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수, 1728~1799
출생
1728년(영조4년) 조선 한성부 미장동(현 서울시 종로구)에서 아버지 김치만(1697~1753)과 어머니 풍산 홍씨사이에서 태어남.
배경
조선 후기 정조(1752~1800, 재위1776~1800)시기 좌의정을 역임한 대신. 정조의 세손시절 스승으로서 김종수는 노론 벽파(세손 제거 당론)였지만 당론에 반하여 세손을 지켜주는 쪽의 입장을 취하고 노론 내에서도 강경파에 속하던 벽파들과 대립하고 그들을 멀리하고 청명당파에 가담하는 행보를 보여준다. 이로인해 이후 1776년 영조(1694~1776, 재위1724~1776) 승하후 정조가 즉위하고 나서 정조의 최측근의 일원으로서 노론 청명파의 영수가 되고 좌의정에까지 이른다.
집안
1728년 진사를 지낸 아버지 김치만(1697~1753)과 어머니 풍산 홍씨사이에서 태어난다. 어머니 풍산 홍씨는 홍석보(1672~1729)의 딸인데, 홍석보는 영의정 홍봉한(1713~1778)의 아버지인 홍현보(1680~1740)의 형으로 김종수의 어머니 홍씨는 홍봉한의 사촌누나가 되니까 김종수는 홍봉한에게 외조카가 되는 셈이고 홍봉한의 딸이자 사도세자의 세자빈 혜경궁 홍씨(1735~1816)와도 6촌간이였다. 게다가 이후 정조의 오른팔이라 할 수 있는 세도가 홍국영(1748~1781)과도 12촌사이였다고 한다.
가계도 | ||||
I | 홍주원(1606~1672), 선조의 부마 | |||
II | 홍만용(1631~1692) | 홍만형(1633~1670) | ||
III | 홍중기(1650~1706) | 홍중해(1658~1704) | ||
IV | 홍석보(1672~1729) | 홍현보(1680~1740) | 홍양보(?~?) | |
V | 홍상한(1701~1769) *풍산 홍씨(김종수의 어머니) |
홍봉한(1713~1778) 홍인한(1722~1776) |
홍창한(1698~?) | |
VI | 홍낙성(1718~1798) | 혜경궁 홍씨(1735~1816) | 홍낙춘(?~?) | |
VII | 정조(1752~1800, 재위1776~1800) | 홍국영(1748~1781) 원빈 홍씨(1766~1779) |
집안 자체가 노론 벽파였었는데 6촌 할아버지인 영의정 김상로(1702~1766)와 좌의정 김약로(1694~1753)가 노론 벽파의 거물급 인사들이였다. 조선 후기의 시인 정래교(1681~1759)로부터 글을배웠다.
관직
1750년(영조26년) 생원시, 진사시에 모두 합격하고 난 후 1753년 2월에 정시 초시에 합격하지만 당해 10월 부친인 김치만(1697~1753)이 사망하면서 3년상을 치르고 1756년 3년상을 치른 뒤 1758년 정9품 세자익위사 세마가 된다. 그렇게 조용히 천천히 관직이 오르다가 1766년(영조42년) 영조가 친히 낸 과차에 수석을 차지하면서 곧바로 과거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급제하고 세손궁에보직되어 세손궁 익위사세마가 되어 세손(미래의 정조)을 마주하게 된다.
세손
세자궁에 배속되어있을시기 세손(미래의 정조)를 직접 가르치기도 했고 이후 부수찬이 되었을 때도 세손을 계속 가르쳤으면 좋겠다는 영조의 뜻에 따라 세손사부를 겸직해서 세손을 가르친다. 김종수는 세손에게 군주는 스스로 문과 무의 실력을 계속 닦아 다방면에 걸쳐서 뛰어난 존재가 되어야 통치를 할 수 있다고 역설하며 동시에 군주는 만백성의 스승이자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에 강조를 거듭했다고 한다. 성리학의 근본인 나라에서 성리학은 중요하지만 성리학만이 진리라고 받아들여선 안되고 학자의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항상 경계하여 수양하라고 하였다고 한다.
더욱이 김종수는 노론 당파(노론의 당론은 세손을 제거하려했다)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러한 노론의 태도를 정면으로 비판하여 영조의 후계자인 세손을 제거하여 다른 왕족으로 교체하려는 것은 역모나 진배없다고 같은 노론에게 강력하게 비판했다. 이후로도 김종수는 다른 보직에 있으면서도 세손을 직접 가르치면서 보좌한다. 이후로 다시 세손시강원에 돌아와서 세손을 보좌하는데 최선을 다한다.
이후 세손이 1776년 정조(1752~1800, 재위1776~1800)로 즉위하면서 6촌 할아버지 김상로, 김약로등은 노론 강경파들로서 단죄되고, 김종수는 완전히 다른 당론을 취하면서 다른 노선을 걷게 되는데..
