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군주(한국어, 프랑스어)/고구려의 군주

25대 평원왕

Mintaka5 2024. 9. 10.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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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yeongwon de Goguryeo, ?~590, 재위559~590

 

 

출생

아버지 양원왕(?~559, 재위545~559)과 기록미상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남. 본명은 고양성. 평강공주의 아버지이자 온달(?~590)장군은 평원왕의 사위이다.

 

배경

할아버지 안원왕(?~545, 재위531~545)부터 흔들리던 왕권이 평원왕에 와서도 흔들리는데, 귀족연립정권의 설립 이후로 왕권이 더 떨어졌고 귀족들의 권한과 영향력이 상당히 커지던시기였어서 중앙집권을 추구하던 평원왕에게 있어서는 부담이 갈 수 밖에 없었다.

 아버지 양원왕 치세때와마찬가지로 북쪽으로는 돌궐, 말갈이 남쪽으로는 백제, 신라가 시시때때로 고구려 변경을 치려고하면서 외교적으로 그 어느때보다 중요한 시기였던 것은 확실하다.  

 

즉위

아버지 양원왕이 559년 승하함에따라 왕위를 승계함으로서 25대 평원왕으로 즉위한다. 아버지 치세때와 마찬가지로 내부, 외부적 문제들이 산더미같이 쌓여있던 시기에 즉위하게 되어 더욱 피곤했겠지만, 더욱이 즉위이전 귀족연립정권 수립이후 귀족들의 권력이 커짐에 따라 왕권이 약해질데로 약해진 상태에서 즉위하게 되면서 귀족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중앙집권화로 왕권을 강화하려고 시도했던 평원왕은 지속적인 귀족들의 견제로 인해 왕권강화는 그림의 떡과같이 되어버렸다.. 

 

 들어오기만 해봐라이?

아래로는 신라 진흥왕(534~576, 재위540~576)이 함경도 지역까지 세력을확대하고, 북쪽으로는 돌궐이 호시탐탐 북쪽 경계를 압박하면서 양원왕때처럼 2개의 전선을 방비해야하는 고구려로서는 상당히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적극적으로 대응을 하자니 한쪽을 공격하면 반대쪽에서 되려 공격을 해오는 것으로도 모자라 변경쪽 잦은 도발로 인한 국력소비도 어마무시했었기에 함부로 군을 출동할 수도 없던 상황이였다.

이에 고구려는 전쟁으로는 이 상황을 타파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외교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고 웬만해서는 전쟁을 피하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참 복잡타..

신라는 이때 정복군주 진흥왕(534~576, 재위540~576)이 팽창정책을 실시하면서 영토를 확장하고 세력이 줄어들고있던 백제를압박하는 상황이였다. 평원왕이 재위하기 전인 554년엔 진흥왕이 백제에 쳐들어가면서 백제 26대 성왕(?~554, 재위523~554)을 전사시킴으로서 그 대립이 더욱 극에 달하게 된다. 전쟁동안 백제는 가야, 왜국과 동맹을 맺으면서까지 신라에 대항하지만, 그 효과는 없었다.

577년 고구려는 북주가 요동을 침략하면서 직접 평원왕이 출정하면서 북주군을 배산 전투에서 궤시킴으로서 확전을 수습했는데, 이 전투에 참여했던 장수가 온달장군(?~590)이다. 이 전투에서 두각을 드러낸 온달을 평원왕이 사위로 인정받고 관직을 하사 받는다.  

평원왕은 이후 북주와도 화친관계를 맺음으로서, 백제와 신라를 제외한 외부 국가들과 화친을 맺게되면서 외부적으로는 일단 평화로운분위기를 조성케끔 한다. 실상은 백제와 신라를 고립시키려는 의도였겠지만..

 

수나라

긴 남북조시대(386~589)를 종식짓는 인물이 이때 등장하게 되는데, 이 인물이 양견(수 문제, 541~604, 재위581~604)이다.

원래 북주의 고위귀족이였던 양견이 북주 최후의 황제 주 정제 우문천(573~581, 재위581)때 국정을 장악하고 581년 우문천을 폐위시켜 국호를 '수'로 하고 본인이 황제에 오른다. 수나라가 이때 건국되는 것.

양견은 수나라 건국 이후에도 589년 남쪽 진나라까지 멸망시키면서 사실상 중원을 통일하는 성과를 치루게 되면서, 200년간의 남북조시대를 종식시키고 통일된 왕조를 세웠다는 평을받는다. 

이는 고구려로서는 위협이 될만한 일이였기에 평원왕은 양견에게 사신을 보내 정세를 파악하고 야심에 가득찬 인물이 황제가 되었다는 보고를 받고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을거 같다는 생각에 고구려는 전쟁대비에 들어간다.

이에 평원왕은 수나라가 침입할 수도 있다는 가정하에 586년 장안성(평양성 근처 성)으로 도읍을 옮겨 침입을 대비하게끔 한다.  

 

승하

여태껏 외교적 전술과 방비를 틈틈히하며 왕권강화에는 비록 실패했지만 나름 대비를 잘 한 군주로 평을 받는 평원왕이 590년 승하하게 된다. 다음 군주는 아들이자 태자인 고원(영양왕)에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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