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 : 로렌초 코르시니(Lorenzo Corsini)
246대 교황 클레멘스12세(Clemens PP. XII, 1652~1740, 재위1730~1740)
전임 교황 | 당시 재직 교황 | 후임 교황 | |
직위 | 245대 교황 | 246대 교황 | 247대 교황 |
출신 | 나폴리 왕국, 그라비나 | 토스카나 대공국, 피렌체 | 교황령, 볼로냐 |
명칭 | 베네딕토13세 Benedictus PP. XIII |
클레멘스12세 Clemens PP. XII |
베네딕토14세 Benedictus PP. XIV |
생몰년도 | 1649.02.02 ~ 1730.02.21 | 1652.04.07 ~ 1740.02.06 | 1675.03.31 ~ 1758.05.03 |
콘클라베기간 | 2개월 10일 (1724.03.20~1724.05.08) |
4개월 10일 (1730.03.05~1730.07.12) |
6개월 1일 (1740.02.18~1740.08.17) |
재위 | 1724.05.29 ~ 1730.02.21 | 1730.07.12 ~1740.02.06 | 1740.08.17 ~ 1758.05.03 |
출생
1652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아버지 바르톨로메오 코르시니(Bartolomeo Corsini, 1622~1685)와 어머니 리사베타 스트로치(Lisabetta Strozzi, ?~1682)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코르시니 가문(Maison de Corsini)출신의 246대 교황으로 본명은 로렌초 코르시니이다. 피렌체에서 1652년 태어나 피사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1675년 법학 박사학위 취득 후 1685년 아버지 바르톨로메오가 사망하면서 집안의 상속권을 포기하고 교황 인노첸시오11세(Innocentius PP. XI, 1611~1689, 재위1676~1689)휘하 성직자단에 들어가고 가문의 재력으로 사제에 서품 된다. 교황청내에서도 행정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 평판이 좋은 상태에서 추기경까지 임명된 후, 전임 교황 베네딕토13세(Benedictus PP. XIII, 1649~1730, 재위1724~1730)가 선종하면서 열린 콘클라베에서 교황으로 선출되어 클레멘스12세로 즉위하는 인물이다. 78세의 나이에 즉위하여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도 정무에 소홀함이 없었고 카톨릭 쇄신을 위해 아래로는 부패한 추기경을 관리하고 교황청의 살림을 살찌웠다는 평을 받는다. 1740년 88세의 나이로 선종한다.
사제
당시 이탈리아에서 상인, 성직자, 금융가, 정치인등을 다량 배출했던 유력 가문인 코르시니 가문의 차남으로서 1685년 아버지 바르톨로메오가 사망한 이후 가문의 계보를 이어받지 않고 신앙에 따라 당시 교황 인노첸시오11세(Innocentius PP. XI, 1611~1689, 재위1676~1689)휘하 성직자단에 들어가서 총11만 스쿠디(대략13만 달러)에 달하는 재력을 쏟아부어 사제가 된다. 이후 교황청 내 재무청에서 일하면서 경제적 능력을 대폭발휘해 교황청 재정을 잘 관리했다는 평을 받고 교황으로부터 인정도 받는다. 이 공로로 1706년 교황 클레멘스11세(Clemens PP. XI, 1649~1721, 재위1700~1721)로부터 추기경에 서임된다.
1730년 콘클라베
1721, 1724년 두차례의 콘클라베에 췩경으로서 참여하고 1730년 유력 교황 후보인 추기경으로서 콘클라베에 참석하게 되는데, 총56명의 추기경 선거인단이 참석한 콘클라베는 1730년당시 복잡한 유럽정세로 인해 선거인단중 절반에 달하는 추기경이 선거 후보로 추천됨에 따라 각 국가별 정치싸움에 비하는 콘클라베로 전락하고 만다. 그만큼 과반이상을 받을 수 있는 상황도 되지 못하여 무려4개월간 콘클라베가 지속되게 된다. 수개월간 지속된 콘클라베로 교황자리가 장기간 공석인 상태에서 이탈리아에 지진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 때 많은 사람들이 교황을 선출하지 못한것에 대한 하느님의 분노로 지진을 해석하게 됨에 따라 추기경들은 마음이 급해지고, 결국 로렌초 코르시니 추기경쪽으로 표가 쏠리게 되면서 교황으로 선출된다. 로렌초 코르시니 추기경은 자신을 후원했던 교황이였던 클레멘스11세(Clemens PP. XI, 1649~1721, 재위1700~1721)의 이름을 따서 클레멘스의 이름을 따서 클레멘스12세로 즉위하게 된다.
교황
클레멘스12세는 즉위할 때 이미 78세의 고령이였는데, 이미 눈이 잘 보이지 않아 문서를 보는 것 조차 어려웠는데 그럼에도 직무에 소홀함이 없었다고 한다. 거기다 여러 유럽국가들의 정치판으로 전락한 교황청 내부를 쇄신하기 위해 본보기로 전임 교황 베네딕토13세(Benedictus PP. XIII, 1649~1724, 재위1724~1730)의 신용을 믿고 권력을 남용한 추기경 니콜로 코시아(Niccolò Coscia, 1681~1755)를 일벌백계 하여 징역10년형을 선고하고 앞서 추기경으로서 교황청 재무관리를 스스로 진행하면서 이전에 발휘했던 능력을 다시 10분발휘하여 로마의 건축과 더불어 상황이 어렵던 지역에 구호물품을 보내는등 노력을 기울인다. 이전 교황들때부터 암묵적으로 진행되어오던 얀센파에 대한 결정은 그대로 이어나가게 하고 클레멘스12세의 가장 큰 업적인 선교정책은 수많은 국가에서부터 호응을 이끌어내는 효과를 얻지만, 대외적으로는 점령한 산마리노 공화국의 시민들에게 자유를 회복시켜주는등 상대적으로 온화한 정책을 이끌었다는 평을 받는다.
선종
1740년 즉위한지 10년이 되었을 해 통풍에 걸려 88세의 나이로 선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