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군주/조선의 군주

14대 선조

Mintaka5 2024. 8. 20.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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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njo de Joseon, 1552~1608, 재위1567~1608

14대 선조, 출처-위키피디아

출생

1552년 조선 한성부 인달방 도정궁(덕흥대원군 사저)에서 아버지 덕흥군(중종의 8남, 1530~1559)과 어머니 하동부대부인 정씨(정인지의 딸, 1530~1567)사이에서 3남으로 태어남. 위로는 형 하원군(1545~1597), 하릉군(1546~1592)이 있다. 본명은 이균→이연.

 

배경

조선건국이후 최초의 방계출신이자 서자출신 왕이다. 숙부 명종(1534~1567, 재위1545~1567)이 후사없이 승하하면서 하성군(선조의 즉위전 봉호)이 명종의 양자로 입적하여 재위에 오르게 된다. 재위기간동안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을정도로 정계가 시끄러웠고, 더욱이 임진왜란이 터지면서 조선 건국 200년만에 위기를 맞게 된다.

 

아 좀 딸리네..

어릴적부터 총명하고 겸손했던 하성군이 명종의 총애를 받아온다(맘에 쫌 드네?, 물론 후사 지명은 하지않음)[출처-선조실록]. 하성군은 위로 두명의 형(하원군, 하릉군)이 있었고, 명종의 이복형제 해안군(1511~1573), 덕양군(1524~1581)등이 있었지만 모두 제치고 1567년 명종이 승하함에 따라 후임 국왕으로 14대 선조로 즉위하게 된다.

그러나 서자출신, 방계가문 왕이라는 점이 선조 최대의 열등감이였는데, 즉위당시 사림이 정계를 주도하고 있었고, 더욱이 선조는 즉위초기 어린나이로 인순왕후(명종의 왕후, 1532~1575)의 수렴첨정이 있을 때 사림을 대대적으로 등용해 친정을 유도케끔 하였었다. 학문에도 힘써 경연을 열어 당대의 대학자 이황(1501~1570), 이이(1536~1584), 성혼(1535~1598)과 토론을 하고 조광조(1482~1520), 노수신(1515~1590), 유희춘*(1513~1577)등을 신원회복, 석방하여 기용했다.

*유희춘은 허준(1539~1615)과 인연이 있었는데, 허준은 유희춘의 부인을 치료하고 유희춘까지 치료하여 유희춘이 이조판서 홍담(1509~1576)의 천거로 의관이 된다. 드라마 허준(1999)에도 나타나있는 장면이다.

 

붕당..붕당

선조때 정치상황을 잘 보여주는 붕당정치가 서인/동인의 서로간 경쟁, 견제로 왕권이 강화되는 면도 있었지만, 전시상황에는 이것이 치명타가 될줄 알았겠는가.. 1565년 소윤의 영수 윤원형(1503~1565)이 사망하면서 훈구가 몰락하고 선조가 사림을 등용하면서 정계에 대거 분포하게 되지만 1575년 심충겸(심의겸의 동생, 1545~1594)의 이조정랑직책(정5품의 중간품계의 비교적 낮은 품계의 직책이지만, 독단적인 추천권, 인사권을 가지는 매우 핵심적인 요직)에 대한 의견차이로 사림은 두 파(서인, 동인)로 나뉘게 되는데 서인의 영수 심의겸(1535~1587)과 동인의 영수 김효원(1542~1590) 두 세력으로 나뉘는것을 동서분당(1575)이라고 한다.

아래표는 당시 서인과 동인의 핵심 인물들을 나열한 목록이다.

  서인 동인
1 심의겸, 1535~1587 김효원, 1542~1590
2 윤두수, 1533~1601 허엽, 1517~1580
3 정철, 1536~1594 이산해, 1539~1609
4 박순, 1523~1589 류성룡, 1542~1607
5 심충겸, 1545~1594 이발, 1544~1589

동서분당이후 동인과 서인은 롤러코스터처럼 실각, 장악을 반복하면서 혼란을 반복시키게 된다.

 

기축옥사

1589년(선조22년) 황해도 관찰사 한준(1542~1601), 황해도 재령군수 박충간(?~1601), 안악군수 이축(1538~1614), 신천군수 한응인(1554~1614)등 4명이 정여립(1546~1589)이 반란을 일으키려한다는 고변을 하게되면서 선조가 정여립을 체포하라고 명을 내리지만, 자결했다는 보고가 올라오게되면서 역모를 꾀했음을 간주한다. 문제는 서인측에서 동인이 정여립과 친분이 있었다는 점을 근거로 이기회에 동인을 쓸어버리기 위해 사건을 확대시킨다. 

이 사건으로 동인이 대거 숙청되는데 다음 표는 동인의 지도자급 인물 숙청명단이다.

