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교황/201대~현직 교황

인노첸시오10세

Mintaka5 2025. 4. 17.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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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조반니 바티스타 팜필리(Giovanni Battista Pamphili)

236대 교황 인노첸시오10세(Innocentius PP. X, 1574~1655, 재위1644~1655)

  전임 교황 당시 재직 교황 후임 교황
직위 235대 교황 236대 교황 237대 교황
출신 피렌체 공국, 피렌체 교황령, 로마 토스카나 대공국, 시에나
명칭 우르바노8세
Urbanus PP. VIII
인노첸시오10세
Innocentius PP. X
알렉산데르7세
Alexander PP. VII
생몰년도 1568.04.05 ~ 1644.07.29 1574.05.06 ~ 1655.01.07 1599.02.13 ~ 1667.05.22
콘클라베기간 19일
(1623.07.19~1623.08.06)
1개월 8일
(1644.08.09~1644.09.15)
2개월 20일
(1655.01.18~1655.04.07)
재위 1623.08.06 ~ 1644.07.29 1644.09.15 ~ 1655.01.07 1655.04.07 ~ 1667.05.22

236대 교황 인노첸시오10세 초상화
인노첸시오10세, 출처-위키피디아

출생

1574년 5월 6일, 교황령 로마에서 아버지 카밀리오 팜필리(Camillo Pamphilj, 1540~1580)와 어머니 마리아 플라미니아 칸첼레리 델 부팔로(Maria Flaminia Cancellieri del Bufalo, 1540?~1580)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236대 교황으로 선출된 인물로, 교황 알렉산데르6세(Alexander PP. VI, 1431~1503, 재위1492~1503)를 배출하는등 당대의 저명한 귀족가문인 팜필리 가문에서 9남매중 여섯째로 태어난 인물이다. 로마 사피엔자 에서 법학을 전공한 뒤 교황청 법률가로 근무하면서 감사관, 법학자등을 역임하면서 실력을 입증받다가 나폴리로 2년간(1621~1623)보내지는데 당시 교황 그레고리오15세(Gregorius PP. XV, 1554~1623, 재위1621~1623)에 의해 나폴리 왕국 주재 교황 대사로 임명되어 파견되었었고, 1625년엔 프랑스 루이13세(Louis XIII, 1601~1643, 재위1610~1643)왕정의 교황 대사로 보내지는등 해외 파견업무를 수년간 이어오다가 1626년 대주교에 서임되고 3년뒤 1629년 교황 우르바노8세(Urbanus PP. VIII, 1568~1644, 재위1623~1644)에 의해 추기경에 서임된다. 이후 1644년 우르바노8세의 선종으로 열린 콘클라베에서 조반니 바티스타 팜필리 추기경이 교황으로 선출되면서 인노첸시오10세로 즉위하게 된다. 

 

초년

삼촌인 지롤라모 팜필리 추기경(Girolamo Pamphilj, 1544~1610)의 아래에서 공부를 하였고 로마 사피엔자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한 뒤 로마 예수회에 들어가서 교육을 받는다. 이후 교황청에 배속되어 법률가, 감사관, 법학자등을 역임하면서 성직자의 본분을 이어가다가 1621년 나폴리 왕국 교황 대사, 1625년 프랑스 왕국 교황 대사등으로 파견보내어 졌다가 여태껏 공으로 1626년 총대주교에 오른다. 게다가 1627년 교황 우르바노8세에 의해 비밀 추기경에 임명되는데 이는 정체가 극비리에 보안에 부쳐진 추기경으로 임명되고 1629년 공식적으로 공의회에서 추기경으로 발표되게되면서 알려지게 된다. 

 

1644년 콘클라베

1644년 교황 우르바노8세(Urbanus PP. VIII, 1568~1644, 재위1623~1644)가 선종함에 따라 콘클라베가 열린다. 총1개월간 치루어진 콘클라베는 당시 유럽을 휩쓴 종교전쟁격 성격을 띤 대전인 30년 전쟁(1618~1648)이 발발한지 26년이나 지난 시점에서 장기화된 전쟁으로 불안해진 교회에 안정을 가져다줄 수 있는 인물을 물색하는 쪽으로 추기경들의 여론이 쏠린다. 우르바노8세역시 족벌주의 정책으로 친족을 성직에 임명하는등 교황청에 혼란을 가져다 준 상태였는데 당시 유럽의 패권을 두고 대립하던 프랑스와 합스부르크 제국의 입김이 추기경들에게도 미치면서 콘클라베가 진행되는 도중에도 교황청 근처로 군대를 이동시키는등 추기경들을 압박하던 실정이였다. 프랑스쪽을 지지하던 전임 우르바노8세와는 다른노선을 걸어 합스부르크쪽을 다독일 수 있는 교황이 필요한 시점에 마침 합스부르크령에 교황 대사를 지낸적이 있던 팜필리 추기경에게 표가 몰리면서 교황으로 선출되게 되면서 인노첸시오10세로 명명되어 즉위하게 된다. 

 

교황

인노첸시오10세는 즉위당시 72세의 고령이였는데, 바르베리니 가문을 유독 근처에 둬 비리를 자행하게 했던 전임 교황 우르바노8세의 반대행동을 취하며 공적 자금 횡령으로 바르베리니 가문에 대한 법적 조치를 단행하며 프랑스로 도망친 바르베리니 일족들은 당시 프랑스 총리대신인 추기경 마자랭(Mazarin, 1602~1661)에게 보호를 의탁한다. 인노첸시오10세는 이들의 재산을 몰수하고 마침 이와같은 행태에 교황의 허락없이 교황령을 6개월이상 떠난 추기경들에 대한 관리를 위해 성직위와 콘클라베 참여 자격을 박탈한다는 칙령을 반포함으로서 프랑스 측에는 반발하여 프랑스 내에선 칙령이 효력이 없다는 주장을 하면서 맞서게 된다. 

인노첸시오10세는 동시에 즉위당시 잉글랜드-아일랜드내전(1642~1649)으로 정신없던 때였는데 마침 잉글랜드 왕 찰스1세(Charles I, 1600~1649)의 왕비인 프랑스 공주 앙리에트 마리(Henriette Marie, 1609~1669)가 내전으로 인하여 프랑스로 망명해오는데, 프랑스와 이미 대립하고 있던 교황으로서는 아일랜드의 독립을 강력히 지지하며 프랑스 측에 부담을 가하게 된다. 그러나 이후 잉글랜드 왕 찰스1세를 처형에 이르게 하는 올리버 크롬웰(Oliver Cromwell, 1599~1658)에 의해 아일랜드가 잉글랜드에 점령당하면서 사실상 교황은 아무런 이득도 취하지 못한 채 종료된다. 

 

선종

1655년 즉위한지 11년이 된 해에 81세로 선종한다. 이미 1654년부터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지던 교황이였기에 모두가 교황의 선종을예감했고, 콘클라베를 준비하는등 분주한 시점이였다. 후임 교황은 알렉산데르7세(Alexander PP. VII, 1599~1667, 재위1655~1667)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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