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unchogo de Baekje, ?~375, 재위346~375
출생
300년대 초 추청 백제 위례성에서 아버지 11대 비류왕(?~344, 재위304~344)와 기록미상의 모친 사이에서 태어남. 본명은 부여구.
배경
백제의 최전성기를 이끈 군주로서 내치, 외치 모두 큰 성과를 거두면서 세력을 크게 확장한 시기. 백제의 정복군주로서 가야, 마한, 고구려까지 공격해서 371년에 평양성에서 고구려 대왕 고국원왕(300?~371, 재위331~371)까지 전사시키면서 그 명성이 한반도에 널리 떨쳐지게 된다.
중원의 동진, 왜나라등과도 교류해 백제의 문화를 전파시키고 불교가 중흥하는 시기로서 많은 역사적 가치를 지닌 것들이 이때 많이 만들어지게 된다.
즉위
12대 계왕(?~346, 재위344~346)이 승하하면서 부여구가 즉위하게 되는데, 근초고왕 즉위전의 계왕은 먼 친척이였는데, 둘은 5대 초고왕(?~214, 재위166~214) 으로부터 나온 6대 구수왕(?~234, 재위214~234)계열과, 8대 고이왕(?~286, 재위234~286)계열이 있는데 계왕은 고이왕 계열, 근초고왕은 구수왕 계열이였다.
5대 초고왕 | ||
I | 6대 구수왕(구수왕 계, ?~234, 재위214~234) | 8대 고이왕(고이왕 계, ?~286, 재위234~286) |
II | 7대 사반왕(?~234, 재위234) | 9대 책계왕(?~298, 재위286~298) |
III | 11대 비류왕(?~344, 재위304~344) | 10대 분서왕(?~304, 재위298~304) |
IV | 13대 근초고왕(?~375, 재위346~375) | 12대 계왕(?~346, 재위344~346) 계왕을 끝으로 고이왕계 혈통 끊김 |
계왕이 즉위2년만인 346년 승하하면서 고이왕계 혈통이 끊어지고 구수왕 계인 부여구가 13대 근초고왕으로 즉위한다.
정복해야지?
I. 마한정복
백제의 근간이였던 삼한중 하나인 마한은 54개의 부족국가의 연맹체였는데, 백제의 세력이 커짐에 따라 점차 압박을 받아 근초고왕때 정복당해 완전히 백제의 영토로 흡수된다. 근초고왕은 마한이 차지하고 있던 한강유역을 장악하면서 산물이 풍부해 경제적으로 풍요로움을, 한강이 서해바다로 흐르면서 중원과 왜와도 교역할 수 있었던 요충지를 얻었던것.
고부가가치 영지의 마한을 흡수시키면서 근초고왕의 백제는 중흥기를 열게되면서 한반도내 삼국뿐만아니라 중원, 왜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는 강대국이 되었다.
II. 고구려
근초고왕 23년인 369년, 고구려의 고사유(고국원왕)이 2만의 고구려 병력을이끌고 고구려-백제 경계지역인 치양(현 황해도 배천)을 공격하여 근초고왕은 태자 부여구수(미래의 근구수왕)에게금 병력을 주어 참여하게끔 했다. 이때 부여구수는 고구려에서 원래는 백제인이였던 사기()가 백제로 와서 고구려 군사기밀을 알려주게됨으로서 확신에 찬 부여구수가 고구려군을 공격해 크게 승리해서 치양 북쪽 수곡성까지 진군하기에 이른다. 이것이 치양 전투(369)이다.
잠시 물러갔다가 371년(근초고왕24년) 다시 고국원왕이 군대를 이끌고 패수쪽으로 와서 백제군과 맞붙지만 대패하고 평양성으로 들어가면서 백제군이 평양성을 에워싸 포위전을펼치다가 고국원왕이 백제군에 의해 전사한다. 이것이 평양성 전투(371)로서 고국원왕 전사이후 두 국가는 회복될 수 없는 원수지간이 된다.
고국원왕 전사에 대한 복수를 100년정도 지난 이후 증손주 고구려 20대 장수왕(394~491, 재위413~491)이 개로왕(?~475, 재위455~475)을 죽임으로서 복수 하게된다.
이것이 우리 백제것이여
I. 교역 시작
당시 왜국은 야마토정권(250~710)이 일본 본토를 다스리고 있었는데 백제, 가야등과 무역, 문화적 교류 관계를 맺어 백제의 문화가 왜로 들어와 왜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외교관계는 물론이고, 군사적으로도 백제의 도움을 받아 왜국 내에서도 세력확장을 하며 이익을 취했고, 백제의 선진문물 문화등을 전파하게 되면서 왜국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되며 왜국이 국가를 형성할 수 있게끔 도움을 취해주었다고 한다.
II. 칠지도
야마토정권과 백제간의 국교가 수립되면서, 근초고왕은 사신을 통해 칠지도(앞뒤로 문장이 새겨진 철제 칼)와 칠자경(거)을 선물했다고 전해진다.
압박
당시 신라는 내물 마립간(?~402, 재위356~402)이 통치하고 있었는데, 근초고왕이 백제의 세력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신라와 표면적으로는 외교관계를 맺었지만, 중앙집권에 성공하여 왕권이 강화된 내물마립간은 백제보다는 고구려와 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백제가 신라를 칠때 SOS를 치는등 전략적인 관계를 통해 국가를 지켜나간다.
승하
375년 승하하고, 태자 부여구수가 14대 근구수왕(?~384, 재위375~384)으로 즉위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