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s de La Tour (1593~1652)
프랑스 바로크&고전주의 화가, 1593년 로렌공국 낭시근처 마을 Vic-sur-Seille에서 출생
촛불화가로도 알려져있는 화가.
카라바조의 명암대조법 영향을 받아서 그 영향을 극대화시키기위해 촛불을 사용하여 명암을 더 극대화시키면서 시선을 집중시키는 기법을 사용.
위 그림처럼 임신한 여인이 오른손엔 해골을 어루만지며 초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삶의 허무함과 죽음이 느껴질만큼 분위기가 무겁게 느껴지는데, 초를 바라보면서 여인이 어떤생각을 하는지도 예측이 가지 않는다.. 방안의 촛불이 원을 그리며 은은하게 주변을 밝히는 모습이 앞서 설명한 내용과 대비가 되면서 고요함과 정적인 분위기가 느껴질 정도다.
그의 삶은 롤러코스터급은 아니지만 기울기가 상당히 가파르다고 느껴진다.
20대 때부터 부유한 귀족화가로 살아갔는데, 뤼네빌(Lunéville) 출신의 귀족 가문의 일원인 Diane Le Nerf와 1617년 결혼을 한 이후, 그의 후원자이자 그가 태어난 로렌공국 (Duché de Lorraine) 의 통치자 로렌공작 앙리2세(Henri II de Lorraine)와 공작부인 마르그리트 드 곤자가(Marguerite de Gonzague)의 든든한 후원덕분에 안정적으로 뤼네빌에 정착을 하게되었고, 공작으로부터 귀족의 일원이 되었다는 편지를 받게 됨.
후원자 Henri II가 1624년에 타계한 후, 로렌공국엔 정치구도의 변화와 신임 공작 샤를4세(Charles IV de Lorraine)의 30년전쟁(1618~1648)개입으로 인해 투르의 뤼네빌에서의 삶이 점점 기울게 되는데, 프랑스의 침략으로 점령을 당하는 수모를 겪게되는데 이는 30년전쟁의 전쟁터로 낙인이 찍히게 된 셈. 당시 북방의 강대국 스웨덴이 1635년에 이지역을 황폐화시키기에 이름. 1638년에 황폐화가 절정이되면서, 이후 프랑스 루이13세의 왕정에 들어가 작품을 그렸는데, 30년전쟁과 전염병이 휩쓸며 자식의 반이상이 일찍 죽고 이후 종교에 심취하게 되면서 신앙, 믿음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데, 이 작품들이 루이13세 마음에 쏙 들었다고 한다.
1643년 루이13세가 붕어한 이후, 다시 로렌으로 돌아와서 작품에 몰두하다가 1652년(루이14세, 재위9년)에 전염병으로 사망.
'바로크시대 화가들 > 프랑스 la Franc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아생트 리고 (0) | 2024.05.05 |
---|---|
프랑수아 드 트루아 (0) | 2024.05.04 |
시몽 부에 (0) | 2024.04.27 |
장 바티스트 시메옹 샤르댕 (0) | 2024.04.21 |
앙리 테스텔렝(1616~1695) (0) | 2024.04.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