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충헌, 1149~1219
출생
1149년 고려 개경 우봉군(현 황해도 금천군 우봉면)에서 아버지 최원호(우봉 최씨 시조, ?~?)와 어머니 진강국대부인 유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남.
배경
100년간의 무신정권(1170~1270)에서 과반이 훨씬 넘는 기간인 62년간 유지된 무신 최씨정권의 시작을 여는 인물. 1196년 아우 최충수(1151~1197)와 함께 이의민(?~1196)을 죽여 정권을 장악한다. 1219년 사망할 때 까지 23년간 4명의 군주를 갈아치우는 절대 권력을 누린다.
대수 | 묘호 | 생몰년도, 재위기간 | 비고 |
19 | 명종 | 1131 ~ 1202, 재위1170~1197 | 1197년 최충헌형제의 정변으로 폐위, 창락궁에 유폐 |
20 | 신종 | 1144 ~ 1204, 재위1197~1204 | 1204년 희종에게 강제로 양위 |
21 | 희종 | 1181 ~ 1237, 재위1204~1212 | 1212년 최충헌 암살 실패로 폐위당함 |
22 | 강종 | 1152 ~ 1213, 재위1212~1213 | 19대 명종의 아들, 즉위1년만에 승하 |
고려 최고위 작위까지 싹쓸이하며 왕을 능가하는 권위를 차지하여 1219년 사망할 때까지 권세를 누린다.
무신의 시작
음보로 관직에 올라서 문반 말단직을 돌다가 1170년 정중부()의 주도로 무신정변이 일어나 무반 산원()이 되면서 정착된 관리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1174년(명종4년) 서경유수 조위총이 의종(1127~1173, 재위1170)시해를 명분으로 서경에서 난을 일으킨다. 의 난을 진압을 위해 투입되어 공을 세우게 되면서 이름이 등장한다. 원수 기탁성(?~1179)에 의해 선봉에 서서 공을 세워 별초도령(7~8품급)에 제수되어 이후 지속적으로 공을 세워서 별장(7품)으로 승진.
이후 낭장(정6품), 중랑장(정5품), 장군(정4품)에 이른다.
비둘기 시비로 생긴 쿠데타
1196년 최충헌의 동생 최충수는 집에서 키우던 비둘기가 이의민의 아들인 이지영(?~1196)의 하인이 훔쳤다는 것을 알고 돌려달라고 이지영을 찾아갔는데 이에 이지영은 최충수를 패고 이틀간 가두어두는 일이 벌어짐에 충수가 형 충헌을 찾아와 이들을 제거하자고 권유함에 따라 이의민 가족을 제거할 계획을 세우게된다. 그렇게 1196년 이의민 일가를 모두 죽여 이소식을 들은 명종(1131~1202, 재위1170~1197)이 최충헌에게 정권을 넘긴다.
그렇게 최충헌은 정적 두경승(?~1197)을 죽여 명종에게 봉사10조를 올려 정치적 폐단을 시정하고 왕에게 반성을 촉구시킨다. 아래표는 최충헌이 명종에게 올린 봉사10조항에 대한 내용이다(출처-위키피디아)
봉사10조 | 내용 |
1조 | 왕은 정전으로 환어할 것 |
2조 | 필요 이상의 관원을 도태시킬 것 |
3조 | 토지의 점유를 시정할 것 |
4조 | 조부를 공평히 할 것 |
5조 | 왕실에 공상을 금지할 것 |
6조 | 승려를 단속하고, 왕실의 고리 대금업을 금지할 것 |
7조 | 청렴한 주군의 관리를 등용할 것 |
8조 | 백관의 사치를 금하고 검소 절약을 숭상케 할 것 |
9조 | 비보사찰 이외의 사찰을 없앨 것 |
10조 | 관리들의 아부를 지적, 인물을 가려 등용할 것 |
집권
I. 명종 폐위
그러나 최충헌이 올린 봉사10조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명종이 최충헌을 위협하게 되면서 결국 명종을 1197년 창락궁에 유폐시키고 평량공 왕민을 즉위시키는데 이가 고려 20대 신종(1144~1204, 재위1197~1204)이다. 신종이 즉위한 후 최충헌은 자기 가문 우봉 최씨 일파들로 가득채운다.
그러나 아우 최충수가 딸을 태자(미래의 희종)비로 삼으려 신종에게 강요하고 이미 있던 태자비를 내보내게 되면서 최충헌은 이를 반대하면서 서로 충돌이나 이후 무력충돌까지 발생함에 따라 충헌은 아우 충수를 살해하게 된다.
II. 만적의 난
1198년(신종1년) 최충헌의 노비인 만적(?~1198)이 반란을 모의하며 같은 노비들을 모으지만 수백에 불과한 노비에 거사를 진행할 수 없을거라 판단하고 거사일을 미루게 되는데, 그중 한 노비(박사 한충유)가 주인에게 계획을 밀고하고 한충유가 최충헌에게 밀고하면서 아예그냥 이들을 강에 빠져 죽인다.
III. 신종 강제양위, 교정도감
1204년 신종(1144~1204, 재위1197~1204)에게 강제로 태자에게 양위를 강요하게 되면서 태자가 21대 희종(1181~1237, 재위1204~1211)이 된다. 뭐 나름 1209년 이규보(1169~1241)를 발탁해 문화를 중흥시키고자 애쓰지만 계속해서 자기 목숨을 노리는 이들이 나옴에 따라 막부형 교정도감을 설치해 국정 전반을 감독해 정치를 이끈다.
IV. 희종 폐위
1211년(희종7년) 희종의 내시낭중 왕준명(?~?)을 중심으로 한 신료들이 최충헌을 죽이고자 희종이 최충헌을 궁으로 홀로 불러들여 암살단을 숨겨놓고 습격해 최충헌을 죽이고자할때 최충헌이 필사적으로 이를 막아내고 희종에게 살려달라고 하지만 희종은 모르는척하고 문을 닫아버림으로서 죽을뻔 하지만 도방의 군사들이 필사적으로 최충헌을 구해내 위기에서 벗어난다. 이 일로인해 최충헌은 희종을 폐위시켜 강화도에 유폐시킨다.
그리고 다음 왕은... 한남공 왕정으로 명종의 아들인 59세의 22대 강종(1152~1213, 재위1211~1213)이 된다.
V. 고종
강종이 1211년 즉위 이후 2년만에 고령(61세)으로 인해 승하하면서 태자 왕철이 즉위하는데 이가 23대 고종(1192~1259, 재위1213~1259)이 된다.
그렇게 4명의 왕을 본인이 갈아치우면서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하면서 위상이 점점 높아지게되는 효과를 얻게 된다.
장부의 사망
1219년 사저인 개경 안흥리에서 70세로 사망하게 되는데, 죽기 전 연회를 열다가 사망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