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급 귀족 & 관리/고려

좌의정 배극렴

Mintaka5 2024. 12. 18.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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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극렴, 1325~1392

 

 

출생

1325년 고려 경상도 경산부 성산현 성주읍(현 경북 성주군)에서 아버지 배현보(?~?)와 어머니 성주 이씨 사이에서 태어남. 

 

배경

여말선초 관리로 조선의 초대 좌의정까지 지낸다. 개국공신 1등에 책록된 대신으로서 고려말기 문하우시중으로서 이성계의 핵심세력이였던 정도전(1342~1398), 조준(1346~1405)등과 함께 고려 마지막 군주 공양왕(1345~1394, 재위1389~1392)을 폐위시키고 태조 이성계(1335~1408, 재위1392~1398)를 추대하는데 지대한 역할을 한 인물.

고려때부터 왜구를 격파하는등 명성이 높았는데, 1388년 이성계와 조민수(1324~1391)가 요동에 출병할 때 우군도통수 이성계의 휘하 장수로 참여하여 위화도회군에도 참여하였다. 

이후 요직에 오른 뒤 이성계 일파 정도전, 조준등과 함께 공양왕을 몰아내고 이성계를 조선 초대 태조로 추대하여 개국공신 1위에 책록된다.

 

 

관리

1353년(공민왕2년) 음서로 진출해 관리가 되어 문신, 군인으로서 활동한다. 음서로 진출 이후 진주목사, 상주목사등 중앙정계보다는 지방외직을 다니며 관리로서의 직무를 하다가 1376년 왜구가 경상도 진주를 공격하게 되면서 진주도원수에 임명되면서 왜구를 반성현(진주목)에서 크게 무찌르면서 이듬해 1377년 경상도 도순문사에 임명된다. 

도순문사 임명 이후 욕지도, 하동, 진주, 청도, 울주, 사주등에서 왜구들을 계속 격파하면서 중앙정계로부터 인정을 받게 된다. 그렇게 1380년(우왕6년) 밀직부사에 이르게 된다.

 

위화도 회군

1388년(우왕14년) 우왕(1365~1389, 재위1374~1388)이 최영과 의논끝에 요동정벌을 단행하게 되면서 좌군도통사 조민수, 우군도통사 이성계를 주축으로 하여 정벌군이 꾸려지는데 배극렴역시 조전원수로 이성계의 수하로 참전하게 된다.

여러번 위화도 회군에서 언급했듯이 이미 이성계는 우왕과 최영이 요동정벌을 천명할때부터 '사불가론'을  통해 요동정벌이 불가함을 주청하여 우왕의 공감을 사긴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사불가론 내용
I 작은 나라로서 큰 나라를 공격할 수 없다(규모 자체가 비교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고 공격에 성공할지라도 고려에 후폭풍이 닥칠 것이다).
II 여름에 군사를 동원할 수 없다(장마가 시작됨에 따라 군량미를 옮기는데 무리가 있고 압록강이 불어나 도하가 불가능할 수 있다 그러니 가을로 미루자).
III 고려 전역에 있는 군사를 동원시켜 멀리 나가버리면 그만큼 고려 후방의 방비에 틈이 생겨 왜구가 침략할 가능성이 있다.
IV 장마철의 높은 습도로 인하여 활의 시위가 느슨해짐에 따라 전투가 힘들어지고, 역병이 창궐할 것이니 즉시 회군시켜달라. 

그렇게 요동정벌이 진행되게 되면서 이성계, 조민수의 정벌군이 위화도에 다다르긴 하는데.. 

1388년 여름, 이미 장마철에 도달하여 물이불어나 도하를 하지도 못하는데 군량미도 떨어지고 전염병까지 창궐하면서 이성계와 조민수가 우왕에게 상소를 올려 회군의 불가피함을 피력하지만 우왕과 최영은 들어주지도 않고 환관 김완(?~?)을 보내 출정을 독촉하기까지 하면서 이들은 김완을 억류시키고 서로의 협의를 통해 회군을 결정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5만에 달하는 정벌군이 회군하면서 당황한 최영(1316~1388)은 최대한 개경을 방어하기에 나서지만 5만의 군대를 막아내기엔 역부족이였고 그렇게 회군한 군대에 의해 체포되고 최후를 맞고, 우왕이 폐위되게 된다. 이 회군이 성공하면서 이성계가 권력을 잡게 됨에 따라 배극렴도 승진이 빨라진다.

1389년 판개성부사, 문하찬성사, 1390년 회군공신에 책록, 양광도찰리사에 임명되는등 요직에 오르게 된다. 그리고 삼군도총제부 중군총제사, 판삼사사까지 되었다가 1392년 종1품 수문하시중과 문하우시중에 오르게 된다. 

 

조선

1392년 문하우시중으로서 이성계의 핵심세력인 정도전(1342~1398), 조준(1346~1405)등과 함께 고려 마지막 군주 공양왕(1345~1394, 재위1389~1392)을 폐위시키는데 앞장서고 이성계를 조선의 초대 태조로 추대하게 되면서 개국공신 1등에 책록되고 문하좌시중(좌의정)에 오르면서 고려-조선에 걸친 정승이 된다. 

 

사망

그러나 개국공신 1등에 책록된 뒤 병으로 문하좌시중(좌의정)을 사직하고 이틀만에 사망한다. 67세.

태조 이성계(1335~1408, 재위1392~1398)는 배극렴이 사망하면서 3일간 조회를 폐하고 1주일동안 소선(아끼는 신하가 사망했을 시 생선,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음식으로 간소화한 상차림)을 하고 장례를 별도의 관리에게 맡겨 최대한으로 예우를 갖춰 치르게 해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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