들을 규합시켜 의병청을 설치하고 의병장이 되는데, 당시 전라좌도 의병장이였던 고경명(1533~1592)이 금산 전투에서 아들과 함께 전사함으로서 고경명의 휘하 의병 문홍헌()등이 최경회에게 합류하면서 최경회가 초대 의병장으로 추대되기에 이른다. 그렇게 최경회가 이끄는 의병은 왜군들이 금산에서 퇴각하여 우지치쪽으로 올 것을 예측해 매복하여 크게 승리한다.
III. 1차 진주성 전투
우지치에서의 승리는 단순한 승리가 아니라 곡창지대인 전라도를 노리던 왜군으로서는 진주성에서의 대병력 집결이 필수였는데, 왜군은 우지치에서의 패배로 진주로 집결하는 병력이 줄어들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진주성쪽으로 향하던 왜군 수장 우키타 히데이에(1572~1655)가 이끄는 병력은 3만에 다달았다. 진주성은 당시 진주 목사 김시민(1554~1592)이 지키고 있었는데, 왜군이 접근한다는 소식에 군관민 모두합쳐 3800여명이 결사항전을 준비하는데, 이 때 최경회도 진주성으로 의병들을 이끌고 가서 전투에 힘을 보태게 된다.
<관군> | 본관 | 생몰년도 | 직위 | <의병> | 본관 | 생몰년도 | 직위 |
김시민 | 안동 | 1554~1592 | 진주목사 | 곽재우 | 현풍 | 1552~1617 | 의병장 |
유숭인 | 문화 | ?~1592 | 경상우병사 | 심대승 | 청송 | 1556~1606 | |
김성일 | 의성 | 1538~1593 | 초유사 | 김준민 | 상산 | ?~1593 | 거제현령 |
이광악 | 광주 | 1557~1608 | 곤양군수 | 정기룡 | 진주 | 1562 ~ 1622 | 상주판관 |
성수경 | 창녕 | ?~1593 | 진주판관 | 조경 | 평양 | 1541~1609 | 중군장 |
서예원 | 이천 | 1548~1593 | 최경회 | 해주 | 1532~1593 | 의병장 | |
최덕량 | 수원 | 1544~? | 전만호 | 임계영 | 장흥 | 1528~1597 | |
정득설 | 하동 | ?~1592 | 사천현감 | 이달 | 홍주 | 1539~1612 |
그렇게 우키타 히데이에의 3만 대병을 맞아 김시민이 이끄는 6천의 군사(관군3800+의병2200)는 백성들까지 돌과 뜨거운 물을 운반하는 것에다 의병장들의 유격전으로 왜군을 혼란에 빠뜨리면서 왜군은 1차 진주성 전투에서 1만에 가까운 전사자를 내면서 대패하고 전라도 방어선을 돌파하여 곡창지대를 얻겠다는 계획이 무산되기에 이르지만, 전투 도중 진주 목사 김시민(1554~1592)은 왜적의 총탄에 맞아 전사하고 만다. 1차 진주성 전투는 임진왜란 3대첩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조선이 대승한 전투이다.
IV. 2차 진주성 전투와 최경회의 전사
그러나 1593년 7월, 수장 우키타 히데이에(1572~1655)로 하여금 왜군들이 다시 진주성으로 쳐들어온다. 이번에는 1차 진주성때 병력규모의 3배에 달하는 9만의 병력으로 쳐들어오는데 1593년 명나라와 왜국 사이에 강화회담으로 인해 왜군은 남해안지역까지 물러나게 되는데,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 1537~1598, 관백재위1585~1592, 태합재위1587~1598)가 남해안쪽으로 철수하는 왜군 전부에게 진주성을 공략하라는 명령을 내리게 되면서 거의 모든 왜 병력이 진주성 공략에 투입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왜 병력은 1~5번대 로 나뉜 9만의 병력을 가지고 진주로 쳐들어오게 된다.
병력규모(명) | 수장 | 생몰년도 | |
1번대 | 25000 | 가토 기요마사 | 1562 ~ 1611 |
2번대 | 26000 | 고니시 유키나가 | 1558 ~ 1600 |
3번대 | 18000 | 우키타 히데이에(총사령관) | 1572 ~ 1655 |
4번대 | 13000 | 모리 히데모토 | 1579 ~ 1650 |
5번대 | 8000 | 고바야카와 다카카게 | 1533 ~ 1597 |
그렇게 조선 정부에서는 왜군을 상대로 도저히 진주성을 막기에는 병력과 지휘관들이 부족하다고하여 권고에도 불구하고 진주성을 지키던 관군과 의병장들은 진주성에 남아 싸울 것을 선언하고 전투에 임한다. 왜군들은 5개의 부대를 동서남북으로 에워싸고 공성전을 벌이게 되지만 결국 뚫리게 되면서 진주성 내 관군, 의병, 백성들 모두 전멸하고 마는 대패를 당한다. 최경회를 포함한 항전군들은 끝까지 저항하다가 남강근처까지 다달으면서 남강에 투신하여 전사한다.
본관 | 생몰년도 | 비고 | 직위 | |
최경회 | 해주 | 1532 ~ 1593 | 전사 | 경상우병사 |
황진 | 장수 | 1550 ~ 1593 | 충청병사 | |
서예원 | 이천 | 1548 ~ 1593 | 진주목사 | |
장윤 | 목천 | 1552 ~ 1593 | 사천현감 | |
이종인 | 개성 | 1556 ~ 1593 | 김해부사 | |
김준민 | 상산 | ? ~ 1593 | 거제현령 | |
정평구 | 동래 | 1566 ~ 1593 | 별군관 | |
김천일 | 언양 | 1537 ~ 1593 | 의병장 | |
강희보 | 진주 | 1560 ~ 1593 | ||
고종후 | 장흥 | 1554 ~ 1593 | 복수의병장 | |
양산숙 | 제주 | 1561 ~ 1593 | 공조좌랑 | |
이잠 | 철성 | ? ~ 1593 | 적개의병장 | |
오빈 | 함양 | 1547 ~ 1593 | 복수의병장 | |
오유 | 동복 | 1544 ~ 1593 | ||
민여운 | 여흥 | ? ~ 1593 | 의병장 | |
황대중 | 장수 | 1551 ~ 1597 | 1597년 남원 전투에서 전사 | |
성수경 | 창녕 | ? ~ 1593 | 전사 | 진주판관 |
논개
최경회의 후처인 논개(1574~1593)은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최경회가 의병장으로 병사들을 훈련시킬 때 최경회를 도우고, 제2차 진주성 전투당시 경상우병사인 남편을 따라 동행하지만 전투에서 패배하고 최경회가 남강에 투신하여 전사하면서 논개는 왜군들이 진주 촉석루에서 연회를 벌일 때 기녀로 위장해 당시 가토 기요마사의 가신이였던 왜장 게야무라 로쿠스케(기다 마고베, ?~1593)를 남강 의암바위로 유인해 로쿠스케를 끌어안고 남강으로 투신하여 순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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