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ungusu, ?~384, 재위375~384
출생
출생년도는 미상, 아버지 근초고왕(?~375, 재위346~375)과 어머니 진씨사이에서 출생. 본명은 부여수.
배경
태자시절부터 아버지 근초고왕과 같이 전쟁터에 나가서 많은 전공을 세우면서 고구려의 고국원왕을 전사시키게 하는 등의 전공을 세우면서 군인으로서의 위용을 보이지만 정작 오랜기간동안의 고구려와의 전쟁으로 인해 즉위할때 상황은 좋지 못하다. 그리고 4대에 걸친 외척세력을 무시할 수도 없는 실정에서 재위를 이어나간 왕.
369년
태자시절인 369년은 부여수(근구수왕)에게있어선 아주 바쁜 한해라고 할 수 있겠다. 아버지 근초고왕과함께 남방 마한(마한은54개의 부족국가 연맹임)을 치면서 54개 부족국중 4개국의 항복을 받아낸 틈에 고구려 16대 대왕 고국원왕(300?~371, 재위331~371)이 치양성(현재 황해도 배천)을 공격하게되면서 태자였던 부여수가 대응을하러 가게되는데, 이시점에서 한 변수가 등장하는데 '사기'라는 이름의 원래는 백제인이였지만 근초고왕의 말발굽을 상하게 한 죄로 고구려로 도망쳤던 인물인데, 이때 다시 백제에 투항하게되면서 부여수에게 고구려 군사기밀을을 알려줌으로서 이 기세로 백제군은 수곡성(현재 황해도 신계군)까지 함락시키기에 이른다.
이 369년에 시작된 이 전투가 200년이넘는기간동안 간헐적으로 지속되는 고구려-백제 전쟁(369~607)의 서막이 된다.
고국원왕을 전사시키다
이때의 승리로인해 고구려에서는 자존심이 상할데로 상해버리면서 고국원왕은 371년 다시 백제를 치기위한 복수전을 감행하여 백제로 쳐들어가는데, 근초고왕은 대동강 유역에 군사를 매복시킨다음 고구려군이 접근할때 기습적으로 매복을 펼치게되면서 고구려군은 대패하고 평양성으로 후퇴하여 백제군이 진군해오게되면서 혈전을 벌이는데 이때 고국원왕이 화살에 맞아 전사하게 된다.
즉위, 장인어른
아버지 근초고왕이 375년 서거하면서 부여수가 근구수왕으로 즉위하게 된다. 즉위초기에는 역시 인사개편과 더불어 최고위직까지 막힘없이 임명해야함은 현재나 과거나 똑같은 실정이였는데, 내신좌평(좌평들중 우두머리, 현재의 국무총리격)자리에 자신의 장인어른인 진고도를 올리게 되는데 이미 어머니때부터 진씨들이 외척세력으로서 국정전반에 많은 권력을 가지고있었는데, 장인이 내신좌평이되며 사실상 최고의 권력을 가지게 됨으로서 주로 장인어른으로부터 내정이 맡겨졌다고 보면된다.
소수림왕
371년 고국원왕의 전사로인해 이를갈던 고국원왕의 장남 소수림왕(?~384, 재위371~384)이 백제에 대한 공격을 376년부터 공격하게 되면서 369년부터 이어지던 고구려-백제간 전쟁이 또 일어나게되는데, 이번에는 군대규모가 비슷한 두국가가 엎치락뒷치락하면서 싸우다가 백제가 이상기후라는 변수를 만나게 되면서 갑자기 전투능력이 떨어지게 되면서 고구려에 허점을 드러내게 되면서 고구려의 승리로 끝이나면서 소수림왕은 아버지에대한 복수를 어느정도는 한셈.
전투 이후로 가뭄, 지진, 폭우, 전염병등이 수년에 걸쳐 발생하게되면서 급기야 백성들이 굶주림을 이기지 못하는 상황에 도달하게 되면서 근구수왕은 결국 곡식을 풀어 구휼하는등의 조치를 취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이후로는 전쟁을 할 여력도 되지 못하게 되는데, 애초에 아버지 근초고왕때부터 이미 고구려, 백제, 신라중 가장 국력이 강한 고구려를 상대로 체급이 차이가 나는 전쟁을 해왔기에 이런 자연적인 변수(가뭄, 지진, 폭우, 전염병)를 감당하면서까지 수행할 능력은 되지 않았기 때문.
백제의 최전성기라 할 수 있는 아버지 근초고왕 시절때조차 당시 고구려 고국원왕때에 수많은 핸디캡들(전연의 모용황이 고구려 침입으로 인해 환도성함락, 퇴각길에 고구려백성 5만명을 끌고가고 미천왕왕릉까지 파헤쳐 미천왕의 시신까지 가져가버림 수십년간 전연과의 피터지는 서막과 백제의 침입까지)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고구려의 국력이 백제의 국력을 크게 앞질렀었다.
사망
재위10년차인 384년에 서거하게 됨.
나름 아버지때부터 이어져온 백제의 최전성기를 연장한 뛰어난 군주라는 평을 받지만, 고구려와의 오랜기간 전쟁과 자연재해등으로 인해 즉위시기 상황이 좋지않았다는 점등을 불구하고도 나름 잘 정치를 이어갔다는 평을 받는다. 후임국왕으로는 백제에 불교를 공인시킨 장남 미천왕(?~385, 재위384~3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