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군주, 고위 귀족/Bourbon, 부르봉

루이 드 프랑스 '그랑도팽'

Mintaka5 2024. 7. 15.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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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uis de France 'Grand dauphin', 1661~1711

그랑도팽, 출처-위키피디아

출생

1661년 프랑스 퐁텐블로 퐁텐블로성(Château de Fontainebleau)에서 아버지 루이14세(Louis XIV, 1638~1715, 재위1643~1715)와 어머니 마리-테레즈 도트리슈(Marie-Thérèse d’Autriche, 1638~1683)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남.

루이14세 부부가 1660년 결혼한지 1년만인 1661년에 마리테레즈가 출산을 하는데 아들임을 확인한 루이14세가 출산을 지켜보다 문이열린 창가로 달려가서 "왕비가 사내아이를 낳았다"라고 외침. 그만큼 모두가 고대하던 상속자가 태어나던 순간이 벌어진 것. 

태어나자마자 렌 주교 샤를 프랑수아 드 라 비유빌(Charles François de la vieuville, ? ~1676)에게 세례를 받는다.

 

섬세하네..

7살무렵부터 아주 엄격한 후계자 교육이 시작되는데, 13세까지는 어찌저찌 부지런하게 교육을 받지만 통치기술을 연마하기위한 교육이기보다는 아버지 루이14세의 복종에 더 중점을 두고 딱히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 

주로 골동품을 수집하는 것에 관심이 더 있었고, 직접 도자기 컬렉션을 수집하는 것에 취미를 두었다. 심지어 보석에 대한 애정도 남달라서 수집을 차곡차곡 하게됨. 

 

욕심이 없어서 다행이네..

그러나 그랑도팽은 비록 도팽이라는 루이14세의 다음가는 자리인 왕태자의 자리에 있었지만, 게으르고, 미덕도 없고, 지식이 없으니 깨달음도 없고, 그저 그냥 흘러가는데로 지냈다고 한다. 차라리 이게 다행이지 야심차고 욕망이 많았다면 아마 당시 프랑스의 국력으로 비쳐봤을때 유럽을 집어삼키고도 남았을 것(1650~1700년 프랑스gdp > 유럽국가 전체 gdp).

 

누구랑 결혼하는게 좋을꼬?

어쨌든 왕태자라는 핵다이아몬드 수저로서 유럽의 여러 왕실에 관심을 끌기 딱 좋았는데, 총4명의 공주가 루이14세의 관심을 끌었는데

  목록
마리-루이즈 도를레앙* 필리프1세 도를레앙(Philippe Ier d'Orléans, 1640~1701)의 딸
마리-앙투아네트 도트리슈 신성로마황제 레오폴트1세(Leopold Ier, 1640~1705, 재위1658~1705)의 딸
안-마리-루이즈 드 메디치 토스카나 대공 코시모3세(Cosme III de Médicis, 1642~1723, 재위1670~1723)의 딸
마르그리트 루이즈 도를레앙* 가스통 도를레앙(Gaston d'Orléans, 1608~1660)의 딸

*왕실 방계가문이자 친척임

결국 결혼은 위의 목록에 없는 바이에른 선제후의 누이인 마리-안-빅투아르 드 바이에른(Marie-Anne-Victoire de Bavière, 1660~1690)과 결혼하게 된다. 지적이고 교양있는 여성인 마리-안은 경박하고 가벼운분위기의 프랑스 궁정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여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그 와중에도 그랑도팽과의 사이에 3명의 자녀를 출산한다.

  목록
루이 드 프랑스 Louis de France, 1682~1712, '쁘띠도팽', 루이15세의 아버지
필리프 드 프랑스 Philippe de France, 1683~1746, 스페인 왕 펠리페5세.
샤를 드 프랑스 Charles de France, 1686~1714, 루이15세이전에 최종적으로 살아남은 후계자.

 

서거

1701년에 그랑도팽은 뇌졸중을 겪으면서, 건강이 점차 나빠지기 시작하는데 1711년 베르사유를 덮친 천연두로인해 버티지못하고 사망해버린다. 루이14세는 도팽이자 아들이 자신보다 먼저죽으면서 큰 충격을 받지만, 앞으로 펼쳐질 비극의 서막인 것을 모르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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