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보인, 1387~1453, 영의정재임1451~1453
출생
1387년 아버지 도평의밀직사 황보림(1333~1394)과 어머니 탐진 안씨[도원수 안우(?~1362)의 딸]사이에서 태어남.
배경
세종(1397~1450, 재위1418~1450), 문종(1414~1452, 재위1450~1452)대의 관리로 김종서(1383~1453)와 함께 4군6진 개척을 하고 김종서와 정분(1394~1454)과 함께 세종의 고명대신중 한명. 문종은 영의정(황보인, 1387~1453), 좌의정(남지, 1392~1453), 우의정(김종서, 1383~1453)에게 자신이 죽고나면 단종(1441~1457, 재위1452~1455)을 잘 보필하라는 문종의 유언을 받들지만 수양대군의 기습적인 정변인 계유정난으로 인해 김종서와 함께 살해당한다.
관리
1414년 27세의 나이에 친시문과에 급제하면서 관리로서의 생활을 시작한다.
직위 | 소속기관 | |
1414년 | 친시문과 급제 | |
1418년 | 정6품 좌정언 | 사간원 |
1422년 | 종3품 부정 | 사재감 |
1425년 | 종4품 소윤 | 한성부 |
1427년 | 지승문원사 | 승문원 |
1428년 | 종3품 집의 | 사헌부 |
1429년 | 정3품 동부대언 | 승정원 |
1430년 | 정3품 지신사 | 승정원 |
1431년 | 정3품 참의 | 형조 |
종2품 강원도 관찰사 | 강원도 | |
1432년 | 종2품 좌참판 | 형조 |
종2품 우참판 | 병조 | |
1436년 | 정2품 판서 | 병조 |
1440년 | 정1품 도체찰사 | 함길도 |
1445년 | 종1품 좌찬성 | 의정부 |
1447년 | 정1품 우의정 | 의정부 |
1451년 | 정1품 영의정 | 의정부 |
1414년 이후 40여년간 승진을 거듭하며 일인지하 만인지상 정1품 영의정에 오르게 된다.
고명대신
황보인, 정분, 김종서등 고명대신은 문종대가아니라 세종(1397~1450, 재위1418~1450)대에 고명대신이된 것. 각각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으로서 세종은 이미 장남인 문종이 병약해 오래살지 못 할 것이라는 것과 차남 수양대군(미래의 세조, 1417~1468, 재위1455~1468)의 야심을 이미 눈치채고 있었기에 이들을 고명대신으로 하여금 세손(단종)을 암묵적으로 보필해라는 뜻이 담겨있었을 것.
계유정난
1452년 문종이 승하하고 단종(1441~1457, 재위1452~1455)이 즉위한다. 불과 11세의 나이로 즉위하여 수렴청정할 대비가 있어야 했는데,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 권씨(1418~1441)는 단종을 낳고 산욕열로 사망했고 대왕대비 소헌왕후 심씨(1395~1446)역시 단종이 5살일때 사망함으로서 후궁들만 남아있었다. 그러나 후궁이 수렴청정이 되기엔 정치적 부담과 더불어 권위가 떨어져서 문종의 후궁들과 세종의 후궁 혜빈 양씨(?~1455)역시 수렴청정을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거기다가 세종의 아들(문종을 제외한 7명의 대군)들은 단종의 왕권에 크게 위협이 되는 대상이였다. 그중 차남 수양대군과 3남 안평대군(1418~1453)의 세력이 가장 컸다.
그래서 단종이 즉위한 후 모든 권력은 고명대신 황보인, 정분, 김종서가 가지고 있었는데, 조정의 대신들이 세종의 3남 안평대군과 결탁하며 수양대군은 위험함을 느껴 권람, 한명회등을 자기세력을 만든다.
수양대군은 책사 한명회등 도움을 받아 고명대신, 조정 중신들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명나라 사신으로 자청해서 가려고 했다. 사신으로 간 동안 고명대신, 조정 중신들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리는데 나름 성공해 다시 돌아온 후 살생부를 작성하고 거사를 준비했다.
첫째 목표는 고명대신중 가장 강한 권한을 가졌던 김종서(1383~1453)로, 무방비상태로 수양대군의 수하에게 철퇴를 맞아 살해당하면서 계유정난이 시작된다. 그리고 바로 황보인역시 살생부에 적혀진 인물로서 철퇴를 맞고 살해당한다.
이 때가 1453년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