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군주/신라의 군주

23대 법흥왕

Mintaka5 2024. 9. 14.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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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hung de Silla, ?~540, 재위514~540

 

 

출생

신라 서라벌 탁부에서 아버지 지증왕(437~514, 재위500~514)과 어머니 연제부인 박씨(?~?)사이에서 태어남. 본명은 김원종 또는 모즉지.

 

배경

신라 중흥기가 시작되기 전 내치를 잘 수행한 군주로서 중앙집권체제,  불교공인,  율령반포, 골품제 확립등으로 강대국으로 성장하기위한 발판을 마련한 군주라고 할 수 있다. 이후 후임 군주인 조 진흥왕(534~576, 재위540~576)이 정복사업을 펼칠 수 있게 국가를 제대로 정비를 해놓은 군주라고 할 수 있다.

 

즉위

514년 아버지 지증왕(437~514, 재위500~514)이 승하하면서 바로 즉위하게 된다. 연호는 건원. 

 

중앙집권화

I. 율령반포

520년(법흥왕6년) 법제체계에 관한정비를 완료한다. 나라를 통치하기 위한 법과 제도라는 뜻의 율령인데, 군주의 이름으로 공표되며 신라 내 백성들을 통치하고자하는 법제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신라가 군주 중심의 중앙집권체제를 구축했다는 것을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전에는 '부'들의 연맹체로서 신라내에서 각 부들의 수장들이 자치적으로 자신들의 지역을 다스렸기 때문에 군주가 각 부의 내적으로까지 간섭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이런 체제는 군주의 힘이 미약할 수 밖에 없었는데, 법흥왕은 520년 체제를 정비하게 되면서 귀족들의 세력이 약화되면서 군주의 위상이 강해지는 터닝포인트가 된다. 

II. 불교공인

527년 신라에서도 법흥왕의 왕명으로 불교가 공인되는데 이는 공식적인 공인이고,  이미 신라내에는 400년대부터 고구려 승려가 들어와서 신라에 불교를 전파했다고 알려져있다. 

쉽게 공인된 것은 아니고, 불법의 확산을 위해 이차돈()이 순교함으로서 법흥왕은 이에 사찰을 세워 신라내 불법을 일으키고자 한다.  이 시기이후 세워진 대표적인 사찰은 다음과 같다.

  공사시작년도 공사완료년도
흥륜사 534년(법흥왕20년) 544년(진흥왕4)
황룡사 553년(진흥왕13년) 566년(진흥왕26년)
분황사 진평왕 재위시 634년(선덕여왕2년)
사천왕사 670년(문무왕9년) 679년(문무왕18년)
불국사 751년(경덕왕 10년) 774년(혜공왕 10년)

법흥왕의 숭불정책은 성공적으로 완료되면서 신라는 100년도 안되는 시간동안 삼국의 대표적인 불교국가로 변모하게되고, 수많은 고승들이 나오게 된다.   

III. 골품제 확립

법흥왕은 신분제를 재위기간 내 확립해놓는데, 혈통에 따라 신분의 제한을 두어 왕족인 성골과 진골, 귀족인 두품으로 분류시키고 17관등으로 직급의 순위를 지정 통치기반을 정비한다.

높은 순서로부터, 성골→진골→6두품→5두품→4두품→3두품→2두품→1두품 순.

등수 직위 가능 신분 의복 색깔
1 이벌찬 (각간) 진골만 될 수 있음

이벌찬~대아찬까지만 화백회의에 참석할 수 있었음.
자색
2 이찬 (이간)
3 잡찬 (잡간)
4 파진찬 (파진간기)
5 대아찬 (대아간)
6 아찬 (아척간) 6두

6두품이 받을 수 있는 한계
비색
7 일길찬 (일길간)
8 사찬 (살찬)
9 급벌찬 (급찬, 급벌간)
10 대나마 (대나말) 5두품

10등 대나마가 5두품이 받을 수 있는 한계
청색
11 나마 (나말)
12 대사 4두품

12등 대사가 4두품이 받을 수 있는 한계

4두품은 사실상 잡무를 보는 하위관직  
황색
13 사지
14 길사
15 대오
16 소오
17 조위

사실상 4두품 아래 3두품부터는 평민에 속하는 계급이다.

IV. 상대등 설치 & 병부 설치

귀족을 관료제 체계에 포함시킨 첫 의미가 되는 상대등이 법흥왕때 설치되게 된다.  531년(법흥왕 17년)에 1등위인 이벌찬을 상대등으로 임명시켜 국사를 총괄케끔 하는데, 현재의 국무총리격 인사의 탄생.  

그러나 군사관련업무는 보지 못했는데, 법흥왕은 왕권강화의 수단으로서, 귀족이 가지고있던 군권을 군주에게로 귀속되면서 군주의 명을 받는 직속 군대 병부를 설치하기에 이른다.  이 병부의 수장은 병부령으로서 현재의 국방부장관과 같은 격의 인사.

 

금관가야 멸망과 신라편입

금관가야는 400년대 내물 마립간(?~402, 재위356~402)때 벌어진 신라-왜 전쟁 이후 쇠퇴기를 거쳐 약소국이 된 상태였는데, 신라는 100년전보다 국력이 크게 신장되면서 법흥왕은 가야를 합병하기위한 압박을 시작하게 되는데..

529년 금관가야 10대 군주 구형왕(?~?, 재위521~532)이 법흥왕의 위협으로 인해 왜나라에 원군을 요청하자 이에 법흥왕은 이사부 장군(지하에서 웃는, ?~?)에게 병력을 주어 가야 토벌을 명하면서 금관가야가 궤멸적인 피해를 입고 구형왕이 신라로 와서 법흥왕에게 항복을 하게 된다.

이에 금관가야국은 500년의 역사(42~532)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신라로 편입되게 된다. 신라로서는 금관가야가 가진 낙동강 하류 영역을확보하게 되면서 경제신장에 큰 효과를보게 되며 국력이 더욱 신장되게 된다. 

 

승하

법흥왕은 540년 승하하기 전 말년에 출가해서 승려가 되는데, 법명은 법운.  

출가하기 이전에 조카인 김삼맥종에게 왕위를 물려주는데, 이 삼맥종이 신라의 정복군주 진흥왕(534~576, 재위540~576)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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