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빈 장씨, 장희빈, 1659~1701
출생
1659년 조선 한성부 상평방에서 아버지 장형(1623~1669)과 어머니 파평 윤씨(1626~1698) 사이에서 태어남. 본명은 장옥정.
초년
역관 출신인 아버지 장형(1623~1669)의 막내딸로 위로는 문과 장원급제 출신 이복오빠 장희식(1640~1718), 동복오빠 장희재(1651~1701)등이 있다. 동복오빠 장희재는 일찍이 무과에 급제해 무관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언제 희빈 장씨가 궁에입궁하게 되었는지는 정확한 이유는 모르나 두가지 설이 존재한다.
1669년 아버지 장형이 사망하면서 가세가 기울어서 생계가 어려워 궁에 들어가 궁녀가 되었다는 것과 아버지 장형의 사촌형이자 장희빈이 태어났을 1659년(효종10년)에 이미 정2품의 높은 품계의 장현(1613~1695)이 조카 희빈 장씨를 입궁시켰다는 두가지이다.
희빈 장씨의 숙부 장현은 1659년 이미 정2품이였고 역시 역관 출신으로서 수많은 재산을 모아 이후 종1품에까지 올라가기도 했는데, 1680년(숙종6년) 경신환국이 벌어짐에 따라 이에 연루되어 유배형을 받는등 장현에게는 위기가 오지만 희빈 장씨는 1680년 경신환국이 일어날 때 숙종의 비 인경왕후(1661~1680)가 천연두로 사망하면서 숙종(1661~1720, 재위1674~1720)의 눈에 들기시작하게 된다.
시작
그렇게 1681년(숙종7년) 숙종의 2비인 인현왕후(1667~1701)는 장씨를 궁으로 불러들이도록 숙종의 모후 명성왕후(1642~1684)에게 요청하지만 명성왕후는 장씨의 자질을 의심하고 더욱이 아들 숙종의 눈에 들어 국정을 좌지우지하고 국가에 화가 미칠 것을 우려해 장씨의 입궁을 허하지 않았다. 그 사이에 인현왕후 민씨(1667~1701)가 명성왕후와 송시열(1607~1689)의 추천으로 간택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1684년(숙종10년) 명성왕후가 열병으로 사망하고 3년상이 끝나고 슬퍼하던 숙종을 안타깝게 여긴 인현왕후는 숙종에게 장씨를 들일 것을 이야기하고 장씨는 궁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숙종의 총애가 갈수록 지극해지면서 인현왕후와 서인들의 반발이 점점 극심해지는데, 장씨를 견제하기위해 영빈 김씨(1669~1735)를 후궁으로 입궐시키기에 이르고, 영빈 김씨는 종2품 숙의에 봉해진다.
기사환국
1688년(숙종14년) 장씨는 왕자 균(미래의 경종)을 낳고, 숙종이 태어난지 몇달 되지도 않은 왕자를 원자로 책봉하기에 이르자 대신들의 반발이 이어지면서 상소를 이어가지만 숙종은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면서 이를 일축하기에 이른다. 거기에 장씨를 정1품 빈으로 승격시키면서 희빈 장씨에 대한 총애를 더욱 곤고히 한다. 이에 서인 송시열(1607~1689)이 상소를 올려 이러한 숙종의 성급한 조처를 지적하게 되는데 이에 숙종은 이에 분개하여 송시열을 삭탈관직하고 처벌하기에 이르는데, 이에 끝나지 않고 서인 전체에 화가 미치게 되면서 수많은 대신들이 처벌받기에 이른다. 그렇게 인현왕후까지 사가로 내쳐지고 희빈 장씨가 빈에서 중전으로 1690년 승격되면서 원자 윤(경종) 또한 세자로 책봉되기에 이른다.
갑술환국
1694년(숙종20년) 갑술환국이 일어난다. 기사환국이 일어난지 5년이 지난 시점이였는데 기사환국으로 남인들이 권력을 독점하고 있던 터라 숙종은 이를 타파하기위한 조처를 취하는 게 갑술환국으로 나타나게 된다. 마침 1694년 노론 자제들이 폐비가 된 인현왕후 복위를 도모한 혐의로 붙잡혀 들어오게 되는데 역으로 오히려 남인의 음모라는게 밝혀지고 숙빈 최씨(영조의 모후, 1670~1718) 독살설까지 나오게 되면서 숙종은 남인을 본격적으로 축출하고 서인을 등용하기에 이르고 폐비 인현왕후가 다시 복원된다.
희빈 장씨는 남인과 운명을 같이 했기에 앞으로의 미래가 불투명했는데, 동복 오빠인 장희재(1651~1701)와 집안에서 음모를 꾸며 서인을 다시 공격할 준비를 하게되지만, 1701년(숙종27년)인현왕후가 사망하면서 희빈 장씨의 몰락이 시작된다.
몰락과 사사
1701년 인현왕후가 사망하면서 희빈 장씨의 여러 음모가 발각되면서 궁이 뒤집혀진다. 1701년 사망 이전부터 희빈 장씨가 인현왕후를 위해하기 위해 신당을 세워 낮밤할것없이 저주하는등 믿기 어려운 행위를 한 것이 드러나게 되면서 이에 숙종은 희빈 장씨의 소생인 세자 윤(경종)을 위해서 사약으로 자진할 것을 명하게 된다.
같이 음모를 꾸몄던 동복오빠 장희재(1651~1701)역시 이 때 처형을 당하고, 희빈 장씨는 사약을 먹고 사망하기에 이른다. 희빈 장씨 사사이후 남인은 완전히 그 세를 잃어버려 몰락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