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후겸, 1749~1776
출생
1749년(영조25년) 경기도 인천도호부 제물포에서 아버지 정석달(1720~?)과 어머니 전주 이씨사이에서 태어남. 양부는 정치달(1732~1757)이고 양모는 영조의 서녀인 화완옹주(1738~1808)이다.
배경
조선 후기 영조시대(재위1724~1776)때 외척, 권신. 평민 출신이였지만 정치달(화완옹주의 부군)의 양자가 되면서 화완옹주의 양자 자격으로 관직에 오른 인물이다. 이로인해 영조(1694~1776, 재위1724~1776)의 총애를 받고 1764년(영조40년) 종8품에 해당하는 장원서 봉사직에 오르고 이후 줄곧 승진하여 1767년(영조43년) 정6품 홍문관 수찬, 1768년(영조44년) 불과 만19세의 나이로 정3품 상계 승정원 좌승지가 되면서 당상관에 오른 뒤 1769년(영조45년) 20살의 나이에 종2품 공조 참판에까지 오르게 되는 인물이다.
영조의 세손인 이산(정조, 1752~1800, 재위1776~1800)을 제거하고 임금으로 추대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올정도로 핵심적 인물이였다. 원래 소론이였지만 노론 외척당에 가담하여 당시 영의정 홍봉한의 이복동생인 권신 홍인한(1722~1776)과 김귀주(1740~1786)세력과 결탁해 세손을 음해하는데, 세손을 보호하는 세력인 홍국영(1748~1781), 김종수(1728~1799)등과 대립하다가 홍인한의 사주를 받아 친세손세력을 척결하려 했으나 영조가 세손의 손을 들어줘서 몰아내는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고 이후 1776년 영조가 승하하고 정조가 즉위하면서 세력이 거의 와해되고 대신들의 주청으로 위리안치형을 받고, 이후 1777년(정조1년) 정조 암살 시도가 일어나면서 주도자로 몰려 사사된다.
초년
현재 인천광역시에 해당하는 조선 경기도 제물포 출신으로서 생선을 사고팔던 정석달(1720~?)의 차남으로 태어나는데 본래 양반가문이였는데 가세가 기울어 정석달이 생선거래를 하게 된 것이였는데, 마침 화완옹주의 부군이던 정치달(1732~1757)의 눈에 띄게 되는데 아버지 정석달과 같은 항렬(달 항렬)로 먼 친척이라는 이유로 정후겸을 아꼈고 자신의 양자로 입적하게끔 한다. 그렇게 정치달의 부인이자 영조의 서녀인 화완옹주(1738~1808)의 양자가 된다.
관리
그렇게 한순간에 영조(1694~1776, 재위1724~1776)의 외손주가 된 정후겸은 영특한 두뇌로 영조의 총애를 받아 1764년(영조40년) 당시 영의정이였던 홍봉한(1713~1778)의 특명을 받아 정8품 봉사로 임명되게 된다. 이후 승진가도가 펼쳐지는데, 1767년(영조43년)정6품 홍문관 수찬, 1768년(영조44년)당시 19세의 나이로 정3품 승정원 좌승지가 되면서 당상관에 오르고 1년뒤인 1769년(영조45년) 20세의 나이로 종2품 참판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다.
세손 모함과 음모
영조에게는 두 아들 효장세자(1719~1728)와 사도세자(1735~1762)가 있었는데, 효장세자는 일찍이 죽고, 사도세자가 있었는데, 임오화변(1762)으로 인해 뒤주에 갇혀 사망해버리면서 사실상 계승자가 사도세자의 아들이자 세손이 되는 이산(미래의 정조)에게 넘어간다. 정후겸은 영조의 총애를 받으면서 품계가 높아지며 외척의 중심에 서있게 되면서 세손을 몰아내고 왕이 될거라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로 성장한다.
종2품 참판 재직시절부터 세도가였던 풍산 홍씨 홍인한(1722~1776), 김귀주(정순왕후의 오빠, 1740~1786)등과 국정을 좌지우지 했는데, 1775년(영조51년) 81세의 고령인 영조가 세손에게 대리청정을 맡겨 국정을 운영하게 되면서 홍인한, 양어머니 화완옹주등이 반대를 하게되면서 세손에 대항하게 된다. 그렇게 세손에 대한 유언비어를 퍼뜨리면서 세손을 음해하는데 앞장서게 된다. 이에 세손을 보호하는 세력인 홍국영(1748~1781), 김종수(1728~1799)등과 대립하면서 탄핵을 하고 모해를 하는등 작전을 이어나가지만,
1776년 영조가 승하하고 세손 정조(1752~1800, 재위1776~1800)가 즉위하면서 정후겸, 홍인한등의 세력이 양사의 탄핵으로 폐서인되고 유배형을 받고 홍인한은 사사되고, 정후겸은 위리안치형을 받는다.
최후
그러나 1777년(정조1년) 홍계희(1703~1771)의 친족들이 무사를 고용해 정조를 암살하려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이 사건을 정유역변(1777)이라고 한다. 이 때 화완옹주와 정후겸은 홍계희의 친족들과 함께 합세하여 은전군 이찬(사도세자의 서자이자 정조의 이복동생, 1759~1778)을 왕으로 추대하려고 무사를 고용해 정조를 암살하려고했지만 실패한 후 붙잡혀 양사의 공격을 받고 정후겸은 사사당하고 화완옹주는 교동으로 유배형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