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교황/201대~현직 교황

인노첸시오12세

Mintaka5 2025. 4. 15.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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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안토니오 피냐텔리(Antonio Pignatelli)

242대 교황 인노첸시오12세(Innocentius PP. XII, 1615~1700, 재위1691~1700)

  전임 교황 당시 재직 교황 후임 교황
직위 241대 교황 242대 교황 243대 교황
출신 베네치아 공화국, 베네치아 나폴리 왕국, 스피나촐라 교황령, 우르비노
명칭 알렉산데르8세
Alexander PP. VIII
인노첸시오12세
Innocentius PP. XII
클레멘스11세
Clemens PP. XI
생몰년도 1610.04.22 ~ 1691.02.01 1615.03.13 ~ 1700.09.27 1649.07.23 ~ 1721.03.19
콘클라베기간 1개월 15일
(1689.08.23~1689.10.06)
5개월
(1691.02.12~1691.07.12)
1개월 16일
(1700.10.09~1700.11.23)
재위 1689.10.06 ~ 1691.02.01 1691.07.12 ~ 1700.09.27 1700.11.23 ~ 1721.03.19

242대 교황 인노첸시오12세 초상화
인노첸시오12세, 출처-위키피디아

출생

1615년 3월 13일, 나폴리 왕국 스피나촐라(Spinazzola)에서 아버지 프란체스코 피냐텔리(Francesco pignatelli)와 어머니 포르지아 카라파(Porzia Carafa, 1589~1657)사이에서 넷째로 태어났다. 

 

배경

242대 교황으로 나폴리 왕국 스피나촐라에서 나폴리의 귀족가문인 피냐텔리 가문에서 태어나 로마에 가서 예수회에 입회하여 청소년기 대부분을 이곳에서 교육을 받으며 성장기를 보내고 사제 서품을 받는다. 이후 교황 우르바노8세(Urbanus PP. VIII, 1568~1644, 재위1623~1644)가 안토니오를 교황청으로 불러 일을 시키고, 이후 주교(1652년),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교황 대사(1660~1671), 추기경(1681년)등에 서임된다. 1691년 교황 알렉산데르8세(Alexander PP. VIII, 1610~1691, 재위1689~1691)가 선종하고 열린 콘클라베에서 5개월(1691년 2월~7월)간의 긴 투표 끝에 교황으로 선출되어 240대 교황인 인노첸시오11세(Innocentius PP. XI, 1611~1689, 재위1676~1689)를 기리기 위해 교황명을 인노첸시오12세로 명명한다. 전임 교황 알렉산데르8세가 시행했던 족벌주의 정책으로 교황청의 상황이 좋지 않았는데, 인노첸시오12세는 청렴하고 검소하게 생활하며 반 족벌주의 정책을 시행하여 강하게 전임 교황의 행태를 경계한다. 당시 유럽의 초강대국 프랑스 왕 루이14세(Louis XIV, 1638~1715, 재위1643~1715)를 설득해 프랑스 카톨릭 교회와의 분열을 피하는등 외교적인 성과도 거둔다. 

 

성직자

일찍이 로마 예수회에 입회하여 모든 교육을 받고 사제로 서품된 뒤에 1652년 주교로 서임되고 1660년부터 1671년까지 11년간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과 합스부르크 신성로마제국등 해외에 거주하면서 교황 대사로 일하게 된다. 여러 지역에서 일하면서 승품되고 있던 찰나에 1672년 당시 교황 클레멘스10세(Clemens PP. X, 1590~1676, 재위1670~1676)와 사이가 좋지 않아 레체로 좌천되지만 1676년 새로이 교황직에 오른 인노첸시오11세에 의해 다시 교황청으로 들어와서 일하다가 인정을 받아 1681년 추기경으로 승품된다. 

 

콘클라베

1691년 교황 알렉산데르8세(Alexander PP. VIII, 1610~1691, 재위1689~1691)가 선종하면서 콘클라베가 열린다. 65명의 추기경 선거인단으로 구성된 콘클라베는 역대 두번째로(5개월, 1691년2월~7월)길었던 만큼 좀처럼 뽑히지 않던 교황이 7월이 되어서야 안토니오 피냐텔리 추기경이 교황으로 선출된다. 안토니오 추기경은 자신을 인정해줬던 교황 인노첸시오11세의 이름을 따서 인노첸시오12세로 명명하게 된다.

 

교황

1691년 새로이 교황이 된 인노첸시오12세는 전쟁으로 물든 유럽인들의 고통스러운 삶에 평화를 기원하기 위해 1693년, 1695년에 특별 기념일을 선포해 각 국가 군주간의 평화를 기원하는 행사를 연다. 우선적으로 교황은 교황을 포함한 모든 성직자들이 신자들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이를 확신하는데 전임 교황 알렉산데르8세가 취했던 족벌주의 정책으로 교황청의 재정과 교황청 내 질서가 문란하게 되는 것을 직접 목격했던 인노첸시오12세는 자신부터 청렴하고 모든 성직자들과 신자들의 모범이 되기위해 노력한다. 

 

I. 얀센주의

인노첸시오12세는 당시 교황의 권위를 용납하지 않던 프랑스와 플랑드르의 얀센주의자들에게 부정적 사고를 가지지만 우선적으로 이들에게 서한을 내려 경고성 메시지를 남기는데, 이 메시지가 잘 먹혀들었는지 얀센주의자들은 더이상 경거망동 하지 않게는 된다. 

 

II. 청나라 제사

알렉산데르7세(Alexander PP. VII, 재위1655~1667)가 제사에 대해 큰 간섭은 하지않겠다는 의사를 표출한 뒤 이후 어떤 교황도 이 문제를 다시 꺼내지 않았었지만 1693년 파리외방전교회 사도 대리 샤를 메그로()에 의해 다시 표면에 오르게 된다. 인노첸시오12세는 표면에 오른 이 문제에 제사를 지내는 행태를 비판하지만 공개적으로 문제에 접근하지는 않고 화합을 추구해 이 문제에 대한 조사 위원회를 임명해 해결하고자 하였다. 

 

III. 프랑스 루이14세

인노첸시오12세는 수십년전부터 유럽의 초강대국이던 프랑스 왕 루이14세(Louis XIV, 1638~1715, 재위1643~1715)는 교황권에 맞먹는 왕권으로 논쟁이 있었는데, 이 문제에 대한 화해를 이끌어내는데 루이14세가 임명한 주교들의 임명권을 확정시키고 카톨릭 교회의 혜택문제에 대한 합의점을 찾아 루이14세가 1693년 자신이 취했던 논쟁 주장을 철회함으로서 문제가 해결되기에 이른다. 

 

IV. 족벌주의 폐지

전임 교황이였던 알렉산데르8세(Alexander PP. VIII, )가 행해왔던 족벌주의로 교황청의 재정등이 위기에 빠지면서 인노첸시오12세는 교황청 내 개혁을 단행하기로 결심하고 칙서를 내려 족벌주의가 만연했던 특별 재판소등을 해산시키고 일반 재판관을 임용시키고 모든 교황청 행정기구중 족벌주의가 뿌리내려 추기경의 조카등이 앉혀져있던 직책등을 폐지하는등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 

 

선종

1699년부터 앓은 류마티스 질환으로 앓다가 1년이 지난 1700년 85세의 나이로 선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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