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rdinand III, 1608~1657, 로마왕재위1636~1653, 신성로마재위1637~1657
출생
1608년 신성로마제국 그라츠(Graz)에서 아버지 신성로마황제 페르디난트2세(Ferdinand II, 1578~1637, 재위1619~1637)와 어머니 마리-안 드 바이에른(Marie-Anne de Bavière, 1574~1616)사이에서 태어남.
배경
페르디난트2세의 셋째아들로, 위의 두형 크리스티안 카를과 카를-요한이 어릴때 요절해버리면서 사실상 장남. 신성로마황제에 선출 될때에는 30년전쟁 중반~막바지에 접어드는 단계로서 점점 제국에 불리해지는 때에 즉위하게 되어 어려운 시기에 즉위하여 지휘를 한 군주. 1648년 30년전쟁을 베스트팔렌 조약을 끝으로 성사시켜 일단은 급한 불을 끄고 조약의 조항들을 이행하나가는데 사실상 재위기간을 다 보냈다고 봐도 무방.
즉위
위에 언급한 것 처럼 위의 두 형이 모두 어릴때 사망하여 장남이나 다름없던 페르디난트가 1636년 아버지 페르디난트2세로부터 로마왕에 선출되고, 1637년 아버지 페르디난트2세가 승하하면서 신성 로마 황제로 선출 된다.
30년전쟁
1635년에 프랑스 루이13세(Louis XIII, 1601~1643, 재위1610~1643)와 리슐리외 추기경(Cardinal de Richelieu, 1585~1642)이 개신교파로 참전하게 되면서 제국에 점점 불리한 전세가 이어지면서, 1641년 레겐스부르크에서 제국 의회를 열어서 최대한 빨리 종전을 시키기위해 제후들을 불러 회의를 해서 전쟁을 빨리 끝내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진다.
이렇게 된 이상 페르디난트3세도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제후들에게도 독자적인 외교을 양보해서더라도 협치를 이끌어낼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이에 황권은 추락할 수 밖에 없었지만..
수년간에 걸쳐 프랑스, 스웨덴과의 협상을 통해 최대한 전쟁을 빨리 끝내고자 했고, 1648년 각각 뮌스터(베스트팔렌주 뮌스터 현)와 오스나브뤼크(니더작센주 도시)에서 베스트팔렌 조약을 체결하게 되면서 30년전쟁을 드디어 종식시킨다. 프랑스에게는 제국 서쪽 프랑스 국경쪽 알자스, 로렌을 양도하고 스웨덴에게는 제국 북쪽 포메라니아(현 폴란드 서부)를 내주게 된다. 이때 네덜란드가 공식적으로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하게되고, 제국령에 모든 개인에게 신앙의 자유가 주어지면서 위에 언급된 제후들의 독자적인 외교권까지.. 황제로서의 권위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자 이행해야지..
영토 내줄건 내주고, 종교 관용 정책을 더욱 곤고히 실시하게 되면서 안정은찾았지만, 사실상 조약으로 인해 황제의 영향력이 약화되는 계기가 되어버리지만 일단 조약에 명시된대로 이행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거기다 프랑스와 전쟁중이던 스페인 합스부르크 가문출신 군주 펠리페4세(Felipe IV, 1605~1665, 재위1621~1665)에 대한 지원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승하
1657년 사망하면서 둘째아들 레오폴트에게 신성로마황제위가 가게 된다.
이는 장남 페르디난트(1633~1654)가 본인보다 먼저 사망하면서 둘째 레오폴트가 레오폴트1세(Leopold Ier, 1640~1705, 재위1658~1705)로 즉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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