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교황/201대~현직 교황

요한 바오로2세

Mintaka5 2025. 4. 25.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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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카롤 유제프 보이티와(Karol Józef Wojtyła)

264대 교황 요한 바오로2세(Ioannes Paulus PP. II, 1920~2005, 재위1978~2005)

  전임 교황 당시 재직 교황 후임 교황
직위 263대 교황 264대 교황 265대 교황
출신 이탈리아, 카날레다고르도 폴란드, 바도비체 바이마르 공화국 바이에른 주,
마르크틀암인
명칭 요한 바오로1세
Ioannes Paulus PP. I
요한 바오로2세
Ioannes Paulus PP. II
베네딕토16세
Benedictus PP. XVI
생몰년도 1912.10.17 ~ 1978.09.28 1920.05.18 ~ 2005.04.02 1927.04.16 ~ 2022.12.31
콘클라베기간 2일
(1978.08.25~1978.08.26)
3일
(1978.10.14~1978.10.16)
2일
(2005.04.18~2005.04.19)
재위 1978.08.26 ~ 1978.09.28 1978.10.16 ~ 2005.04.02 2005.04.19 ~ 2013.02.27

요한바오로2세
요한 바오로2세, 출처-위키피디아

출생

1920년 폴란드 바도비체(Wadowice)에서 아버지 카롤 보이티와(Karol Wojtyła, 1879~1941)와 어머니 에밀리아(Emilia, 1884~1929)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264대 교황으로 선출된 1978년 기준 455년전 1523년 신성로마제국 위트레흐트(현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출신이던 교황 하드리아노6세(Hadrianus PP. VI, 1459~1523, 재위1522~1523)이래로 비 이탈리아 출신 교황이면서 최초의 유럽동부 슬라브계 교황인 인물이다. 폴란드에서 제2차 세계대전(1939.09.01~1945.09.02)을 몸소 직접 겪은 인물로 이러한 잔인함으로 인해 세속적인 욕망을 버림으로서 1942년 폴란드 크라쿠프 교구장 아담 스테판 사피에하(Adam Stefan Sapieha, 1867~1951)대주교가 비밀리에 운영하던 지하 신학교에 입학해 2차대전이 끝난 다음해인 1946년 사제 서품을 받게 된다. 이후 1958년 교황 비오12세(Pius PP. XII, 1876~1958, 재위1939~1958)로부터 주교 서품을 받고 1962년 10월 교황 요한23세(Ioannes PP. XXIII, 1881~1963, 재위1958~1963)가 주관하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참석해 탁월한 능력으로 공로를 인정받아 1963년 교황 바오로6세(Paulus PP. VI, 1897~1978, 재위1963~1978)로부터 대주교 서품을 받고 크라쿠프 교구장에 임명되고 4년이 지난 1967년 카롤 유제프 보이티와 대주교는 바오로6세로부터 사제급 추기경에 서임하기에 이른다. 1978년 바오로6세가 선종하고 열린 콘클라베에서 요한 바오로1세(Ioannes Paulus PP. I, 1912~1978, 재위1978)가 선출되었으나 즉위한지 25일만에 선종해버려 다시 콘클라베가 열리게 되면서 자신이 새로운 교황으로 선출되어 요한 바오로2세로 명명되어 즉위한다. 1981년 터키 청년인 메흐메트 알리 아자(1958~)가 쏜 총탄에 맞아 위기가 찾아오는데 다행히 심장을 비켜가서 목숨을 부지하고 메흐메트 알리 아자는 종신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수감된다. 교황은 가까스로 의식을 회복하고 2년이 지난 1983년 메흐메트 알리 아자가 수감된 교도소에 찾아가 그를 사면해달라는 요청과함께 용서하였다고 하여 전세계 사람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다. 수많은 국가들을 돌아다니면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간 요한 바오로2세는 2005년 85세의 나이로 선종한다. 사후 2009년엔 교황 베네딕토16세(Benedictus PP. XVI, 1927~2022, 재위2005~2013)로부터 가경자와 복자(2011)로 시성되고, 2014년 교황 프란치스코(Franciscus PP., 1936~2025, 재위2013~2025)에 의해 성인으로 시성된다. 

 

초년

운동을 좋아하던 활발한 성격을 가졌던 보이티와는 고등교육을 마치고 관심을 가지던 연극학과에 들어가서 예체능에 뛰어는 능력을 보이고 성적까지 출중하였고 신학과 언어에 특히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 그러나 1939년 제2차 세계대전(1939.09.01~1945.09.02)이 발발하여 조국인 폴란드가 침공당하여 단숨에 나치 독일에 의해 폴란드가 점령당함에 따라 보이티와가 다니던 야기엘로 대학교가 문을 닫는다. 보이티와는 나치 독일의 강제 노역과 거주이동을 피하기 위해 다양한 업종의 일을 하면서 감시망을 빠져나가면서도 유대인들을 피신시키는데 앞장서고 비밀리에 저항적 지하활동을 거행한다. 다양한 업종의 일을 하면서 신분증을 발급받게 되면서 보이티와는 강제노역과 강제이동을 피할 수 있었고 이러한 생활은 1944년까지 지속된다. 그 사이 1942년 크라쿠프 교구장 아담 스테판 사피에하(Adam Stefan Sapieha, 1867~1951)대주교가 비밀리에 운영하던 지하 신학교에 입학하여 성직자가 되는 과정을 비로소 밟게 된다. 신학공부와 일을 병행하던 1944년 2월에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던 중 트럭에 치이는 사고를 당하고 심각한 부상을 입게 되지만 가까스로 살아나여 회복하게 된다. 그해 8월 바르샤바 봉기가 일어나 게슈타포가 크라쿠프를 급습해 모든 폴란드 젊은 남성들을 잡아들이기 시작했는데 보이티와는 게슈타포의 포위망을 겨우 피해 주교궁으로 숨어들어가 1945년 5월 모든 전투가 끝날때까지 이곳에서 머무른다. 

