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교황/201대~현직 교황

클레멘스11세

Mintaka5 2025. 4. 14.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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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조반니 프란체스코 알바니(Giovanni Francesco Albani)

243대 교황 클레멘스11세(Clemens PP. XI, 1649~1721, 재위1700~1721)

  전임 교황 당시 재직 교황 후임 교황
직위 242대 교황 243대 교황 244대 교황
출신 나폴리 왕국, 스피나촐라 교황령, 우르비노 교황령, 라치오폴리
명칭 인노첸시오12세
Innocentius PP. XII
클레멘스11세
Clemens PP. XI
인노첸시오13세
Innocentius PP. XIII
생몰년도 1615.03.13 ~ 1700.09.27 1649.07.23 ~ 1721.03.19 1655.05.13 ~ 1724.03.07
콘클라베기간 5개월
(1691.02.12~1691.07.12)
1개월 16일
(1700.10.09~1700.11.23)
1개월 9일
(1721.03.31~1721.05.08)
재위 1691.07.12 ~ 1700.09.27 1700.11.23 ~ 1721.03.19 1721.05.08 ~ 1724.03.07

243대 교황 클레멘스11세 초상화
클레멘스11세, 출처-위키피디아

출생

1649년 7월 23일, 교황령 우르비노(Urbino)에서 아버지 카를로 알바니(Carlo Albani, 1623~1684)와 어머니 엘레나 모스카(Elena Mosca, 1630~1698)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243대 교황으로 귀족가문 알바니 가문의 장자로서 어려서부터 로마 예수회에 입학하여 교육을 받음과 동시에 1668년경엔 데시오 아졸리노 추기경(Decio Azzolino, 1623~1689)의 소개로 스웨덴 여왕 크리스티나(Kristina, 1626~1689, 재위1632~1654)가 설립하고 운영하는 학원에서 수학하면서 당대의 유명한 문인, 시인, 화가, 음악가등을 만나며 교류했다. 이후 교황청에서 교황 알렉산데르8세(Alexander PP. VIII, 1610~1691, 재위1689~1691)와 인노첸시오12세(Innocentius PP. XII, 1615~1700, 재위1691~1700)의 고문을 맡으면서 다양한 직책들을 맡으며 업무처리에 있어서 공정함과 더불어 부패하지않은 추기경으로 명성이 높아지게 된다. 1700년 교황 인노첸시오12세가 선종하면서 열린 콘클라베에서 교황으로 선출되는데 자신이 선출된 축일이 클레멘스1세(Clemens PP. I, 30?~101, 재위88~99)의 축일이였어서 그의 이름을 따서 클레멘스11세로 즉위하게 된다. 

 

알비니 가문

1649년 부친, 모친 모두 귀족인 가문 알바니 가문에서 태어났다. 조반니 프란체스코는 1660년 11세가 될 무렵 우르비노에서 로마로 이동해서 예수회에 입학하여 기초가되는 모든 교육을 받고 라틴어, 그리스어, 고대 그리스어등을 배웠고 언어에 타고난 재능을 가졌다고 하며 번역하는 법까지 익혔다고 한다. 로마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명석한 두뇌의 명성으로 교황청 내 국무장관 추기경이였던 데시오 아졸리노 추기경(Decio Azzolino, 1623~1689)의 소개를 받아 스웨덴 전 여왕 크리스티나(Kristina, 1626~1689, 재위1632~1654)가 설립하고 운영하는 학원에서 수학하면서 수많은 문학가, 예술가등과 교류하면서 배경을 쌓는다. 

 

성직자

앞서 예수회 입교와 교육을 받고 더불어 데시오 아졸리노 추기경과의 인연으로 1668년부터 교황청에 입문하게 되면서 교황령에 속한 지역의 행정담당을 맡아 그 공로로 1690년 교황 알렉산데르8세(Alexander PP. VIII, 1610~1691, 재위1689~1691)로부터 부제급 추기경으로 서품받는다. 그렇게 알렉산데르8세의 고문직을 맡으면서 이듬해 알렉산데르8세 선종이후 선출된 인노첸시오12세(Innocentius PP. XII, 1615~1700, 재위1691~1700)의 고문직까지 연속으로 이어받는데, 당시 조반니 프란체스코 추기경의 부패척결과 공정함과 더불어 업무처리의 효율을 극대화 시키면서 명성이 높아진다. 

 

콘클라베

교황 인노첸시오12세가 1700년 선종함에 따라 콘클라베가 열리면서 조반니 프란체스코 추기경도 참석하여 교황 추천을 받는데 46일간 66명의 추기경 선거인단으로 구성된 콘클라베에서 교황에 선출되지만 즉시 교황직을 수락하지 않고 3일간 고려기간을 통해 대기하다가 이견이 없음에 교황으로 즉위하게 된다. 선출일이 교황 클레멘스1세(Clemens PP. I, 30?~101, 재위88~99)의 축일이였기에 클레멘스로 이름지어 클레멘스11세가 된다. 

 

교황

교황즉위 이전부터 업무를 공정하게 수행함에 앞서 부정부패와는 거리가 먼 정의에 가까운 행보를 보이며 명성이 높았던 클레멘스11세는 즉위하면서부터 이전부터 성행하던 족벌주의(가족중심 등용형태)와 모든 부패루트가 접근하는 것을 차단하고 전임 교황 인노첸시오12세의 행적을 이어받아 선교사를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왕국에 파견하는등 다양한 선교활동에 집중한다. 거기다 얀센주의를 억압하여 얀센주의자들을 직무해임하고 교리에 어긋나는 행보를 보이는 곳에서는 과감히 인사를 단행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얀센주의 근절결심은 당시 유럽 초강대국 프랑스 루이14세(Louis XIV, 1638~1715, 재위1643~1715)와 합의를 하여 합심하게 되면서 이는 1705년 사도헌장(Vineam Domini Sabaoth, 1705)으로 공식화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당시 청나라에 있던 예수회 선교사들이 공자(BC551~BC479)와 청나라 황제의 조상들에게 올리는 제사를 일절 금지시키고 야만적 우상숭배라 규정짓는데, 1715년 클레멘스11세는 제사를 금지시키는 회칙을 내린다. 이미 1656년 교황 알렉산데르7세(Alexander PP. VII, 1599~1667, 재위1655~1667)가 인가한 적이 있던 제사를 금지하는 조칙을 다시 발동하면서 당시 청나라 황제 강희제(1654~1722, 재위1661~1722)는 이에 반발하여 청나라 내에있던 예수회 선교사들에 대한 포교를 불법화시키는 칙령을 반포하였고, 이는 이후 조선 후기에 여러차례 벌어지는 천주교 박해의 명분으로 삼아지게 되는 계기가 되어버린다. 

 

선종

1721년 즉위한지 21년이 되던 해 갑작스러운 고열로 인해 72세의 나이로 선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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