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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122

89대, 91대 영의정 이항복(오성)

Lee Hang-bok, 1556~1618, 영의정 재임1600~1602, 1604출생1556년 조선 한성부에서 아버지 참찬 이몽량(1499~1564)과 어머니 전주 최씨(?~?)사이에서 태어남. 배경전래동화 오성과 한음에서 오성역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오성은 이항복의 작위인 오성부원군에서 따온 것. 이항복의 호는 명보. 1580년 과거급제부터 평생의 동지가 된 이덕형과 영혼의 단짝. 당색은 비록 달랐지만 끝까지 우정을 지키며 서로를 위해줬던 진정한 영혼의 단짝. 말년엔 광해군 즉위이후 임해군(1572~1609)사사문제, 인목대비(1584~1632) 폐위건, 영창대군(1606~1614) 사사문제 등으로 피곤한일들이 많았고, 유배를 갔다가 유배지에서 사망한다. 같이 일하재이? 아버지 이몽량(1499~156..

90, 95, 97대 영의정 이덕형(한음)

Lee Deok hyung, 1561~1613출생1561년 조선 한성부에서 아버지 정2품 지중추부사 이민성(?~?)과 어머니 문화 류씨(?~?)사이에서 태어남.  배경전래동화 오성과 한음에서 한음역에 해당하는 인물. 호가 한음이라.. 이덕형의 절친인 오성에 해당하는 이항복(1556~1618)은 호가 오성이아니라 오성부원군 작위에서 따온 것 호는 명보.  다양한 직위를 역임했던 문신으로서 임진왜란, 정유재란때에 명나라 접반관으로서 동행하는 역할을 수행하였고, 전란후 영의정으로 민심수습, 국가정비에 총력을 기울이며 전란후 국가를 재건하는데 힘씀.그러나 말년에 절친 이항복과 함께 영창대군 처형과 인목대비 폐위을 반대하다가 북인의 탄핵을 받고 삭탈관직되고 사저로 돌아간 이덕형은 이듬해 사망.   너무 빠른데? ..

24대 진흥왕

Chinhung de Silla, 534~576, 재위540~576  출생534년 신라 금성에서 아버지 김입종(입종 갈문왕, ?~537)과 어머니 지소왕후(지소태후,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남. 본명은 김삼맥종. 동생으로는 김숙흘종이 있다.  배경6세에 큰숙부인 법흥왕(?~540, 재위514~540)이 승하하면서 재위에 오르고, 어린나이로인해 태후들의 섭정기를 거쳐 551년부터 친정을 시작한다. 법흥왕대부터 닦여온 국가로서의 기틀과 제도정비등으로 내적으로 안정을 취한 베이스로, 재위기간동안 정복군주로서 영토확장을 하며 삼국시대의 주도권을 신라가 쥐게되는 시기의 군주이다.  내적으로 안정을 유지하고, 외적으로도 남북조시대의 중원에 사신을 보내 조공, 책봉을 맺는다. 즉위위 배경처럼 법흥왕이 아들이 없..

23대 법흥왕

Pophung de Silla, ?~540, 재위514~540  출생신라 서라벌 탁부에서 아버지 지증왕(437~514, 재위500~514)과 어머니 연제부인 박씨(?~?)사이에서 태어남. 본명은 김원종 또는 모즉지. 배경신라 중흥기가 시작되기 전 내치를 잘 수행한 군주로서 중앙집권체제,  불교공인,  율령반포, 골품제 확립등으로 강대국으로 성장하기위한 발판을 마련한 군주라고 할 수 있다. 이후 후임 군주인 조 진흥왕(534~576, 재위540~576)이 정복사업을 펼칠 수 있게 국가를 제대로 정비를 해놓은 군주라고 할 수 있다. 즉위514년 아버지 지증왕(437~514, 재위500~514)이 승하하면서 바로 즉위하게 된다. 연호는 건원.  중앙집권화I. 율령반포520년(법흥왕6년) 법제체계에 관한정비를 ..

30, 37대 영의정 한명회

Han Myeong-hoe, 1415~1487, 영의정 재임1466~1467, 1469  출생1415년 조선 한성부에서 아버지 한기(1393~1429)와 어머니 여주 이씨 사이에서 태어남.  배경계유정난(1453)을 통해 세조(1417~1468, 재위1455~1468)를 즉위시키는 데 앞장선 킹메이커로서, 문/무에 고루 재능이 있어 권신으로서 강력한 권력을 가져 정1품 영의정에도 오르고, 두 딸을 예종(1450~1469, 재위1468~1469)과 성종(1457~1494, 재위1469~1494)에게 시집보냄으로서 왕실의 외척세력까지 겸비하게 되면서 일인지하만인지상에도 모자라 국구(군주의 장인)의 자리까지 오르는 어마무시한 배경을 가지게 된다.그러나 큰 힘엔 큰 책임이 따른다고 했던가, 권력이 크다못해 거대..

