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군주(한국어, 프랑스어)/조선의 군주

11대 중종

Mintaka5 2024. 8. 19.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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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gjong de Joseon, 1488~1544, 재위1506~1544

 

 

출생

1488년 조선 한성부 경복궁 교태전에서 아버지 성종(1457~1495, 재위1469~1495)과 어머니 정현왕후 윤씨(1462~1530)사이에서 태어남. 본명은 이역.

 

배경

이복형 연산군의 동생이지만 정통성쪽으론 이역이 앞서므로(적통, 중전의 아들)1494년 진성대군에 봉해지게 된다. 연산군의 폭정을 두눈으로 지켜본 장본인으로서, 당시 폭정에 반발하는 신하들이 진성대군을 옹립시키기위해 중종반정(1506)을 일으킴으로서 연산군이 폐위되고 왕위에 오르게 되는 인물이다.

중종반정당시 핵심인물은 다음과 같다.

  생몰년도 문하(스승) 중종반정 이전직책 중종반정 이후직책
성희안 1461~1513 김종직 이조참판(종2품) 좌의정, 영의정
박원종 1467~1510 무과 급제 중추부지사(정2품) 좌참찬, 우의정, 좌의정
유순정 1459~1512 김종직 이조판서(정2품) 영의정

 

즉위

중종반정이 성공적으로 진행된 결과 진성대군이 11대 중종으로 왕위에 오르게 되지만, 철저하게 신하들의 주도로 이루어진 반정으로 중종의 권력은 반쪽짜리였다. 나머지 반쪽은 신하들에게 있어서 사실상 공신들에게 이끌려 갈 수 밖에 없었음. 

그러나 중종반정때 공신들은 이미 중종이 진성대군 시절인 1499년에 단경왕후 신씨(폐비 신씨, 1487~1558)와 결혼한 상태였는데 중종이 즉위하고 나서 문제가 생겨버린 게, 폐비 신씨의 아버지인 신수근(1450~1506)의 여동생 폐비 신씨(1476~1537)가 연산군의 부인이였기 때문에, 중종반정 공신들은 신씨를 내쫓아야한다고 주장해버리는바람에 어쩔 수 없이 폐위시키고 사가로 내보낼 수 밖에 없었다. 

신씨 폐위이후 두번째 왕비가되는 윤여필(파원부원군, 1466~1555)의 딸 장경왕후 윤씨(1491~1515)를 중전으로 책봉하지만 인종(1515~1545, 재위1544~1545)을 낳고 산후 후유증으로 서거해버린다. 세번째 왕비는 윤지임(내자시판관, 1475~1534)의 딸 문정왕후 윤씨(명종의 어머니, 1501~1565)를 중전으로 책봉하게 된다. 

 

왜(Why)들아..

1510년 4월 부산포(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 염포(울산광역시 북구 염포동), 제포(경남 창원시 진해구)에 거주하던 왜인들이 대마도주 다이칸 소 모리치카의 지원을 받아 조선으로 쳐들어오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때 수백명의 군사와 백성이 죽고 민가가 불에타는 등 큰 피해가 발생하게되면서 전쟁급으로 격상시켜 방어사등을 파견하여 토벌하는데, 왜측에서도 확전을 우려해 다이칸은 조선과 강화를 하기위해 사신을 보내게 된다.

1512년 다시 조선-대마도간 강화체결로 국교가 재개될 때까지 삼포는 폐쇄된다.

 

 

반정은 고마운데, 이제 좀 쉬라..

위의 표에 언급된 중종반정 핵심주축의 권력이 계속해서 강화됨에 따라 중종의 권력이 계속 축소되는 것에 불안감을 느껴, 중종은 사림파를 다시 등용하기로 하는데.. 사림파로서 연산군때 발생한 갑자사화(1504)로 유배갔다가 반정으로 복귀하게되는 남곤(1471~1527)을, 무오사화(1498)때 파직되어 유배갔던 김전(1458~1523)등을 등용시킨다. 이후 1510년대에 공신들이 줄줄이 사망하면서 훈구파세력이 약화되는 틈을 타서 사림파를 각 부서에 등용시키면서 정계로 끌어들이게 된다.

사림을 등용시키고 훈구파 공신세력을 천천히 누르면서 왕권을 되찾고자 노력하게 되지만, 너무 급진적으로 개혁을 하려고 했던 조광조(1482~1520)를 처음엔 지지하다가 기묘사화(1519, 주초위왕사건: 조씨가 왕이된다라는 글이 쓰여진 나뭇잎으로 조광조가 실각하고 사림파가 숙청됨)때 조광조의 같은편인 사림의 온건 개혁파 남곤마저도 멀리하고 중종마저도 멀리하게되면서 조광조가 당파를 만들어 과격하게 일을 벌여 궁을 어지럽힌다고 처벌해야하는 상소가 중종에게 올라가면서 조광조의 급진개혁파는 몰락하고 추진하던 개혁들은 폐지. 조광조는 1520년 유배지에서 사사.

 

작서의변

1527년 세자였던 인종의 12번째 생일무렵에 쥐의 사지를 찢어 불에지지고 동궁전(왕세자 거처) 창가에 매달아놓아 세자를 저주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복성군(1509~1533)과 복성군의 어머니 경빈 박씨(?~1533)가 지목되면서 폐서인되어버린다. 

그러나1533년 세자궁(동궁)근방에 인형에 이목구비, 머리카락을 붙여새겨진 세자를 저주하는 문구가 붙은 목패가 발견됨에따라 이미 폐서인된 복성군 모자, 두 옹주등이 재탄핵되며 사사되어버리는데, 이후 김안로(1481~1537)가 꾸민일임이 드러나게 되면서, 복성군일가가 억울하게 사사됨이 밝혀지게 된다.

 

거 윤씨들많네..

외척세력이 등장한다. 모두 파평 윤씨. 

  이름 생몰년도   기타
윤번(정희왕후의 아버지, 1384~1448)의 후손들 대윤
(인종지지)
윤임 1487~1545 을사사화때 운명이 갈림 윤여필(1466~1555)의 아들, 1512년 무과급제, 인종의 외숙부, 을사사화(1545)때 사사
소윤
(명종지지)
윤원로 1502~1547 파산부원군 윤지임(윤임과 8촌관계, 1475~1534)의 아들, 윤원형의 형, 문정왕후의 동생
윤원형 1503~1565 윤원로의 동생, 소윤의 영수, 명종의 외숙부

서로 친척이였지만 소윤, 대윤의 새로운 세력으로 나뉘게 되며 정국이 더욱 혼란스럽게 돌아가는 주축이다. 1530년대부터 세력을 형성하면서 갈등을 일으킨다. 그 갈등은 1545년 소윤(명종지지)과 대윤(인종지지)의 반목이 인종의 승하로인해 명분을 잃게된 대윤이 소윤으로부터 철저하게 탄압당한다. 윤원형의 소윤이 결국 승리하게 되면서 윤원형의 세도정치와 부패도는 명종 즉위이후 점점 더 짙어지게 된다.

 

승하

1544년 11월 14일, 병으로 누운 중종은 살날이 얼마없음을 깨닫고, 세자였던 인종(1515~1545, 재위1544~1545)에게 물려준다는 뜻을 밝히고 다음날에 승하. 

묘호는 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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