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의왕후 김씨, 1754~1821
출생
1754년(영조29년) 조선 한성부 가회방(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가회동)에서 아버지 김시묵(1722~1772)과 어머니 남양 홍씨(?~1791) 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조선22대 임금 정조(1752~1800, 재위1776~1800)의 왕비로 시호는 '효의'로서 효의왕후로도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정조와 효의왕후는 9촌간이였는데 이는 정조의 고조할아버지 현종(1641~1674, 재위1659~1674)의 왕비인 명성왕후 김씨(숙종의 모후, 1642~1684)의 남동생인 김석연(1648~1723)의 고손녀가 효의왕후 김씨였기 때문이다.
전주 이씨 왕족 | 청풍 김씨 일족 | ||
I | 효종 이호 (1619~1659, 재위1649~1659) |
김우명(1619~1675), 명성왕후 김씨의 아버지 | |
II | 현종 이연 (1641~1674, 재위1659~1674) |
김만주(1639~1657), 현종의 왕후 명성왕후 김씨의 오빠 | 김석연(1648~1723), 현종의 왕후 명성왕후 김씨의 남동생 |
III | 숙종 이순 (1661~1720, 재위1674~1720) |
김도제(?~?) | 김도영(1671~?) |
IV | 영조 이금 (1694~1776, 재위1724~1776) |
김성집(?~?) | 김성응(1699~1764) |
V | 사도세자 이선 (1735~1762) |
김성응의 아들 김시묵(1722~1772), 5촌 아저씨 김성집에게 입양됨. | |
VI | 정조 이산 (1752~1800, 재위1776~1800) |
효의왕후 김씨(1753~1821) |
1762년(영조38년) 왕세손 이산(미래의 정조)의 세손빈으로 책봉되어 가례를 올린 다음 1776년 영조가 승하하고 왕세손 이산이 정조로 즉위하면서 중전이 된다. 성품이 매우 온화하고 위로는 시어머니였던 혜경궁 홍씨(1735~1816)를 극진히 모시며 재물에도 욕심이 없었고 공적인 최고위에 있었던 만큼 사사로이 이득을 취하지않고 검소하게 살았다고 한다.
초년
어려서부터 공손함과 효심이 깊었다고 한다. 영조(1694~1776, 재위1724~1776)의 뜻에 따라 세손빈에 1761년(영조37년)간택되어 궁에 들어가서 1762년(영조38년)세손 이산(미래의 정조)과 가례를 올리게 되면서 세손빈에 책봉된다. 그러나 세손빈이 된 그해 임오화변(1762)이 터지면서 영조가 세손빈과 세자빈(혜경궁 홍씨)에게 사가로 가라고 하지만 세손빈은 사가로 가지않고 시어머니인 세자빈의 사저로 가는 것을 원해 영조가 이를 매우 기특하게 여겨 같이 있기를 허락한 일화가 있다고 한다. 사실상 효의왕후는 영조가 그녀의 성씨가 청풍 김씨(영조의 할머니 명성왕후 김씨가 청풍 김씨)였다는 것에 더욱 초점이 가서 간택했다고도 한다.
중전
세손빈이 된지 14년이 지난 1776년 영조가 승하하면서 왕세손이 정조(1752~1800, 재위1776~1800)로 즉위함에 따라 세손빈 역시 중전이 되면서 왕비가 된다. 왕비가 되고 난 이후에도 시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극진히 모시면서 내명부의 수장으로서 중전으로서의 도리를 잘 지키고 궁에서 어떠한 문제도 일으키지 않은 보기드문 왕비이지만 정조사이에 후사가 없었다. 그마저도 1800년 정조가 승하함에 따라 효의왕후는 왕대비가 되는데, 이미 정조의 후궁이였던 수빈 박씨(1770~1823)의 장자인 순조(1790~1834, 재위1800~1834)를 1791년 이미 양자로 입적하여 자신의 자식 못지않게 키웠다고 한다. 순조가 즉위하고 나서도 효의왕후를 극진히 모시게 되는 계기가 된다. 효의왕후는 여러 후궁들과도 같이 궁 생활을 하였는데, 특히 후궁들 중 의빈 성씨(1753~1786)와는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생몰년도 | 비고 | |
의빈 성씨, 1766년 승은, 1780년 후궁 책봉 |
1753 ~ 1786 | 문효세자(1782~1786)의 어머니 |
원빈 홍씨, 1778년 후궁 책봉 | 1766 ~ 1779 | 홍국영(1748~1781)의 여동생 |
화빈 윤씨, 1780년 후궁 책봉 | 1765 ~ 1824 | 판관 윤창윤(1734~1798)의 딸 |
수빈 박씨, 1787년 후궁 책봉 | 1770 ~ 1823 | 23대 순조의 어머니 |
화완옹주
세손빈으로 간택되었을 당시 영조의 딸이자 사도세자의 여동생인 화완옹주(1738~1808)가 아버지 영조에게 세손빈을 받아들이지 말라고 설득하고 가례를 올리고 세손빈에 책봉된 이후에도 호된 시집살이를 시키면서 조카 정조와의 사이를 이간질하기도 하지만 꿋꿋이 버티고 예를 다했다는 기록이(화완옹주는 조카 집착증이 있었다고 한다)있다. 거기다가 1775년(영조51년), 영조가 세손 이산(미래의 정조)에게 대리청정을 명할 때 화완옹주는 양자 정후겸(1749~1776), 홍인한(1722~1776)등과 함께 대리청정을 극렬히 반대하는데도 한몫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대리청정은 시행되고 1776년 세손빈은 중전이 된다.
홍국영과의 대립
효가 깊고 궁내 사람들과의 관계가 다 좋았던 효의왕후는 유일하게 정조의 최측근인 도승지 홍국영(1748~1781)과 대립을 하였다. 이는 홍국영의 여동생인 원빈 홍씨가 1778년(정조2년) 정조의 후궁이 되는데, 아들을 낳아 외척으로서 권력이 커지길 기대했던 홍국영이였는데 원빈 홍씨가 후궁에 책봉된지 1년만인 1779년(정조3년) 후사 없이 사망해버리고 만다. 이에 홍국영은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된 상황에 효의왕후가 있다고 생각하여 왕후를 모함하는등 당시로서는 있을 수 없는 하극상을 저질러 이에 정조가 홍국영을 물러나게 함으로서 사실상 은퇴한 뒤 2년뒤 1781년 사망한다.
승하
정조와의 슬하에 자녀가 없었고, 1821년(순조21년) 만67세의 나이로 창경궁에서 승하한다.
'조선의 중전, 후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의빈 성씨 (0) | 2025.03.26 |
---|---|
숙빈 최씨 (0) | 2025.03.25 |
희빈 장씨 (0) | 2025.02.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