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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대, 84대 영의정 류성룡

Ryu Seong-ryong, 1542~1607, 영의정재임1592, 1593~1598  출생1542년 조선 경상도 의성현(현 경북 의성군)에서 아버지 황해도 관찰사 류중영(1515~1573)과 어머니 안동 김씨사이에서 태어남. 위로는 형 류운룡(1539~1601)이 있다. 배경임진왜란이라는 전시상황에서의 영의정으로서 선조(1552~1608, 재위1567~1608)를 보필하고 전쟁을 수행하면서 국난을 극복하게끔 한 장본인이다. 여러 평가가 나뉘지만 전란의 위기의 조선을 구했다는 평가가 후에 이루어졌다.  역시 천재는 때깔부터 다르네..퇴계의 문하에서 수학하면서 뛰어난 머리로 이황에게도 높이 평가받으면서 학문을 익히다가 1564년 생원,진사(소과)가 되어 1565년 성균관에 들어가서 1566년에 별시 문과..

20대 영의정 황희

Hwang Hui, 1363~1452, 영의정재임1431~1449출생1363년 고려 개경부 개풍 가조리에서 아버지 황군서(1328~1402)와 어머니 용궁김씨(?~?)사이에서 태어남.    배경조선 역대 영의정중 가장 긴 재임기간(18년)을 가지고 있는 인물. 사실상 세종(1397~1450, 재위1418~1450)치세 32년중 절반이상을 영의정으로서 세종을 도와 설립된지 50년도안된 조선왕조의 수성기를 잘 넘겨 번영을 이끌게끔 한 장본인.   돈벌러 가야제..1376년(우왕2년) 13세였던 고려 말기때 음서로 품계가 없는 녹사가 되면서부터 황희의 관직생활 시작이라고 본다. 1376년부터 1449년까지 73년간 관직생활을 할거라곤 생각이나 했을까.. 당시 고려 말 평균수명이 40세가 안되었는데 황희는 89..

우찬성 윤임(대윤)

Yun Im, 1487~1545   출생1487년 경기도 파주군에서 아버지 파원부원군 윤여필(1466~1555)과 순천부부인 박씨(장경왕후의 어머니, 1466~?)사이에서 태어남.  배경대윤의 영수이며, 인종의 어머니 장경왕후의 오빠. 인종이 즉위했을 때 외척으로서 권위를 누릴것처럼 보였으나, 인종이 병약해 즉위8개월만에 승하하고, 자신이 추천했던 문정왕후(1501~1565)의 아들 명종(1534~1567, 재위1545~1567)이 즉위하면서 윤원형(1509~1565)이 어린 명종을 대신해 누이 문정왕후의 수렴청정때 외척으로서 권력을 틀어잡은 뒤 윤임은 온갖 모함과 음모를 통해 대윤세력이 와해되고 윤임역시 유배길에 사사된다.윤임은 대윤, 윤원형은 소윤으로 분류되는데, 윤임이 인종의 외척으로서 순위도 앞서..

89대, 91대 영의정 이항복(오성)

Lee Hang-bok, 1556~1618, 영의정 재임1600~1602, 1604출생1556년 조선 한성부에서 아버지 참찬 이몽량(1499~1564)과 어머니 전주 최씨(?~?)사이에서 태어남. 배경전래동화 오성과 한음에서 오성역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오성은 이항복의 작위인 오성부원군에서 따온 것. 이항복의 호는 명보. 1580년 과거급제부터 평생의 동지가 된 이덕형과 영혼의 단짝. 당색은 비록 달랐지만 끝까지 우정을 지키며 서로를 위해줬던 진정한 영혼의 단짝. 말년엔 광해군 즉위이후 임해군(1572~1609)사사문제, 인목대비(1584~1632) 폐위건, 영창대군(1606~1614) 사사문제 등으로 피곤한일들이 많았고, 유배를 갔다가 유배지에서 사망한다. 같이 일하재이? 아버지 이몽량(1499~156..

90, 95, 97대 영의정 이덕형(한음)

Lee Deok hyung, 1561~1613출생1561년 조선 한성부에서 아버지 정2품 지중추부사 이민성(?~?)과 어머니 문화 류씨(?~?)사이에서 태어남.  배경전래동화 오성과 한음에서 한음역에 해당하는 인물. 호가 한음이라.. 이덕형의 절친인 오성에 해당하는 이항복(1556~1618)은 호가 오성이아니라 오성부원군 작위에서 따온 것 호는 명보.  다양한 직위를 역임했던 문신으로서 임진왜란, 정유재란때에 명나라 접반관으로서 동행하는 역할을 수행하였고, 전란후 영의정으로 민심수습, 국가정비에 총력을 기울이며 전란후 국가를 재건하는데 힘씀.그러나 말년에 절친 이항복과 함께 영창대군 처형과 인목대비 폐위을 반대하다가 북인의 탄핵을 받고 삭탈관직되고 사저로 돌아간 이덕형은 이듬해 사망.   너무 빠른데? ..