  이름 생몰년도 비고
동인 이발 1544~1589 처형
이길 1547~1589 처형
김우옹 1540~1603 유배되었다 임진왜란때 사면
백유양 1530~1589 유배 후 감옥에서 옥사
정언신 1527~1591 유배후 유배지에서 사망
홍종록 1546~1593 유배후 임진왜란때 사망
정언지 1520~? 유배후 풀려나나 임진왜란이후 정보없음
정창연 1552~1636 석방후 임진왜란, 인조반정거침.
최종직책 좌의정

1589년에 시작된 정여립 사건은 1592년까지 국문이 계속 지속되면서 천여명에 가까운 동인이 화를 입게되면서 서인이 정권을 장악하게 된다. 이사건을 기점으로 두 계파의 마찰은 더욱 심해진다. 이후 동인이 북인(강경파)과 남인(온건파)로 나뉘면서 정국이 계속해서 바뀌게되는데 이는 선조로서는 왕권강화의 최선수단이라 집권당을 계속 바꾼다.

 

여진족

1583년 조선 북부 함경도 회령지방에서 여진족 니탕개가 군사3만으로 난을 일으킨다. 이는 니탕개의난(1583)이라고 불리는 전란으로 7개월간 전투가진행되는데 1583년 8월 당시 조산만호 이순신(1545~1598)과 경흥부사 이경록(1543~1599)에게 방원보 전투에서 조선군에게 대패하면서 니탕개의 난이 종료된다.

 

종계변무

선조가 생각하는 가장 큰 업적중 하나인 종계변무(1588, 종가의 혈통을 사리를 따져 억울함을 밝힌다)이다. 조선 개국 3년인 1394년에 명나라 대명회전에 태조 이성계(1335~1408, 재위1392~1398)의 아버지를 이자춘(추존 환조, 1315~1360)이 아닌 고려 권신 이인임(1312~1388)으로 잘못 기록한 것을 수정해줄 것을 요구하는데 자그마치 200년이라는 세월이 걸리게 된다.

이때 명나라에 주청사로 보내진 대제학 황정욱(1532~1607)을 종계변무사로, 홍성민(1536~1594을 종계변무부사로 임명하는데, 명나라로 가서 중수대명회전 조선편을 역관 홍순언(1530~1598)이 수정할 내용이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이들이 조선으로 돌아와서 선조에게 보고를 하는데 선조는 200여년의 골칫거리를 본인대에 해결되었다는 것에 아주 기뻐했다고 한다. 

 

임진왜란

1592년 5월 23일(음력 4월 13일) 일본의 1군 장수 고니시 유키나가(1555~1600)가 선봉부대를 이끌고 부산포에 상륙하게 되면서 임진왜란이 발발하게 된다. 1590년 선조는 황윤길(서인, 1536~?), 김성일(1538~1593), 허성(1548~1612)등 3명을 통신사(일본 전국 통일 축하로 파견된 통신사임)로 파견하여 왜의 동태를 파악하게끔 하는데, 이미 통일되어있던 왜국은 수장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 1537~1598, 관백재위1585~1592, 태합재위1587~1598)가 대륙정벌의 야욕을 계획하던 중이였는데 황윤길은 전쟁이 있을 수 있다고 보고했고, 김성일은 그런조짐이 없었다고 보고하는데, 대신들은 김성일쪽으로 의견을 모으게 된다.

그러나 이들과 함께 온 사신 대마도주 소 요시토시(1568~1615)가 1년후 1592년에 조선의 길을 빌려 명나라를 칠 것이라고 하면서 선조는 크게 놀라 당장 일본과 맞닿아있는 경상도, 전라도측을 대비책을 지시하는데 급작스럽게 시작한 방비책이 잘 되었을리 만무했다. 

결국 왜의 20만대군이 부산포에 상륙하자마자 이를 막던 부산진첨사 정발(1553~1592)을 가볍게 전사시키고, 곧바로 동래성까지 당도하며 동래부사 송상현(1551~1592)이 일본 대군을 맞아 최대한 방어하지만 결국 성문이 뚫리고 함락이 되면서 선조가 있는 북쪽방향으로 절을 하고 성문 누각에 앉은채로 왜군에게 피살되어버린다. 1592년 5월 25일(음력 4월 15일)

고니시 유키나가의 1군은 동래성을 임진왜란발발 3일만에 함락시켜버리면서 파죽지세로 6월3일(음력 4월 24일) 상주를 지키던 순변사 이일(1538~1601)을 격퇴하면서 경상도가 왜군에게 넘어가게 되고, 4일뒤인 6월7일은 신립(1546~1592)장군이 충주 탄금대에서 그야말로 대패와함께 전사하고 충청도도 넘어가버린다. 고니시의 경쟁자였던 2군장수 가토 기요마사(1562~1611)와 함께 합세해 수도 한양으로 진군하게되면서 선조는 비변사에서 한양을 떠나 북쪽 명나라와 경계지역인 평양으로 몽진할 것을 천명한다. 