 

성직

1945년 5월 유럽에서의 2차대전 전투가 모두 종료되고난 이듬해 1946년 11월 보이티와는 비로소 사피에하 대주교로부터 사제로 서품되어 로마로 이주해 성 토마스 아퀴나스 교황대학에서 신학 공부를 이어나가고 박사학위까지 받게 된다. 1949년 크라쿠프 성 플로리안 교구로 부임받아 크라쿠프에 있는 야기엘로니안 대학교와 루블린 카톨릭대학교에서 윤리학을 가르치면서 성직활동을 이어나간다. 1958년 크라쿠프의 보좌주교로 임명되고 1962년 10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참석해 여러 성과를 올려 그 능력을 인정받아 1963년 교황 바오로6세(Paulus PP. VI, 1897~1978, 재위1963~1978)로부터 대주교 서품을 받고 크라쿠프 대주교에 임명되고 4년뒤인 1967년엔 바오로6세가 보이티와 대주교를 사제급 추기경에 서임한다는 발표를 함으로서 47세의 나이로 추기경에 서임된다.

 

1978년 두번의 콘클라베 

1978년 8월 바오로6세가 선종하고 열린 콘클라베에서는 요한 바오로1세(Ioannes Paulus PP. I, 1912~1978, 재위1978)가 선출되지만 즉위한지 25일만에 선종해버리면서 당해에 다시 콘클라베가 열리게 된다. 보이티와 추기경은 다시열린 콘클라베에 참석하여 수차례 투표 끝에 1978년 10월 58세의 젊은 나이에 교황으로 선출되어 전임 교황 요한 바오로1세의 이름을 따서 요한 바오로2세로 명명되어 즉위하게 된다. 

 

교황

신성로마제국 위트레흐트(현 네덜란드 위트레흐트)출신인 비 이탈리아계 교황 하드리아노6세(Hadrianus PP. VI, 1459~1523, 재위1522~1523)이후 455년만에 탄생한 비 이탈리아계 출신 교황이자 사상 첫 슬라브계 교황인 요한 바오로2세는 전임 교황들과 마찬가지로 전통적 의례 일부를 수정하거나 없애고 다른 종교와의 화합을 꾀하고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재위기간 내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활발한 목회 활동을 벌인 교황이다. 2차대전을 몸소 직접 겪으면서 지하에서 저항활동까지 하면서 사회문제에도 이전부터 큰 관심을 보여왔었고 모든 국가 국민에게 종교적 자유를 존중할 것을 촉구하였다. 

 

I. 암살 미수

즉위한지 3년이 되던 1981년 5월, 교황 요한 바오로2세는 일반 시민들과의 알현을 위해 성 베드로 광장에 온지 몇분 안되었을 시점에 터키 출신 이슬람 테러리스트 메흐메트 알리 아그자(1958~)에게 총상을 입어 총탄이 심장근처까지 박히는 중상을 입어 6시간에 달하는 긴급 수술끝에 겨우 살아나게 된다. 이 사건으로 메흐메트 알리 아그자는 종신형을 선고받고 수감되었고, 요한 바오로2세는 가까스로 회복하여 2년이 지난 1983년 크리스마스에 메흐메트 알리 아그자가 수감되어있던 감옥에 직접 찾아가 알리 아그자를 용서하였다는 말을 전하고 교도소측에 알리 아그자에 대한 사면을 요청함으로서 알리 아그자는 자신의 행위에도 불구하고 용서를 한 교황과 사면까지 요청한 교황에게 크게 감격하여 이후 이슬람에서 카톨릭으로 개종하고 현재는 유기된 동물들을 구하는 동물보호운동가로서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II. 건강

어린시절부터 다양한 공부와 예술적 활동에 뛰어난 운동능력까지 겸비했던 교황은 27년간의 재위기간동안 193만km에 달하는 거리를 이동하여 국외방문을 실시하는 기염을 토하는데 이러한 행보로 인해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교황으로 전세계 신자들과 시민들에게 널리 알려져있었지만 나이 앞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는지, 75세이후로부터는 여러 합병증과 더불어 건강이 점점 나빠지는게 눈에 보일 정도였고 이후엔 뼈 골절문제까지 겹쳐 휠체어를 타지않고는 보행이 힘들정도로 건강이 나빠지게 된다. 

 

선종

선종하기 전 까지 지속적으로 건강이 나빠짐에도 불구하고 교황으로서의 책무를 다하고자했던 교황 요한 바오로2세는 2005년 3월부터 점점 더 건강이 악화되어 혼수상태에 빠져 선종에 임박한 상태까지 갔다가 일주일도 채 안되어 선종한다. 선종한지 이틀이 지난 후 장례 미사가 거행될 때 후임 교황 베네딕토16세(Benedictus PP. XVI, 1927~2022, 재위2005~2013)가 되는 추기경단 의장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이 집전한다. 이후 2009년엔 베네딕토16세로부터 가경자로 선포, 2011년엔 복자로 추대된 뒤 2014년 교황 프란치스코(Franciscus PP., 1936~2025, 재위2013~2025)로부터 성인으로 시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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