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군주, 고위 귀족/Bourbon, 부르봉

루이 드 프랑스 '쁘띠도팽'

Mintaka5 2024. 7. 12.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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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드 프랑스(Louis de France 'petit dauphin',  1682~1712)

루이 드 프랑스 '쁘띠도팽', 출처-위키피디아

출생

1682년 프랑스 베르사유 베르사유궁(Château de Versailles)에서 아버지 루이 드 프랑스 왕세자 '그랑도팽'(Louis de France 'Grand Dauphin', 1661~1711)과 어머니 마리-안 드 바이에른(Marie-Anne de Bavière, 1660~1690)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난다.

베르사유궁에서 태어나자마자 유아세례를 할아버지 루이14세(Louis XIV, 1638~1715, 재위1643~1715)와 작은할아버지 필리프 도를레앙(Philippe I d'Orléans, 1640~1701)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 왕세자 이후 처음으로 본 세손이라 기대를 가지고 태어난다.

 

기대되는 손자

아버지 그랑도팽의 다섯 남매들은 모두 태어나자마자 죽거나 유아때 사망해버려서 사실상 유일한 상속자이자 아들이여서 더욱이 할아버지 루이14세가 쁘띠도팽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 교육또한 확실하게 명령해서 시킨다. 그랑도팽은 게으르고 둔해서 이미 아버지 루이14세로부터 비록 왕세자이지만 별로 신임을 받지못하는 실정이였는데, 그리하여 루이14세는 손주에게 거는기대가 클 수밖에 없었다.

 

결혼

이전으로 거슬로 올라가, 1630년 루이 드 프랑스의 증조부인 루이13세(Louis XIII, 1601~1643, 재위1610~1643)치세때 총리대신인 리슐리외 추기경이 사보이(Savoie)를 칠때 당시 사보이 군주 카를로 에마누엘레1세(Charles-Emmanuel Ier, 1562~1630, 1580~1630)가 프랑스군을 상대로 필사적으로 버티지만 패배한 이후 계속해서 프랑스의 눈치를 봐왔는데, 1696년 쁘띠도팽이 14세가 되던해에 사보이가문 군주 비토리오 아마데오2세(Victor-Amédée II, 1666~1732, 재위1675~1730)의 딸 11살의 마리-아델레이드 드 사부아(Marie-Adélaïde de Savoie, 1685~1712)와 결혼하게된다.

사실상 루이14세의 눈치를 보던 아마데오2세의 정략적인 결혼이였다고 보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남녀의 결혼생활은 금슬도 상당히 좋았고, 3명의 루이 드 프랑스를 낳고 그중 막내만 유일하게 살아남게 되는데 그 막내가 루이14세의 후임이 되는 루이15세(Louis XV, 1710~1774, 재위1715~1774)이다.

 

홍역

1711년 아버지 그랑도팽이 천연두로 루이14세보다 먼저 사망하게되면서, 쁘띠도팽이 왕세손으로서 루이14세 다음 작위를 받게 된다. 1711년부터 불어온 베르사유의 광풍은 모두에게 충격적인 결말을 보여주는데, 앞서 언급한 그랑도팽의 사망부터 1712년 2월 12일, 아내 아델라이드가 홍역으로 인해 급사하는데, 이때 아내를 병간호하던 쁘띠도팽도 홍역에 걸리면서 앓다가 6일뒤인 2월 18일에 사망해버린다. 

한달뒤에는 둘째 왕자 루이 드 프랑스(Louis de France, 1707~1712)도 같은 병이 걸려 사혈치료(당시에 피를 뽑아서 병을 뽑아낸다는 사고적인 치료) 사망하게 되면서 유일하게 남은 미래의 루이15세가되는 루이 드 프랑스(Louis de France, Louis XV, 1710~1774, 재위1715~1774)만 살아남게되는데 아들 루이(루이15세)역시도 홍역에 걸려 죽어가는데 이때 마담 드 방타두르 공작부인(Madame de ventadour, 1654~1744)가 사혈치료를 절대 반대하면서 결사반대후 어린 루이를 방에 데리고 가 방문을 잠구는데, 이러한 행동으로 루이(루이15세)는 다행이도 살아남게 된다.  

그렇게 루이14세는 마지막으로 남은 손자인 쁘띠도팽의 동생 샤를 드 베리(Charles de Berry, 1686~1714)만을 바라보지만, 1714년 샤를 역시 사망해버리고 루이15세가되는 루이 드 프랑스만 남게된다.

 

증손자 계승

이렇게 루이14세는 졸지에 아들과 손자들을 모두 잃어버리고 유일하게 남은 증손주가 사실상 계승자가되면서, 1715년 77세를 일기로 서거하면서 왕자리를 물려주게 되고, 루이 드 프랑스는 루이15세(Louis XV, 1710~1774, 재위1715~1774) 로 즉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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