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교황/201대~현직 교황

보니파시오9세

Mintaka5 2025. 5. 22.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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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피에트로 토마첼리(Pietro Tomacelli)

203대 교황 보니파시오9세(Bonifacius PP. IX, 1350~1404, 재위1389~1404)

  전임 교황 당시 재직 교황 후임 교황
직위 202대 교황 203대 교황 204대 교황
출신 나폴리 왕국, 이트리 나폴리 왕국, 나폴리 나폴리 왕국, 술모나
명칭 우르바노6세
Urbanus PP. VI
보니파시오9세
Bonifacius PP. IX
인노첸시오7세
Innocentius PP. VII
생몰년도 1318.xx.xx ~ 1389.10.15 1350.xx.xx ~ 1404.10.01 1327.xx.xx ~ 1417.10.18
콘클라베기간 3일
(1378.04.07~1378.04.09)
9일
(1389.10.25~1389.11.02)
8일
(1404.10.10~1404.10.17)
재위 1378.04.08 ~ 1389.10.15 1389.11.02 ~ 1404.10.01 1404.10.17 ~ 1406.11.06

보니파시오9세 초상화
교황 보니파시오9세, 출처-위키피디아

출생

1350년 나폴리 왕국 나폴리(Napoli)에서 아버지 남작 자코모 토마첼리(Giacomo Tomacelli, ?~?)와 어머니 베르델라 카라치올로(Verdella Caracciolo, ?~?)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203대 교황으로, 40년간의 긴 서구 대이교(또는 서방교회 대분열, 1378~1417)시절 두번째 교황이다. 2명의 아비뇽 대립교황(클레멘스7세, 베네딕토13세)등과 지속적으로 대립하며 격전지였던 나폴리 왕국의 후임 군주를 두고 교황 보니파시오9세는 라디슬라오(Ladislao I di Napoli, 1377~1414, 재위1386~1414)를, 아비뇽 대립교황은 프랑스 왕 샤를5세(Charles V, 1338~1380, 재위1364~1380)의 조카인 루이2세 당주(Louis II d'Anjou, 1377~1417, 앙주재위1384~1417, 나폴리재위1389~1399)를 지지하면서 격렬하게 대립한다. 

 

성직

크게 알려진 내용은 많지 않고, 나폴리에서 교육을 받고 1380년에 들어서 로마로 이주해 같은 동향 나폴리 출신인 교황 우르바노6세(Urbanus PP. VI, 1318~1389, 재위1378~1389)의 눈에 들어 교황청에서 성직생활을 시작하여 1381년 부제급 추기경, 1385년 사제급 추기경에 임명되었다(추기경품계 : 주교급 추기경>사제급 추기경>부제급 추기경).  

 

1389년 콘클라베

202대 교황 우르바노6세(Urbanus PP. VI, 1318~1389, 재위1378~1389)가 1389년 10월 15일 71세의 나이로 선종하면서 콘클라베가 소집된다. 전임 교황 우르바노6세로부터 촉발된 서방교회 대분열(또는 서구대이교, 1378~1417)에 도화선이 붙고 분열이 확산되었을 때쯤 콘클라베가 열렸는데, 이 1389년 콘클라베는 전임 교황 우르바노6세가 1378년 아비뇽 대립교황 클레멘스7세(Antipope Clemens VII, 1342~1394, 대립교황1378~1394)가 선출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극도로 분노하여 대립교황을 파문시키고 하루만에 26명에 달하는 새로운 추기경을 임명시켜버렸어가지고 모든 추기경 선거인단이 우르바노6세가 임명한 추기경들로 구성되었다. 이 콘클라베는 총 9일간(1389.10.25~1389.11.02) 지속되었고 최종적으로 산 조반니 라테라노 대성당 수석 사제이자 추기경인 피에트로 토마첼리 추기경이 교황으로 선출된다. 교황명은 '보니파시오(Bonifacius)'로 명명하고 교황 보니파시오9세로서 즉위하게 된다. 보니파시오9세가 즉위하자마자 대립교황 클레멘스7세는 보니파시오9세를 파문하고, 이에 질세라 보니파시오9세도 대립교황 클레멘스7세를 파문시키는등 분열은 여전히 일어나고 있었다. 