24대 진흥왕

Chinhung de Silla, 534~576, 재위540~576  출생534년 신라 금성에서 아버지 김입종(입종 갈문왕, ?~537)과 어머니 지소왕후(지소태후,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남. 본명은 김삼맥종. 동생으로는 김숙흘종이 있다.  배경6세에 큰숙부인 법흥왕(?~540, 재위514~540)이 승하하면서 재위에 오르고, 어린나이로인해 태후들의 섭정기를 거쳐 551년부터 친정을 시작한다. 법흥왕대부터 닦여온 국가로서의 기틀과 제도정비등으로 내적으로 안정을 취한 베이스로, 재위기간동안 정복군주로서 영토확장을 하며 삼국시대의 주도권을 신라가 쥐게되는 시기의 군주이다.  내적으로 안정을 유지하고, 외적으로도 남북조시대의 중원에 사신을 보내 조공, 책봉을 맺는다. 즉위위 배경처럼 법흥왕이 아들이 없..

23대 법흥왕

Pophung de Silla, ?~540, 재위514~540  출생신라 서라벌 탁부에서 아버지 지증왕(437~514, 재위500~514)과 어머니 연제부인 박씨(?~?)사이에서 태어남. 본명은 김원종 또는 모즉지. 배경신라 중흥기가 시작되기 전 내치를 잘 수행한 군주로서 중앙집권체제,  불교공인,  율령반포, 골품제 확립등으로 강대국으로 성장하기위한 발판을 마련한 군주라고 할 수 있다. 이후 후임 군주인 조 진흥왕(534~576, 재위540~576)이 정복사업을 펼칠 수 있게 국가를 제대로 정비를 해놓은 군주라고 할 수 있다. 즉위514년 아버지 지증왕(437~514, 재위500~514)이 승하하면서 바로 즉위하게 된다. 연호는 건원.  중앙집권화I. 율령반포520년(법흥왕6년) 법제체계에 관한정비를 ..

30, 37대 영의정 한명회

Han Myeong-hoe, 1415~1487, 영의정 재임1466~1467, 1469  출생1415년 조선 한성부에서 아버지 한기(1393~1429)와 어머니 여주 이씨 사이에서 태어남.  배경계유정난(1453)을 통해 세조(1417~1468, 재위1455~1468)를 즉위시키는 데 앞장선 킹메이커로서, 문/무에 고루 재능이 있어 권신으로서 강력한 권력을 가져 정1품 영의정에도 오르고, 두 딸을 예종(1450~1469, 재위1468~1469)과 성종(1457~1494, 재위1469~1494)에게 시집보냄으로서 왕실의 외척세력까지 겸비하게 되면서 일인지하만인지상에도 모자라 국구(군주의 장인)의 자리까지 오르는 어마무시한 배경을 가지게 된다.그러나 큰 힘엔 큰 책임이 따른다고 했던가, 권력이 크다못해 거대..

13대 근초고왕

Geunchogo de Baekje, ?~375, 재위346~375  출생300년대 초 추청 백제 위례성에서 아버지 11대 비류왕(?~344, 재위304~344)와 기록미상의 모친 사이에서 태어남. 본명은 부여구. 배경백제의 최전성기를 이끈 군주로서 내치, 외치 모두 큰 성과를 거두면서 세력을 크게 확장한 시기. 백제의 정복군주로서 가야, 마한, 고구려까지 공격해서 371년에 평양성에서 고구려 대왕 고국원왕(300?~371, 재위331~371)까지 전사시키면서 그 명성이 한반도에 널리 떨쳐지게 된다. 중원의 동진, 왜나라등과도 교류해 백제의 문화를 전파시키고 불교가 중흥하는 시기로서 많은 역사적 가치를 지닌 것들이 이때 많이 만들어지게 된다.  즉위12대 계왕(?~346, 재위344~346)이 승하하면서..

69대 영의정 윤원형(소윤)

Yun Won-hyung, 1503~1565, 영의정 재임1563~1565 출생1503년(연산군9년) 경기도 파주군에서 아버지 파산부원군 윤지임(1475?~1534)과 어머니 이씨(이덕숭의 딸)사이에서 태어남. 본관은 파평. 배경정치력이 매우 뛰어난 인물로, 누나 문정왕후(1501~1565)가 정현왕후(중종의 어머니, 1462~1530)에 의해 중종의 3비로 1517년 간택되면서 책봉된다. 중종의 계비였던 장경왕후 윤씨(1491~1515)가 아들 호(인종)를 낳다가 승하하면서 간택된 셈. 모두가 반긴 왕비는 아니였지만, 원자 호를 보호하는 명분과 장경왕후 윤씨와 가까운 친척인 덕에 후궁들을 자연스럽게 견제하고 자리를 지켜나갈 수 있었다.이후 인종(1515~1545, 재위1544~1545)이 1년만에 승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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