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 : 피에트로 비토 오토보니(Pietro Vito Ottoboni)
241대 교황 알렉산데르8세(Alexander PP. VIII, 1610~1691)
| 전임 교황 | 당시 재직 교황 | 후임 교황 | |
| 직위 | 240대 교황 | 241대 교황 | 242대 교황 |
| 출신 | 밀라노 공국, 코모 | 베네치아 공화국, 베네치아 | 나폴리 왕국, 스피나촐라 |
| 명칭 | 인노첸시오11세 Innocentius PP. XI |
알렉산데르8세 Alexander PP. VIII |
인노첸시오12세 Innocentius PP. XII |
| 생몰년도 | 1611.05.19 ~ 1689.08.12 | 1610.04.22 ~ 1691.02.01 | 1615.03.13 ~ 1700.09.27 |
| 콘클라베기간 | 1개월 21일 (1676.08.02~1676.09.21) |
1개월 15일 (1689.08.23~1689.10.06) |
5개월 (1691.02.12~1691.07.12) |
| 재위 | 1676.09.21 ~ 1689.08.12 | 1689.10.06 ~ 1691.02.01 | 1691.07.12 ~ 1700.09.27 |

출생
1610년 4월 22일, 베네치아 공화국 베네치아에서 아버지 마르코 오토보니(Marco Ottoboni, 1554~1646)와 어머니 비토리아 토니엘리(Vittoria Tornielli, ?~1635)사이에서 아홉째로 태어났다.
배경
241대 교황으로 선출된 인물로서 본명은 피에트로 비토 오토보니(Pietro Vito Ottoboni)이다. 베네치아 귀족가문 출신으로서 파도바 대학교에서 법학(시민, 교회)을 전공하고 졸업하여 1630년 로마에 와서 교황 우르바노8세(Urbanus PP. VIII, 1568~1644, 재위1623~1644)의 눈에들어 테르니, 리에티, 스폴레토 시장등을 역임하고 1642년 교황청 감사원, 1652년 교황 인노첸시오10세(Innocentius PP. X, 1574~1655, 재위1644~1655)로부터 추기경에 서임되었다. 추기경에 머무르는 동안 총5회의 콘클라베(알렉산데르7세, 클레멘스9세, 클레멘스10세, 인노첸시오11세, 본인 알렉산데르8세)에 참여하여 이미 사실상 추기경단의 수장이나 다름없던 인물이였다.
일반인
파도바 대학교에서 법학(시민법, 교회법)을 전공하고 졸업한뒤 로마로 갔을 때 교황 우르바노8세(Urbanus PP. VIII, 1568~1644, 재위1623~1644)의 눈에띄어 여러 장소의 시장을역임하고 성직자가 된다. 1652년엔 42세의 나이로 교황 인노첸시오10세에 의해 추기경에 서임된다.
콘클라베
1689년 교황 인노첸시오11세(Innocentius PP. XI, 1611~1689, 재위1676~1689)가 선종함에 따라 콘클라베가 열리는데, 40여일에 달하는 콘클라베에 50명의 추기경 선거인단이 참석하여 피에트로 비토 오토보니 추기경이 교황으로 선출됨에 따라 알렉산데르8세로 명명되고 즉위한다.
교황
I. 족벌주의 부활
전임 교황 인노첸시오11세가 폐지했던 족벌주의(가족또는 일족을 공적인 직책에 우선시하는 행태)를 부활시켜 혼란을 부추기김과 동시에 재위한 1년반간의 기간동안 교황청의 재정이 악화되는 사태를 빚게 된다.
II. 프랑스
1689년 즉위 후 1670년대부터 시작된 프랑스 루이14세(Louis XIV, 1638~1715, 재위1643~1715)와의 관계가 회복될 기미가보이지 않았다. 장기간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다가 1682년 전임 교황 인노첸시오11세가 4개 조항으로 구성된 칙령을 루이14세에게 보냈는데 거절하던 루이14세가 이후 그 칙령을 받아들이게 되면서 아비뇽을 교황청에 반환하면서 화해의 제스처를 보내면서 알렉산데르8세는 이에 루이14세의 총애를 받는 투생 드 포르뱅-장송 추기경(Toussaint de Forbin-Janson, 1631~1713)을 추기경으로 임명시키고 루이14세에게 주교 임명권을 부여함으로서 화답한다. 일시적인 화합에 가까운 이러한 행태는 1691년 사도헌장을 발표하고 알렉산데르8세가 선종함으로서 루이14세는 이를 무효화시킨다.
III. 신성로마제국
루이14세의 최측근 투생 드 포르뱅-장송을 추기경으로 임명하자, 루이14세의 라이벌이였던 신성로마황제 레오폴트1세(Leopold I, 1640~1705, 재위1658~1705)는 반발하여 교황청에 파견시켰던 신성로마제국 대사를 철수시킴에 따라 알렉산데르8세역시 분노하며 서로 대립하는 상태가 된다.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카톨릭을 지킨다는 신성로마황제 자리에 있던 레오폴트1세는 교황이 프랑스와 손잡게 되면서 오스만과의 대립을 보류하고 프랑스와 전쟁을 벌이기위해 전쟁모드에 돌입하는 시발점이 된다.
선종
1691년 81세로 선종하게 되는데, 이미 1690년부터 가벼운 병을 앓고있어 안그래도 고령에 병이 악화될 것을 우려해 의료진들이 휴식을 권고했지만 정확한 병명도 알 수없어 쉬지않고 계속 업무에 집중했지만 타계당시 나폴리에서 전염병이 돌면서 괴저현상이 발견되면서 병이 악화되다가 괴저현상이 발견된 3일 뒤 선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