 

교황

I. 떨어진 통치권위 회복

보니파시오9세는 교황직에 오르고 이후 통치기간 동안 전임 교황 우르바노6세때 떨어진 교황의 통치권위를 회복시키기 위해 로마를 둘러싼 성을 보수하고 도로를 보수, 정비하여 도시 전반의 행정 시스템을 원만하게 돌아가게끔 만들고 호시탐탐 로마를 노리던 콜론나 가문을 몰아내고 도시 전반이 안정을 찾으면서 통치권위를 회복시키고 더 나아가 교황령의 행정 시스템 점검과 함께 정비를 지속하게 된다. 

 

II. 나폴리

전임 교황 우르바노6세가 왕으로 인정했다가 이후 대립하던 나폴리 왕 카를로3세(Carlo III di Napoli, 1345~1386, 재위1382~1386)가 1386년 사망하면서 카를로3세의 아들인 라디슬라오(Ladislao I di Napoli, 1377~1414, 재위1386~1414)가 새 나폴리 왕으로 즉위하게 되지만 9세에 불과했기에 어머니 마르게리타가 섭정을 맡게 된다. 어린 아들의 통치기반이 절실했던 라디슬라오의 어머니 마르게리타는 교황의 지지를 얻어 기반을 확보하고자 했는데, 아비뇽 대립교황 클레멘스7세는 카를로3세 이전 군주이자 여왕인 조안나1세(Joanna I, 1325~1382, 재위1343~1381)가 카를로3세에게 폐위당하고 암살당한 것에 분노하여 프랑스 왕 샤를5세(Charles V 'le Sage', 1338~1380, 재위1364~1380)의 친동생 루이1세 당주(Louis Ier d'Anjou, 1339~1384, 재위1360~1384)를 나폴리에 보내 카를로3세를 폐위시키고 스스로 왕위에 오르라고 보내는데 1384년 나폴리에 당도하자마자 전염병으로 사망해버려 루이1세의 아들 루이2세 당주를 나폴리 왕으로 옹립시켜 교황 보니파시오9세를 압박하고자 했다. 이후 1387년 친 앙주공작파가 나폴리에서 반란을 일으켜 라디슬라오와 섭정인 어머니 마르게리타가 도망쳤고 루이2세 당주가 나폴리 왕으로 오르게 되면서 대립교황 클레멘스7세는 새 나폴리 왕 루이지2세(Luigi II)의 대관식을 거행하기까지 한다. 이에 분노한 보니파시오9세는 질세라 라디슬라오를 헝가리-크로아티아, 예루살렘 왕으로 즉위시키라고 수석 추기경 안젤로 아치아올리(Angelo Acciaiuoli, 1340~1408)에게 지시한다. 

 

III. 대립교황 베네딕토13세

나폴리를 두고 라디슬라오파와 루이지2세파는 격렬하게 내전을 벌이는데, 교황 보니파시오9세는 외교력을 동원시켜 루이지2세를 압박한 결과 점차 루이지2세의 세력이 나폴리에서 점점 영향력이 약해지고 라디슬라오 세력이 강성해지게 된다. 그러다가 1394년 아비뇽 대립교황 클레멘스7세가 사망하고 새로이 아비뇽 대립교황으로 즉위한 베네딕토13세(Antipope Benedictus, 1328~1423, 대립교황1394~1417)는 아비뇽 교황청의 내부 분열로 나폴리 일을 신경쓸 겨를도 없었기에 결국 나폴리를 라디슬라오 파에게 내주게 되고 루이지2세는 다시 앙주 공국으로 돌아온다. 

 

선종

1404년 10월 1일, 병을 앓고있던 교황 보니파시오는 54세의 나이로 선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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