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급 귀족 & 관리/조선

30, 37대 영의정 한명회

Mintaka5 2024. 9. 14.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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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 Myeong-hoe, 1415~1487, 영의정 재임1466~1467, 1469

 

 

출생

1415년 조선 한성부에서 아버지 한기(1393~1429)와 어머니 여주 이씨 사이에서 태어남. 

 

배경

계유정난(1453)을 통해 세조(1417~1468, 재위1455~1468)를 즉위시키는 데 앞장선 킹메이커로서, 문/무에 고루 재능이 있어 권신으로서 강력한 권력을 가져 정1품 영의정에도 오르고, 두 딸을 예종(1450~1469, 재위1468~1469)과 성종(1457~1494, 재위1469~1494)에게 시집보냄으로서 왕실의 외척세력까지 겸비하게 되면서 일인지하만인지상에도 모자라 국구(군주의 장인)의 자리까지 오르는 어마무시한 배경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큰 힘엔 큰 책임이 따른다고 했던가, 권력이 크다못해 거대한 권력으로 인한 남용이 말년에 갈수록 심해지면서 주변에서 날을 세우고 지켜보는 와중에 1485년 자신의 사적 정자였던 압구정에 명나라 사신들을 성종에게 고하지 않고 사사로이 불러 접대한 일이 발각되어 대간들에 의해 탄핵되면서 모든 관직이 삭탈되게 된다.

  

아따 늦네

한명회는 1452년 38살이라는 늦은 나이가 되어서야 궁에 들어오는데 음서로 관직에 진출했기 때문에 특혜시비가 있지만, 어자피 들어와도 말단직이였기에 음서치고는 낮은 직급에서부터 관직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늦바람이 무섭다고 할까.. 

 

기회를 마 잘 잡아야혀 

I. 수양대군

한명회는 가난하게 자라면서 불우한 유년기를 보내면서 커감과 동시에 사교성이 좋아 권람, 신숙주등과 친하게 어울려 풍류를 즐기다가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양대군 이유(미래의 세조)를 소개받게 된다. 수양대군 역시 한명회를 비범하게 보며 측근으로 두게 된다. 

1452년 38세라는 당시에 늦은 나이로 음서로 벼슬을 받게 되어 궁에 들어가는데, 이미 소개받았던 수양대군과 이때부터 거의 매일 붙어서 교류를 하게 된다.  

II. 벽이 높네..

음서로 벼슬을 받았기 때문에(당시 조선에서는 음서로 관직을 받을 시 말단자리까지밖에 못오르는 인식이 있었다)한계를 느낀 한명회는 친구인 권람에 의해 수양대군의 책사로 천거되면서 이때부터 능력발휘를 제대로 하기 시작한다. 마침 이때 수양대군의 형이자 조선5대 국왕인 문종(1414~1452, 재위1450~1452)이 승하하고 문종의 세자인 어린 단종(1441~1457, 재위1452~1455)이 즉위한 틈에 이들은 수양대군을 왕위로 올려놓을 계획을 세우는데, 수양대군은 한명회에게 이 계획을 듣고 처음엔 망설이다가 이내 결심을 세우고 세력을 결집하기 시작한다. 

III. 계유정난

1453년 수양대군이 상국인 명나라의 사신으로 가게되는데, 사실상 자신이 명나라로 가게됨으로서 난이 일어날 거란 걸 눈치채지 못하게 안심시키는 효과를 얻기위해 간 것이라고 한다. 이로 인해 정말로 김종서 황보인등 대신들의 경계심도 낮춰지는 효과를 얻게 된다.

그렇게 다시 조선으로 돌아오자마자 경계를 미처 하지 못한 반대파 대신들을 모조리 쓸어버리기위해 한명회는 책자를하나 쓰는데, 이것이 살생부. 문종이 어린 단종이 위험에 처할까봐 김종서, 황보인, 정분등에게 단종을 보필하라고 유언을 남겼는데, 한명회는 이들을 살생부 첫페이지에 쓰면서 난을 계획한다.

그렇게 1453년 10월에 김종서를 죽임으로서 사실상 계유정난이 시작된다. 영의정 황보인역시 김종서가 죽고난 이후 바로 죽임을 당한다. 살생부에 있는 사람들 모두 죽인 건 아니고, 핵심인물3인방을 포함한 사람들은 죽고 나머진 유배를 보내 사사하는등으로 성공적으로 난을 종료하게 된다.

계유정난이 수양대군측의 승리로 끝나면서, 정난공신을 등수에 따라 책록하게되면서 사실상 주요 관직에 고루 앉히고 수양대군은 영의정(1453~1455)에 오르게 된다. 단종은 허수아비 왕 신세가 되어버려 국정을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이끌려다닐 수 밖에 없었고, 수양대군은 단종을 지속적으로 압박해 1455년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선위하는 형태의 그림으로 수양대군이 세조(1417~1468, 재위1455~1468)로 즉위하게 되고 단종은 상왕으로 물러나게 된다. 

세조가 즉위한 다음해인 1456년 집현전 학사 성삼문을 포함한 여러 학사들은 세조를 암살할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이들 중 한명인 김질(1422~1478)이 장인이였던 수양대군의 최측근 정창손(1402~1487)에게 일러바쳐 정창손이 세조에게 고변함으로서 이들이 모두 붙잡혀 관련자들을 처형하고 유배보내는데 이때 처벌받은 사람만 수천명이 넘는다. 

 

말년

한명회는 이전에 예종과 성종을 거치면서 예종에게는 셋째딸 장순왕후(1445~1462), 성종에게는 넷째딸 공혜왕후(1456~1474)를 시집보냈는데, 장순왕후는 인성대군을 낳고 산욕열로 요절하고 공혜왕후 역시 20살을 못넘기고 요절해버리면서 외척으로서 권세가 하락하기 시작하는데.. 

1476년 양 대간의 탄핵과 고령(61세)으로 인해 병을 이유로 성종에게 사직을 청하지만, 성종은 거부..   계속된 사직청원으로 인해 성종은 해임하고 상당부원군으로 삼아 국가원로로서 정계에 참여하게끔 한다. 

 

승하 & 부관참시

성종18년인 1487년에 고령(72세)으로 사망하여 세조의 묘 근방에 배향되지만, 1482년 폐비 윤씨(연산군의 어머니, 1455~1482) 폐출사건을 막지않은 것에 대한 책임으로 1504년 갑자사화가 일어났을 때 폐비 윤씨 폐출에 가담한 한사람으로 지목되면서 부관참시(시체가 무덤에서꺼내져 목이 잘림)당하고 한양 중심가에 목이 걸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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