13대 근초고왕

Geunchogo de Baekje, ?~375, 재위346~375  출생300년대 초 추청 백제 위례성에서 아버지 11대 비류왕(?~344, 재위304~344)와 기록미상의 모친 사이에서 태어남. 본명은 부여구. 배경백제의 최전성기를 이끈 군주로서 내치, 외치 모두 큰 성과를 거두면서 세력을 크게 확장한 시기. 백제의 정복군주로서 가야, 마한, 고구려까지 공격해서 371년에 평양성에서 고구려 대왕 고국원왕(300?~371, 재위331~371)까지 전사시키면서 그 명성이 한반도에 널리 떨쳐지게 된다. 중원의 동진, 왜나라등과도 교류해 백제의 문화를 전파시키고 불교가 중흥하는 시기로서 많은 역사적 가치를 지닌 것들이 이때 많이 만들어지게 된다.  즉위12대 계왕(?~346, 재위344~346)이 승하하면서..

69대 영의정 윤원형(소윤)

Yun Won-hyung, 1503~1565, 영의정 재임1563~1565 출생1503년(연산군9년) 경기도 파주군에서 아버지 파산부원군 윤지임(1475?~1534)과 어머니 이씨(이덕숭의 딸)사이에서 태어남. 본관은 파평. 배경정치력이 매우 뛰어난 인물로, 누나 문정왕후(1501~1565)가 정현왕후(중종의 어머니, 1462~1530)에 의해 중종의 3비로 1517년 간택되면서 책봉된다. 중종의 계비였던 장경왕후 윤씨(1491~1515)가 아들 호(인종)를 낳다가 승하하면서 간택된 셈. 모두가 반긴 왕비는 아니였지만, 원자 호를 보호하는 명분과 장경왕후 윤씨와 가까운 친척인 덕에 후궁들을 자연스럽게 견제하고 자리를 지켜나갈 수 있었다.이후 인종(1515~1545, 재위1544~1545)이 1년만에 승하..

19대 광개토대왕

Kwanggaet'o de Goguryo, 374~413, 재위391~413  출생374년 고구려 국내성에서 아버지 고이련(고국양왕, ?~391, 재위384~391)과 기록미상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남.  본명은 고담덕.  배경한국 역사 통틀어 가장 강력한 국가였던 고구려를 동아시아의 강대국으로 만들어 놓은 정복군주이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고구려의 위상이 오르며 중원의 맹주였던 후연, 한반도 내 백제, 신라(당시 동맹), 왜나라, 거란국등을 물리치며 영토를 확장한 인물이다. 한국사에서 2명의 대왕이 있는데, 세종대왕과 광개토대왕이다.  원래는 군주와 거리가 멈원래 담덕은 군주가 되기 어려운 쪽이였던게, 아버지 고국양왕에게는 형이 있었는데, 그 인물이 17대 소수림왕(?~384, 재위371~384)이다...

25대 평원왕

Pyeongwon de Goguryeo, ?~590, 재위559~590  출생아버지 양원왕(?~559, 재위545~559)과 기록미상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남. 본명은 고양성. 평강공주의 아버지이자 온달(?~590)장군은 평원왕의 사위이다. 배경할아버지 안원왕(?~545, 재위531~545)부터 흔들리던 왕권이 평원왕에 와서도 흔들리는데, 귀족연립정권의 설립 이후로 왕권이 더 떨어졌고 귀족들의 권한과 영향력이 상당히 커지던시기였어서 중앙집권을 추구하던 평원왕에게 있어서는 부담이 갈 수 밖에 없었다. 아버지 양원왕 치세때와마찬가지로 북쪽으로는 돌궐, 말갈이 남쪽으로는 백제, 신라가 시시때때로 고구려 변경을 치려고하면서 외교적으로 그 어느때보다 중요한 시기였던 것은 확실하다.   즉위아버지 양원왕이 559년..

24대 양원왕

Yangwon de Goguryeo, ?~559, 재위545~559  출생출생년도는 여러 설이있다 528, 530, 538년등.. 확실치는 않고, 아버지는 23대 안원왕(?~545, 재위531~545)과 기록미상의 어머니(두번째 왕비로 추정)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남. 본명은 고평성. 배경문자명왕(?~519, 재위492~519)의 손자이며, 즉위하기 전 태자일때 아버지 안원왕이 병석에 누워있을 때 이복동생 세군이 반란을 일으켜서 왕위를 찬탈하려는 시도를하지만 3일만에 난이 진압되고 겨우 왕위에 오른다. 즉위했을 때부터 이런 사건으로 인해 왕권이 크게 위축되었고,  외부적으로도 북쪽 돌궐이 강성해지면서 고구려를 위협, 신라 정복군주 진흥왕(534~576, 재위540~576)이 고구려 남쪽 변경을 노리면서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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