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illaume IV, 1765~1837, 재위1830~1837
출생
1765년 영국 버킹엄궁전(Palais de Buckingham)에서 아버지 조지3세(George III, 1738~1820, 재위1760~1820)와 어머니 조피 샤를로트 드 메클렌부르크-스트렐리츠(Sophie Charlotte de Mecklembourg-Strelitz, 1744~1818)사이에서 셋째로 태어남. 위로는 형 조지4세(George IV, 1762~1830, 재위1820~1830)와 프레데릭 드 요크(Frédéric d'York, 1764~1827)이 있다.
배경
셋째로서 왕이될 운명이 아닌 왕자로서 그냥 일반 개인교사에게 교양적인(귀족으로서의) 교육을 받고 영국왕실 전통(군대..)에 따라 해군에 입대. 화끈한 성격덕에 해군으로 복무할 때 가정교사까지 배에 동행해서(덩달아 가정교사까지 군생활을.....)케어를 받게되지만 지브롤터 해협근처에서 난투를 벌이고 소동을 일으켜 체포가 될 정도로 성격이..(!).
미국 독립 전쟁(La guerre d'indépendance des États-Unis, 1775~1783)기간동안에 뉴욕에서 복무를 했고, 이때 미국 독립군 사령관이자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 1732~1799, 재임1789~1797)이 윌리엄을 잡아 인질로 삼으려는 계획까지 잡지만 밀착보호를 하는 영국군을 뚫을 수 없어서, 실행은 하지 않았다.
해군 병사들 사이에서는 전우였던 윌리엄이 이후에 윌리엄4세로 즉위하고 재위기간동안엔 '수병 왕'이라는 별명으로서 부르게 된다.
거 성님들 힘좀 빼소..
형 조지4세나 프레데릭처럼 작위를 받기위해 노력을 많이했지만 셋째가 권력에 욕심이 있다는 것을 눈치챈 아버지 조지3세(George III, 1738~1820, 재위1760~1820)는 셋째아들을 기어올라오지 못하게 작위를 좀처럼 주지 않는데, 윌리엄은 아버지 조지3세에게 압력을 가하기 위해 의회에 출마회서 내가 스스로 자리를 마련하겠다 선언하면서 조지3세는 결국 굴복해서 아들을 클러렌스 공작(Duc de Clarence)과 먼스터 백작(Comte de Munster)작위를 주게 된다.
동거녀
1791년부터 아일랜드 여배우인 도로테아 조던(Dorothea Jordan, 1761~1816)과 동거를 시작하는데, 당시 분위기는 조지3세의 아들들이 위치에 맞는 아내를 찾기보다 자신들이 사랑하는 여성과 동거하기로 여럿이 결정하면서 윌리엄도 조던과 동거를 시작하게 된 것.
동거하면서 5명의 아들과 5명의 딸을 둬 총 10명의 사생아를 두었는데, 1811년 윌리엄과의 관계가 끝났는데(왕실에서의 격렬한 반대), 왕실에서는 윌리엄과의 관계를 끝내는 조건으로 연간4400파운드(현재가치 약5억원수준)의 보상금을 받는 차원에서 관계가 마무리되고, 다시는 보지않는다.
이거 슬슬?
1811년 조던과 완전히 관계가 정리되고, 1818년에 작센의 부유한 상속녀인 아델레이드 드 작센-마이닝겐(Adélaïde de Saxe-Meiningen, 1792~1849)와 결혼하게 되는데(내 빚좀 갚아줘..), 아델레이드는 윌리엄보다 27살이나 어렸고(도둑X보다 더 쎈 의미 아시는분?)성격도 잘 맞고 아름다워서 윌리엄이 사망할때까지 20년정도 행복하게 결혼생활을 하게 된다. 이미 윌리엄의 맏형 조지4세의 딸 샤를로트(Charlotte de Galles, 1796~1817)가 출산도중 사망, 형 프레데릭도 1827년 사망하게되면서 사실상 윌리엄(그나마 어리고 건강함, 당시 60대)만 남게 됨.