6월11일에 수도 한양이 점령당한다. 선조가 한양을 떠나자마자 백성들이 분노하여 궁궐을 불태우는등 소란이 난다. 그리고 파죽지세로 올라오는데 한양점령 1달만에 평양까지 왜군이 당도하게되면서 선조는 세자 광해군(1575~1641, 재위1608~1623)에게 분조를 명해 자신은 의주로 피신하고 광해군을 평양에 남겨 군사와 의병을 통솔해 방어케끔 했다. 광해군의 분조는 병사를 모집하고 의병을 국가의 군대로 전환시키고 민심을 안정시키고, 게릴라전으로 왜군을 혼란에 빠뜨리는등 전공을 많이 세운다. 심지어 선조는 명나라로부터 망명을 계획하고 허락을 받지만 모든 대신들의 반대로 무산된다. 이후 1593년 10월에 선조는 한양으로 다시 환도하게 된다. 

1592년 이순신(1545~1598)의 한산도대첩, 김시민(1554~1593)의 진주대첩, 권율(1537~1599)의 이치전투, 행주대첩대승 의병 고경명(1533~1592), 김천일(1537~1593), 그리고 서산대사 휴정(1520~1604)이 사명대사 유정(1544~1610)과 더불어 조선팔도에 격문을 보내 승병 수천명을 이끌고 전쟁에 참여하는등등 헤아릴 수 없는 인물들이 조선을 지킨다. 

임진왜란 이야기는 계속 지속됨.

 

니놈들 참 거슬리네

선조가 1593년 10월 한양에 환도하지만 민심은 이미 걷잡을 수  없었고, 심지어 수많은 전공을 세운 세자 광해군과 의병장들을 의심, 경계하며 광해군세력쪽에서 반란이 일어나지 않을 까 하며 항상 불안해했다고 한다. 1594년엔 당시 영의정 류성룡(1537~1607)과의 논의중 이순신 삼도수군통제사에 대한 의심을 하지만 류성룡이 여지껏 버틴 것은 이순신의공이다 라고 얘기하지만 개인적으로 친분이있던 둘 사이를 이미 알고있던 선조는 그 대답마저도 의심해버린다.

그 의심은 이순신과 원균의 대립에서부터 시작되는데 원균의 말만 듣고 이순신을 삼도수군통제사직위를 해제하고 옥에 가두고 원균이 통제사 직위에 오르고 1597년 칠천량 해전에서 대패하고 전사하고난 그 이후까지 모함했다.

 

정유재란

1597년 8월 왜군이 다시 조선에 쳐들어오게되는데, 게이초의 역[당시 천황 고요제이(1571~1617, 재위1586~1611)의 연호를 땀] 또는 2차 만력조선전쟁[당시 명황제 만력제(1563~1620, 재위1572~1620)를 땀]으로 불리는 정유재란이 발발하게 된다. 당시 수군은 이순신이 파직당하고 원균이 칠천량 해전에서 대패해 왜군에게 제해권을 뺏긴 상태였고, 전라도까지 점령하게 된 상태였다. 이대로 충청도로 진격할 준비를 마친 상태 

칠천량해전으로 원균이 전사한 뒤 이순신은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복직되어 명량 해전에서 일본수군을 말도안되는 성과로 대패시킴으로서 보급에 문제가 생겨 위쪽으로 더 진격하지 못하게 한다.

이후 전세가 역전되면서 조명연합군이 왜군을 격퇴시키면서 왜군은 부산쪽까지 밀리게 되는데,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 1537~1598, 관백재위1585~1592, 태합재위1587~1598)가 1598년 9월 사망하면서 왜군은 극비리에 본토로 철수를 시작하게 되는데, 이순신은 그냥 보내지 않고 노량에서 철수하는 왜군들을 대파해 대승을 거두지만 총탄에 맞아 전사하고 철수한 왜군들을 끝으로 7년간의 긴 왜란이 끝나게 된다. 

 

왜란 이후

1598년 왜란이 끝나고 조선은 그야말로 7년간의 왜란으로 국토가 만신창이가 되어있었는데 수십만명의 사망자, 경작지 파괴, 문화재 손실, 소실로 인한 피해가 매우 심각했다. 선조는 전후 복구를 시도하게 되며 모든 체제를 개편하고 어사들을 각 도에 파견시켜 양전을 실시하고 재정책을 실시해 경제까지 바로잡고자 노력하게 된다. 이후 사명대사를 일본으로 보내 도쿠가와 이에야스(1543~1616, 에도막부 재위1603~1605)와 강화를 맺게끔 하고 이후 왜에 포로로 잡혀가있던 조선백성들을 데리고 오게끔 시킨다.

 

승하

1608년 중풍으로 인해 승하한다. 묘호는 초기 선종이였으나, 7년간의 왜란을 극복하고 종계변무로 국가를 바로 잡은 군주로 광해군이 1616년 선조로 묘호를 격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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