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급 귀족 & 관리/고려

김부식

Mintaka5 2024. 12. 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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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식, 1075~1151

 

 

출생

1075년 아버지 김근(?~?)과 미상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남.

 

배경

고대 삼국시대의 역사를 정리한 [삼국사기]를 편찬한 대명사. 신라 29대 태종 무열왕(김춘추, 602~661, 재위654~661)의 후손으로서 김부식의 증조부인 김위영(?~?)이 고려 태조(왕건, 877~943, 재위918~943)가 935년 신라 수도 금성을 경주로 이름을 바꾼 뒤 김위영을 경주의 주장으로 삼았다고 [고려사]에 쓰여있다. 

과거 급제후 송나라에 사신으로 가게되어 6개월간 송나라 휘종(1082~1135, 재위1100~1125)의 대접을 받으며 [자치통감]을 가지고 고려로 돌아온다. 1122년 인종이 즉위하면서 외척인 이자겸(1050~1127)이 국정을 휘어잡고 전횡을 일삼다가 1126년(인종4년)이자겸이 난을 일으켜 정권을 찬탈하려고 하지만 인종과 척준경(?~1144)에 의해 제거되면서 난이 진압된다. 

1129년(인종7년) 묘청(?~1135)이 서경천도운동으로 서경에 궁궐을 축조하고 위상을 높이지만, 묘청의 거사가 발각되어 천도가 불가능한 상황에 놓여지면서 묘청세력이 1135년(인종13년)서경에서 반란을 일으키게 됨에 따라 김부식은 토벌군을 이끌고 서경으로 출정하는데, 이미 서경에서 묘청세력을 죽이고 항복하여 이듬해 잔당까지 마저 소탕하게 된다. 

이후 인종의 명을 받들어 [삼국사기]편찬을 진두지휘하게 된다. 

 

초기 관리시절

1096년(숙종1년)에 과거에 급제하여 관리가되어 말단직을 거쳐 한림원의 직한림으로 발탁되면서 20여년동안 한림원에 종사하면서 학문을 발전시키고 후학들을 가르침과 동시에 1121년 당시 군주이던 예종(1079~1122, 재위1105~1122)에게 경사(강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1122년(인종원년)에 예종이 승하하고 인종(1109~1146, 재위1122~1146)이 즉위하면서 인종의 외척인 이자겸(1050~1127)이 국정을 사실상 장악해버려 김부식이 이자겸에 대해 불만은 있었지만 조용히 있어서 승진을 하긴 한다. 

 

이자겸

1122년 이자겸이 외척으로서 국정을 장악하는데 한안인(?~1122)일파를 제거하였다. 한안인은 예종의 측근세력으로서 군주의 전제정치에 보탬이 되고있었는데, 인종이 즉위하고 나서 이자겸일파에 의해 제거가 되어 조정은 이자겸의 치하에 들어가게 된다. 이자겸은 2녀를 예종의 계비로(순덕왕후 이씨, 인종의 어머니), 인종에겐 3녀, 4녀(연덕궁주, 복창원주)를 시집보내게 됨에 따라 인종은 사실상 이자겸일파에 끌려다니는데.. 인종은 이렇게 끌려다니는 형국에 불만이 컸는데, 마침 인종의 왕당파였던 김찬(?~?), 안보린(?~1126)등이 이자겸세력을 척결하고자 1126년(인종4년)먼저 움직인다.

그렇게 궁에 머무르고 이썬 척순(1088~1126), 척준신(1071~1126), 전기상(?~1126), 김정분(?~1126), 최영(고려말기 최영 아님, ?~1126)등 이자겸 측근들을 척살하고 궁을 폐쇄시켜 이자겸을 압박하기에 이른다. 이후 최측근인 척준경(?~1144)이 인종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글을 바치면서 이자겸을 잡아 유배보내고 그해 사망한다. 

 

묘청의 난

1129년(인종7년) 묘청(?~1135)세력이 수도를 서경으로 옮기자는 계획을 주장해 서경천도운동이 시작되면서 서경에 궁을 축조하고 행사를 열면서 인종또한 이에 자주 서경으로 행차하여 진행상황을 목격한다. 그러나 이 모든것이 서경천도를 빙자한 조작이 들통나게 되면서 1134년 인종이 서경으로 행차하려던 걸 김부식 일파가 겨우 막아내게 된다. 그렇게 인종또한 서경천도를 하지않기로 마음먹게 된다.

이에 묘청 일파들이 1135년(인종13년) 서경에서 반란을 일으키는데 이것이 묘청의 난이다. 김부식이 토벌군 원수가 되어 서경으로 출정하는데, 이미 서경내부에서 여론이 갈려 우왕좌왕하다가 그곳에 있던 서인들이 묘청 일파중 묘청과 유담을 살해하면서 항복을 하지만 묘청 세력중 한명인 조광이 살아남아 군대를 이끌고 다시 서경을 포위하지만 김부식은 이들 잔당을 1136년 모두 소탕하면서 반란이 마무리가 된다.

그렇게 김부식은 반란을 진압한 공으로 크게 승진한다.

 

삼국사기

김부식은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난등을 모두 수습하고 난뒤 왕실이 안정을 되찾게 됨에 따라 인종(1109~1146, 재위1122~1146)의 명으로 [삼국사기] 편찬을 맞게 된다. 이 때 참여한 편수관(사관:역사 기록, 편찬 담당관)은 총11명으로서 김부식을 그 수장으로 한다. 

  생몰년도 직위
김부식 1075 ~ 1151 리더
최산보 ? ~ ? 감수국사
이온문 ? ~ ?
허홍재 ? ~ 1170
서안정 ? ~ ?
박동계 ? ~ ?
이황중 ? ~ ?
최우보 1111 ~ 1170
김영온 ? ~ ?
김충효 ? ~ ? 관구
정습명 1095 ~ 1151

삼국사기는 1145년(인종23년)완성되는데, 이는 삼국시대(고구려, 백제, 신라), 통일신라시대, 후삼국시대(후고구려, 후백제, 신라)의 역사를 다루는 역사서이다.

삼국사기는 오늘날까지 가장 오래된 역사서로 일연(1206~1289)의 삼국유사와 더불어 한국 고대사의 사료로서 현재까지 그 명목을 유지하고 있다. 

 

 

사망

1151년(의종5년) 76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19년뒤 1170년(의종24년) 정중부(1106~1179)주도로 무신정변이 일어나 부관참시를 당한다. 무신정변의 신호탄이 되었던 김돈중(1119~1170)은 김부식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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