정치
김종수는 세손을 제거하려던 노론 벽파, 외척, 시파등과는 별개로 사림의 성격을 띠는 노론 청명파에 가담해서 숙부인 김치인(1716~1790)을 움직여 끌어들이는등의 노력을 했지만, 영조(1694~1776, 재위1724~1776)가 당파를 형성했다고 하여 이를 처벌하여 유배형을 내리게 하지만 세손이 1775년부터 대리청정을 시작하면서 1776년 즉위하고 특별히 김종수를 참의에 제수하면서 다시 궁으로 돌아오게 된다.
정조 즉위 후 궁으로 돌아오자마자 세손의 즉위를 반대했던 홍인한(1722~1776), 정후겸(1749~1776)등을 처벌할 것을 상소하여 이들은 숙청되고, 즉위 초기 왕권에 위협이되는 정순왕후()의 오빠들인 김귀주(1740~1786), 김관주(1743~1806)등이 일파를 형성해 정조를 계속 위협할 명분을 없애기 위해 탄핵시켜 쫓아내기도 한다. 이후 2년도 안되는 사이에 정2품 참찬, 정2품 판서로 승진하는등 승승장구하게 된다. 그러나 친한 사이였던 홍국영(1748~1781)이 동복동생 원빈 홍씨(1766~1779)가 정조의 후궁이 되면서부터 세도가의 길을 걸으며 슬슬 엇나가게 되면서 뒤돌아서게 된다.
김종수는 어찌저찌 되었던 간에 정조의 왕권을 안정시키기위해서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가까운 사이더라도 잘못을 하거나 이치에 맞지 않으면 강력하게 몰아붙이는 성격을 지녔다고 한다. 점차 쌓여 큰일이 터지기 전에 싹을 미리 잘라놓는다는 것과 같은 생각을 하여 정조가 남인을 배려하기위해 등용시킨 채제공(1720~1799)도 처단해야한다고 주장한 인물이 김종수다.
영남만인소
1792년(정조16년) 4월에 하나의 상소가 올라오는데, 상소에 무려 1만여명이 넘는 영남지역 선비들의 이름으로 하여금 올려진다. 이는 과거로 올라가서, 1728년(영조4년)에 벌어진 이인좌-정희량의 난 당시 이인좌(1695~1728)는 이미 무너졌는데 끝까지 버티던 영남지역의 정희량(?~1728)으로 인하여 이 난이 끝난 이후 영남지역에서는 출사를 하지 못하게 막았었다. 이에 영남지역 선비들은 이에 대한 항의와 사도세자(1735~1762)의 신원을 위해 상소를 올렸다고 한다.
그러나 이 상소는 승정원에서 결코 허하지 않으면서 다른 경로를 통해 전달되게 되는데, 정조가 1792년 11월 경상도 안동 도산서원을 방문하는 틈을 타서 이진동으로 하여금 대전별감에게 상소를 전달시켜 올리게 된 것이다. 이렇게 전달되면 안되었지만(당시 왕에게 상소를 전달할 수 있는 건 5품급이하의 관료들이였는데 이진동은 그 품계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전례가 없었던 행위라 논란이 될만 하였으나 정조가 이 상소를 읽고 감격하여 이들을 설득시켜 고향으로 보내게 되면서 사건이 마무리된다.
그러나 김종수는 스승의 목소리를 내어 개인적인 감정은 개인적인 감정으로만 생각하시고 국정에는 반영하지 말고 이성적으로 사고하라는 것을 주청한다(사도세자의 문제를 개인적인 애통으로 국한시켜야).
이후
1793년(정조17년) 정1품 좌의정에 오르게 되는데, 동시에 남인 채제공(1720~1799)도 정1품 영의정에 임명된다. 그러나 채제공이 영조가 당시 세손(정조)에게 남긴 금등(친필문서)를 공개하게 되면서 영조가 사도세자를 처분한 일에 대한 후회에 대한 것이라 조정이 발칵 뒤집혀지는데 이 금등으로 하여금 개인적인 감정을 국정에 반영하지 말라는 김종수의 요청에 정조는 사도세자에 대한 처분을 번복하지는 않는다. 1793년 정조는 좌의정 김종수에 대한 사직을 윤허하고, 이후에 정조의 탕평에 어긋나는 대립을 주장했다는 삼사(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의 탄핵을 받아 1794년(정조18년)유배형을 받게 되어 유배를 떠나는데 그소식을 들은 선비들이 가르침을 얻고자 김종수의 유배지로 찾아가 가르침을 요청하니 그렇게 김종수는 후학을 양성하는데 전념하게 된다만 1년뒤 해배(유배종료)를 명 받고 복귀한다.
1799년(정조23년) 만71세로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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