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교황/201대~현직 교황

마르티노5세

Mintaka5 2025. 5. 21.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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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오도네 콜론나(Oddone Colonna)

206대 교황 마르티노5세(Martinus PP. V, 1368~1431, 재위1417~1431)

  전임 교황 당시 재직 교황 후임 교황 
직위 205대 교황 206대 교황 207대 교황
출신 베네치아 공화국, 베네치아 교황령, 제나차노 베네치아 공화국, 베네치아
명칭 그레고리오12세
Gregorius PP. XII
마르티노5세
Martinus PP. V
에우제니오4세
Eugenius PP. IV
생몰년도 1327.xx.xx ~ 1417.10.18 1369.01.25 ~ 1431.02.20 1383.01.11 ~ 1447.02.23
콘클라베기간 13일
(1406.11.18~1406.11.30)
4일
(1417.11.08~1417.11.11)
2일
(1431.03.02~1431.03.03)
재위 1406.11.30 ~ 1415.07.04 1417.11.11 ~ 1431.02.20 1431.03.03 ~ 1447.02.23

마르티노5세, 출처-위키피디아

출생

1369년 1월 25일 교황령 제나차노(Genazzano, 현 이탈리아 라치오주 로마현 코뮌)에서 아버지 아가피토 콜론나(Agapito Colonna, 1350~?)와 어머니 카테리나 콘티(Caterina Conti, ?~?) 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206대 교황으로, 카톨릭 역사상 마지막으로 공의회에서 선출된 로마 교황이다. 법학을 전공하고 교황 우르바노6세 서기장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해 1405년 인노첸시오7세 치세에 들어 부제급 추기경에 서임된다. 그러나 당시 서방교회 분열 시기 피사 공의회에 참석하여 대립교황2명(대립교황 알렉산데르5세, 요한23세)을 지지하고 충성을 맹세하였다가 로마 교황 그레고리오12세에게 파문을 당하기도 한다. 3명의 교황(로마 교황 그레고리오12세, 아비뇽 대립교황 알렉산데르5세, 피사 대립교황 요한23세)의 명분다툼이 극대화되고 개선이 될 조짐조차 보이지 않으면서 로마왕이자 신성로마황제인 지기스문트(Sigismund, 1368~1437, 로마왕재위1410~1437, 신성로마재위1433~1437)가 제창하여 열리게 된 콘스탄츠 공의회(The council of Constance, 1414~1418)로 합의안을 내놓아 화해를 시도하고 3명의 교황 모두 폐위시킨다음 새 교황을 선출하자는 의견에 모두 찬성하여 이곳에서 콘클라베가 치뤄지는데, 이 콘클라베에서 마르티노5세가 선출된다. 재위기간동안 분열되었던 서방교회의 안정을 찾기위해 노력하고 최대한 의견수렴을 하여 개선하고 카톨릭 교회를 안정화시키고자 노력한 개혁 교황이다. 

 

성직

페루자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학업을 모두 마친 다음 교황청에 들어가 교황 우르바노6세(Urbanus PP. VI, 1318~1389, 재위1378~1389)의 서기장으로 임용되어 다음 교황인 보니파시오9세(Bonifacius PP. IX, 1350~1404, 재위1389~1404)와 인노첸시오7세(Innocentius PP. VII, 1339~1406, 재위1404~1406)에도 계속 행정관으로 일하다가 1405년 교황 인노첸시오7세에 의해 부제급 추기경에 서임된다. 1409년 피사 공의회에 참석하여 대립교황 알렉산데르5세(Antipope Alexander V, 1340~1410, 대립교황1409~1410)와 이후 요한23세(Antipope Ioannes XXIII, 1370~1419, 대립교황1410~1415)를 지지해 충성을 맹세했다가 교황 그레고리오12세에게 파문당하기도 한다. 

 

 

1417년 콘스탄츠 공의회

1414년 당시 교황은 총3명이였다. 로마 교황 그레고리오12세(Gregorius PP. XII)와 아비뇽 대립교황 베네딕토13세(Antipope Benedictus XIII), 피사 대립교황 요한23세(Antipope Ioannes XXIII)로 그레고리오12세를 제외한 2명은 대립교황으로 분류되어 상당히 혼란스러운 시기라는 걸 증명하는데, 1378년 70년간의 긴 아비뇽 유수를 끝내고 교황으로 선출된 우르바노6세(Urbanus PP. VI)는 즉위 후 추기경들에게 강압적인 행위로 권위를 세우기 위해 복종을 강요하는등 추기경들의 분노가 커지면서 교황 선출 무효라는 초강수를 던지고 로베르 드 제네바(Robert de Genève)를 아비뇽 대립교황 클레멘스7세(Antipope Clemens VII, 1342~1394, 대립교황1378~1394)를 선출하기에 이른다. 이후 유럽국가들은 아비뇽 교황 지지와 로마 교황 지지국가들이 각각 절반으로 나뉘면서 대립해오는데, 이를 두고보다 못한 로마왕 지기스문트(Sigismund, 1368~1437, 로마왕재위1410~1437, 신성로마재위1433~1437)가 서방교회 분열을 종식시키기 위해 콘스탄츠 공의회를 제창하고 대립교황 요한23세가 콘스탄츠에서 공의회를 소집한다. 30년넘게 분열해온 서방교회의 불씨를 없애기 위해 3명의 교황(그레고리오12세, 아비뇽 대립교황 베네딕토13세, 피사 대립교황 요한23세)을 모두 폐위하기로 의결하고, 교황권보다 공의회권이 우위에 있고 교황은 추기경들과 중대한 문제는 반드시 회의를 거쳐 논의해야한다는 조건을 제시하여 의결한 다음 새로운 교황 선거를 실시하는데, 총30명의 추기경들이 모여 1417년 11월 8일부터 11월 11일까지 4일간 투표를 실시한 결과 오도네 콜론나 추기경이 교황으로 선출되고, 마르티노5세로 명명한 뒤 즉위하게 된다. 