그러나 윌리엄부부도 두 딸이 있었지만 유아기때 사망하고, 이후 세번의 유산을 겪으면서 사실상 자녀가 없게된다.
성님 잘 부탁..
아버지 조지3세(George III, 1738~1820, 재위1760~1820)가 1820년 서거하게 되면서 형 조지4세(George IV, 1762~1830, 재위1820~1830)가 왕위에 오르게 되면서 윌리엄은 계승순위 2위가 된다(1위는 형 프레데릭). 조지4세도 왕위에 오를당시 벌써 나이가 60이 가까웠고(58세)잔병치레가 많아지는등 건강이 나빠지는 시기로서, 설상가상으로 둘째형 프레데릭이 1827년 사망해버림으로서(조기사망아님, 1764년생) 윌리엄이 서열1위가 된다.
윌리엄은 이제 자기가 왕이되는건 시간문제라고 판단하고나서 정치경력을 쌓는 일에 집중하게되며 상원에서 주로 활동을 하게 됨. 이후 조지4세가 서거하자마자 윌리엄이 윌리엄4세로서 왕위에 오르게 된다.
드디어 나도 ㅠㅠ
윌리엄4세가 즉위한 1830년, 윌리엄의 나이 이미 65세였는데 당시엔 왕위에 오른 군주중 가장 나이가 많은 상속자로 기록되었다[이 기록은, 2022년 먼 후임 국왕 찰스3세(Charles III, 1948~ , 재위2022~ )가 74세로 상속받게 되는걸로서 기록이 깨진다].
사치스럽고 막나가던 형 조지4세와는 다르게 소극적이지만 신중한 윌리엄4세는 당시 영국의 개혁적인 분위기에서 상대적으로 인기가 좋은 편이였는데, 총리대신인 웰링턴 공작(Arthur Wellesley duc de Wellington, 1769~1852, 총리재임1828~1830, 1834)은 주군 윌리엄4세를 성실한 일꾼으로 묘사하면서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게 한다.
나름 윌리엄4세는 백성의 사랑을 받기위해 모든 일을 다 했는데, 이게 좋든싫든 계산적이든 간에 군주가 궁에나와서 백성에게 직접 관심을 가진다라는 건 영국역사상 몇 안되는 군주중 하나라는 인식을 심어주게 된다.
오르자마자 피곤한일 투성
1830년 재위가 시작되면서부터 의회와의 마찰(죽 잘맞던 웰링턴 공작의 보수당이 휘그당에 패배함)이 일어나게되면서 대관식도 미루고, 개혁법안 통과후의 소요사태등으로 머리아픈일들이 많이 일어나게 된다. 웰링턴 공작을 다시 총리직에 복귀시키려고 했지만, 휘그당 총수 찰스 그레이(Charles Grey, 1764~1845)는 선거법 개정이라는 초강수를 두게 되면서 어쩔수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한번만 내말좀 들어봐라 으이?
입헌군주제가 시행중이던 영국으로서 윌리엄4세는 정치에는 개입하지 않고 군림하고있었는데, 7년의 재위기간동안 딱 한번 정치에 개입하게 되는 일이 있었는데, 1834년 의회의 의사를 거스르고, 총리를 본인이 직접 선택해서 총리를 고른 것.
사망
1837년 6월 심부전증으로 윈저성에서 72세로 서거하게 되는데, 아델레이드 왕비사이에 자녀는 모두 일찍 죽고 유산되어버려(사생아10명은 제외..) 합법적인 자녀가 없어, 조카인 빅토리아(Victoria, 1819~1901, 재위1837~1901)에게 왕위를 물려주게 된다.
빅토리아 여왕은 즉위할 때 하노버를 통치할 수 없게되는데, 하노버는 살리카법에 따르는 국가로서(살리카법에 의하면 여성은 군주가 될 수 없다)여성이 통치할 수 없던 곳이라.. 1714년부터 이어져오던 동군연합(둘 이상의 나라가 단지 같은 군주만을 모실 뿐, 서로의 정부는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독립적인 관계)이 이때부터 깨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