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경, 1662~1724
출생
1662년 아버지 김하중(1656~1698)과 어머니 안동 권씨 사이에서 태어남.
배경
조선 중기 소론 강경파 중신. 숙종(1661~1720, 재위1674~1720), 경종(1688~1724, 재위1720~1724)등을 모셨던 신하로 1721년(경종1년)경종이 병약하다는 이유로 노론 정권(친 연잉군)에서 세제 연잉군(미래의 영조)가 대리청정을 실시하게 함을 김일경이 반대하면서 노론탄압에 앞장선다.
그 결과 1721~1722년까지 2년간의 신임옥사(1721년 신축년+1722년 임인년 앞글자 따서)로 노론 4대신(김창집, 이이명, 조태채, 이건명)을 포함해 수백명의 노론을 처형시키고 유배보내게 되면서 노론이 실각하고 소론이 정권을 장악하게 된다. 신임옥사 이후 2년뒤 1724년 경종이 승하하고 연잉군이 영조(1694~1776, 재위1724~1776)로 즉위함에 따라 노론이 다시 재집권하는데, 영조는 즉위하자마자 김일경에게 신임옥사의 수괴라는 죄목을 씌워 1724년 참수시키기에 이른다.
관직
1687년(숙종13년) 생원시와 진사시에 모두 합격하고, 1699년(숙종25년), 1702년(숙종28년)식년문과 장원, 1707년(숙종33년)중시 문과에 장원하게 되면서 3회에 걸쳐 과거에 급제하고 정6품 정언, 정6품 감찰등을 거쳐 1710년(숙종36년) 정3품 동부승지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노론대신에 의해 강등된다.
당시 세자였던 윤(미래의 경종)을 가르치는 시강원 문학으로 재직하면서 관직을 이어가는데 1720년 숙종(1661~1720, 재위1674~1720)이 승하함에 따라 경종이 즉위하고 다시 동부승지에 오르게 된다.
문제의 발단
숙종 승하후 오른 경종(1688~1724, 재위1720~1724)은 어릴적부터 병약했는데 노론 대신들은 경종이즉위한지 1년밖에 안된 시점인 1721년에 상소를 올려 세자가 없고 병약한 경종을 걱정해 하루빨리 세자를 세울 것을 주청한다.
이에 경종은 건의를 받아들이고 이복동생이였던 아우 연잉군(미래의 영조)를 왕세제로 책봉케끔 한다. 그러나 소론과 김일경은 이에 즉시 상소를 올려 연잉군이 왕세제가 되는 것이 합당치 않다는 주장을 펼치게 된다. 이들은 경종과 선의왕후 어씨(1705~1730)가 충분히 후사를 얻을 만큼 젊은데 즉위한지 1년밖에 되지않은 시점에 세자문제를 논의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거기에 모자라 노론은 연잉군이 왕세제로 책봉된지 두달밖에 되지않은 시점에 왕세제의 대리청정을 강행하려고 하는 것을 사헌부 집의 조성복(1681~1723)이 상소를 올림에 따라 경종은 자신의 병이 회복될 기미가 없어 대리청정을 윤허하겠다는 뜻을 전한다.
신임옥사
I. 혼돈
위의 문제로 노론과 소론사이에 큰 풍파가 일어난다. 소론측에서는 대리청정 상소를 올린 조성복을 파직하라고 하고 경종에게 대리청정의 명을 거둘 것을 호소하고 노론측에서는 영의정 김창집(1648~1722)은 대리청정을 받아들이라는 글을 올리는등 팽팽하게 맞선다.
김일경은 점점 강경 소론파가 되면서 노론측 대신들이 경종을 능멸하고 핍박한다는 것을 이유로 노론4대신을 비롯한 대신들을 처벌할 것을 요구하고 이에 질세라 노론측에서도 김일경의 처벌을 주장하고 나서지만 경종은 김일경의 손을 들어주며 노론 4대신을 유배시키면서 사실상 노론을 실각시키기에 이른다.
II. 목호룡과 삼수의 옥
1722년, 노론인 목호룡(1684~1724)은 김일경의 상소를 계기로 고변(삼수흉언 또는 삼수고변)을 하여 노론측에서 경종을 시해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고 고변한다. 삼급수라는 3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고변한다.
내용 | |
대급수 | 김용택이 보검을 백망에게 줘 숙종의 국상 때 담장을 넘어 궁궐로 들어가 세자 윤을 시해하려고 한 것 |
소급수 | 이기지, 정인중, 이희지, 김용택, 이천기, 홍의인, 홍철인이 은을 지상궁에게 주고 독약을 타게 해 세자 윤을 시해하려고 한 것 |
평지수 | 노론 수십명이 언문으로 세자를 무고하고 헐뜯는 말로 가사를 지어 궁중에 유입시키고 선왕(숙종)의 전교(명령)을 바꿔 세자를 폐위시키려 한다는 것 |
이에 경종은 격분하고 조정은 난리가난다. 고변내용에 언급된 인물들은 고문중에 죽거나 자결하고 참수를 당하고 목호룡은 동지중추부사에 오르고 김일경은 목호룡을 소론으로 전향시킨다.
그러나 김일경은 이후 노론4대신(김창집, 이이명, 조태채, 이건명)도 사형에 처하게 하여 이들은 참수를 당하고 김일경은 신임옥사 이후 정2품 우참찬, 정2품 이조판서등을 지낸다.
영조 즉위와 최후
1724년 경종이 게장을 먹고 배탈을 앓다 며칠만에 승하하면서 연잉군이 영조(1694~1776, 재위1724~1776)가 즉위한다. 다시 집권한 노론은 신임옥사의 무고를 밝히며 목호룡이 거짓고변을 이유로 체포하여 옥에 갇히고 급사하고 죽은 뒤 수급이 효수되고 김일경 또한 유배되었다가 참형으로 생을 마감한다.
이후 김일경의 자손들은 역적으로 취급받아 씨가 마른다. 이후 1908년(융희1년)이 되어서야 복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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