 

 

교황

I. 콘스탄츠 공의회 폐막

마르티노5세는 1417년 11월 11일 공의회에서 교황으로 선출된 이후 줄곧 콘스탄츠에서 머물면서 추기경단과 공의회단들과 줄곧 조율을 해오다가 1418년 4월 22일 공의회가 공식 폐막하게되면서 콘스탄츠에서 로마 교황청으로 돌아가게 된다. 1천km가 넘는 긴 거리를 이동하는 동안 이탈리아 반도의 수많은 도시들을 방문하면서 사목활동을 병행하는데 특히 피렌체 공화국 피렌체에서는 1년넘게 머무르면서 피렌체 교구를 대교구로 승격시키기도 하는등 바쁜 일정을 보내고 1420년 9월 30일이 되어서야 로마에 도착한다.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폐위된 아비뇽 대립교황 베네딕토13세는 폐위된 이후 발렌시아 페니스콜라 성에서 고립된채 사망하는데, 사망 직전 측근 추기경에게 후계자 지명을 강요하고 사망 후 그 후계자는 대립교황 클레멘스8세(Antipope Clemens VIII, 1369~1446, 대립교황재위1423~1429)로 선출되지만 1429년 대립교황은 스스로 퇴위를 선언하고 교황 마르티노5세에게 용서를 구하고 마르티노5세는 그를 발레아레스 제도 주교로 임명하는 관용을 베푼다. 이후 아비뇽 대립교황은 베르나르도 가르니에가 베네딕토14세(Antipope Benedictus XIV, ?~1430, 대립교황1429~1430)로 선출되지만 신뢰를 잃어 사실상 잊혀진 존재가 되어 아비뇽 대립교황의 대는 끝이 난다. 

 

II. 외교

39년간의 긴 서방교회 대분열(1378~1417)동안 교황령이 분열되고 로마의 질서가 혼란스러워지면서 교황은 내치와 더불어 외교에 집중하기위한 과정에 착수하게 되며 교황령 행정의 기강을 잡고 내부 개편까지 과감하게 단행해낸다. 끝내고 평화적 명분으로 즉위한 마르티노5세는 공의회로 떨어진 교황의 권위를 회복시키기위한 작업에 집중하게 되는데, 이런 권위는 외교적 능력을 통해 세움을 알고있던 마르티노5세는 마침 잉글랜드와 프랑스간 100여년가까지 전쟁을 벌이고 있던 터에(백년전쟁, 1337~1453)교황 즉위당시는 1415년 프랑스 왕 샤를6세(Charles VI, 1368~1422, 재위1380~1422)의 프랑스 군이 잉글랜드 왕 헨리5세(Henry V, 1386~1422, 재위1413~1422)의 군대에게 대패하며 승기가 기울어가고있던 터라, 교황은 평화의 명분을 내세워 두 국가의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두 국가에 교황 대사를 파견시켜 교황이 전달한 평화의 메시지를 주입시키는데 집중하지만 별 효과는 없었다. 

 

III. 새 공의회 소집

콘스탄츠 공의회(1414~1418)법령에 의거해 5년마다 공의회를 열어야 한다는 내용을 인지하고있던 교황 마르티노5세는 1418년 콘스탄츠 공의회 종료시점으로부터 5년이 지난 1423년 롬바르디아 파비아(Pavia)에서 공의회를 소집하지만 저조한 참석인원에다가 더불어 전염병(페스트)까지 덮쳐버린 바람에 급하게 파비아에서 시에나로 공의회 장소를 옮긴다. 그러나 파비아 공의회는 1424년까지 1년간 진행되면서 콘스탄츠 공의회때 교황 선출인이 약조했던 공의회 우위설을 두고 논쟁이 격렬하게 벌어지는 바람에 교황 대리인은 공의회를 잠정 연기한다고 밝히면서, 파비아-시에나 공의회는 '프리쿠엔스(교황의 공의회 개최 의무 규정법)'규정에 따라 공의회를 7년뒤인 1431년 스위스 바젤(Basel)에서 열기로 합의한다. 교황 스스로 권위가 떨어지는 격인 공의회 우위설을 지지할리 없던 마르티노5세는 바젤 공의회도 못마땅해했지만 콘스탄츠 공의회로 합의한 명분으로 즉위한 교황이였기에 쉽사리 공의회를 마음대로 해산시킬 수도 없었던 상황이라 1431년 바젤 공의회 개최를 교황 본인이 가지 않고 줄리아노 체사리니 추기경을 교황 대리인으로 공의회 의장으로 삼아 보낸다. 그러나 공의회가 열리기 1개월 전인 1431년 2월부터 마르티노5세의 건강이 급격하게 나빠진다.  

 

 

선종

1431년 2월 20일 뇌졸중으로 인해 62세의 나이로 선종한다. 바젤 공의회는 후임 교황으로 선출되는 에우제니오4세(Eugenius PP. IV, 1383~1447, 재위1431~1447)가 이어받아 진행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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