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is III, 863 et 865~882, 재위879~882
출생
863년 또는 865년에 서프랑크 왕국 생드니(Saint-Denis)에서 아버지 루이2세(Louis II, 846~879, 재위877~879)와 어머니 앙가르드 드 부르고뉴(Ansgarde de Bourgogne, 826~879)사이에서 태어난다.
즉위와 공동즉위
879년 아버지 루이2세가 33세로 서거하면서 다양한 서프랑크 인사들의 지원으로 루이3세와 루이의 남동생 카를로만2세(Carloman II, 867~884, 공동재위879~884)의 대관식이 수도원에서 진행되게 되는데 그 대관식을 주관했던 수도원이 생-피에르 에 생-폴(Saint-Pierre-et-Saint-paul)이다.
두형제가 아버지 루이2세로부터 상속받은 프랑스는 아이맹에서 두형제가 각각 루이는 네우스트리아(북쪽지방)였고 동생 카를로만은 부르고뉴, 아키텐등이 있는 남부지방을 받게된다.
이때당시 북방을 휩쓸던 민족 노르만과 맞서기 위해 이전에 국경획정지역을 확정짓는 메르센 조약(Le traité de Meerssen, 870)으로부터 동프랑크 왕 루트비히3세(Louis III l'Aveugle, 880~928)와 협상, 이후 리베몽 조약(프랑크왕국의 마지막 조약)으로 동생 카를로만과 땅을 어떻게 나눠가질것인가를 이 회의때 의논하게 된다.
바이킹과 영혼의 맞다이 대승
879년 루이3세와 공동군주 카를로만2세는 바이킹종족을 상대로 승리한것을 시작으로, 881년 8000여명이 넘는 바이킹이 사망한 소쿠르 앙 비뫼 전투에서 바이킹들을 모두 물리치면서 영향력이 달라지게 된다.
이 대승리로인해 익명의 시인은 중세 독일어로 루이3세의 기량과 경건함에 대한 시를 쓰게 된다.
역사에 남을 죽음
루이3세는 882년 자녀도없이 갑작스럽게 사망하게 되는데, 제르몬드라는 사람의 딸이 그녀의 아버지 집으로 피신하고있는중이였는데 루이3세가 그 여자를 쫓다가 낮은 문틀에 머리를 세게 부딫히면서 두개골이 깨져버려 현장에서 즉사한다. 이런 황당한 죽음으로 인해 지금까지도 이야기가 회자되고있다고 한다.
다른 연대기에서는 루이3세가 Saucourt-en-Vimeu전투에서 노르만족을 상대로 전투를 치르는 동안 발생한 혈관 파열로 인해 사망했다고 기록하고있다.
이 황당한 죽음으로 882년부터 루이3세의 동생이자 공동군주인 카를로만2세(Carloman II, 867~884, 공동재위879~884) 는 단독군주로서 군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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