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계영, 1528~1597
출생
1528년(중종22년) 전라도 보성군 조성면에서 아버지 임희중(?~?)과 어머니(정보없음)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임진왜란(1592~1598) 당시 의병장으로 임진왜란 발발 직후 의병을 일으켜 동향인 전라도 지역에서 의병장으로서 왜군을 막은 인물이다. 1576년(선조9년) 48세의 늦은 나이로 별시 문과 병과로 급제하면서 진보 현감을 지내고 더이상 관직에 욕심이 없어 현감 임기가 끝난 이후 고향으로 돌아가 조용히 지내다가, 1592년(선조25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고향 보성에서 의병을 일으킨다. 전라도 화순 출신 의병장 최경회(1532~1593)와 함께 활동하며 전라도, 경상도 일대의 왜군들을 격파하는 활동을 보이고, 제1차, 2차 진주성 전투에도 참전하였었다. 이후 명나라와 왜국간 협상이 벌어질동안 양주 목사, 정주 목사, 해주 목사, 순창 군수등을 지내다가 1597년(선조30년) 명나라와 왜국간 협상이 결렬되고 정유재란이 발발하게 되면서 의병을 다시 일으켰다.
관리
1576년(선조9년) 당시로서는 많은 나이인 48세의 나이로 별시 문과 병과로 급제하여 진보(경북 청송일대)현감을 지내게 되었지만 나이도 많고 관직에 큰 욕심이 없던 터라 현감 임기가 끝난 다음 바로 고향 보성으로 내려간다. 그러나 1592년(선조25년) 왜국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 1537~1598, 관백재위1585~1592, 태합재위1587~1598)가 조선을 침공하기 위해 병력을 보내는데 20만에 달하는 왜적들이 부산 앞바다에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면서 임진왜란이 발발하게 된다.
의병장
I. 의병 규합
1592년 5월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이틀만에 부산진성과 동래성이 함락당하고 왜군이 북진하게 됨에 따라 임계영은 여러 의병장들과 힘을 합쳐 의병을 일으키게 된다. 아래 표는 임계영과 뜻을 함께 하여 의병을 일으킨 의병장들에 대한 목록이다.
생몰년도 | 직위 | |
박광전 | 1526 ~ 1597 | 현감 |
김익복 | 1551 ~ 1599 | 능성 현령 |
문위세 | 1554 ~ 1631 | 진사 |
박광전이 병으로 몸져눕게 되면서 임계영이 의병장으로 추대되면서 이후 남원에서 의병장 최경회(1532~1593)와 세를 합쳐 전라좌도 의병장이 된다.
II. 진주성 전투
임계영은 제1차 진주성 전투(1592)와 제2차 진주성 전투(1593)에 모두 참전하였었는데, 1차 전투땐 진주 목사 김시민(1554~1592)을 도와 왜군의 대병력을 격파하여 승리하였지만, 2차 전투땐 임계영의 부장인 사천현감 장윤(1552~1593)으로 하여금 300여명의 병력을 먼저 진주성에 보내고 임계영 자신은 군수물자를 조달하던 도중 왜적이 진주성을 포위하여버려 성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다. 2차 진주성 전투는 왜군 총사령관 우키타 히데이에(1572~1655)와 1군 가토 기요마사(1562~1611), 2군 고니시 유키나가(1558~1600)등의 9만에 달하는 왜군이 진주성을 함락하면서 9천여명(민간인 2만4천)의 조선군이 모두 전멸해버리면서 임계영은 부장 장윤이 전사하면서 이 때 자신도 함께 죽지 못한 것을 평생의 한으로 여겼다고 한다. 2차 진주성 전투는 왜군의 승리로 끝났지만 왜군역시 3만명의 전사자를 내면서 전라도로 진격하지 않고 다시 남해쪽으로 돌아가게 된다. 2차 진주성 전투때 전사한 조선 주요 인물들은 아래 표와 같다.
생몰년도 | 직위 | |
최경회 | 1532 ~ 1593 | 경상우병사 |
황진 | 1550 ~ 1593 | 충청병사 |
서예원 | 1548 ~ 1593 | 진주목사 |
장윤 | 1552 ~ 1593 | 사천현감 |
이종인 | 1556 ~ 1593 | 김해부사 |
김준민 | ? ~ 1593 | 거제현령 |
정평구 | 1566 ~ 1593 | 발명가, 별군관 |
김천일 | 1537 ~ 1593 | 의병장 |
강희보 | 1560 ~ 1593 | |
고종후 | 1554 ~ 1593 | 복수의병장 |
양산숙 | 1561 ~ 1593 | 공조좌랑 |
이잠 | ? ~ 1593 | 적개의병장 |
오빈 | 1547 ~ 1593 | 복수의병장 |
오유 | 1544 ~ 1593 | |
민여운 | ? ~ 1593 | 의병장 |
황대중 | 1551 ~ 1597 | |
성수경 | ? ~ 1593 | 진주판관 |
최후
이후 1594년부터 명나라와 왜국간 화의가 성립되면서 협상이 길어짐에 따라 전투가 2~3년간 소강상태를 보이는데, 이 때 임계영은 양주 목사, 정주 목사, 해주 목사, 순창 군수등을 지내다가 명나라와 왜국간의 협상이 결렬되면서 1597년(선조30년) 정유재란이 벌어짐에 따라 임계영은 다시 의병을 일으키지만, 갑작스럽게 급사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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