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급 귀족 & 관리/조선

174,176,180대 영의정 홍봉한

Mintaka5 2025. 3. 3. 19:10
반응형

영의정 홍봉한, 1713~1778

  재임기간 재임기간 군주
174대 영의정 1761. 10. 24 ~ 1762. 06. 23  영조37년 ~ 영조38년
176대 영의정 1763. 07. 06 ~ 1766. 10. 15 영조39년 ~ 영조42년
180대 영의정 1768. 12. 11 ~ 1770. 02. 05 영조44년 ~ 영조46년

홍봉한, 출처-위키피디아

출생

1713년 조선 한양에서 아버지 홍현보(1680~1740)와 어머니 풍천 임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사도세자(1735~1762)의 부인인 세자빈 홍씨(혜경궁 홍씨, 1735~1816)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장인인 인물이자 영의정을 역임한 인물이며 조선14대 선조(1552~1608, 재위1567~1608)의 5대손(선조의 딸 정명공주의 4세손)이다. 1735년(영조11년) 생원시, 1736년(영조12년)진사시에 합격하고 이후 음서로 관직에 오르게 된다. 관직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1743년(영조19년)딸 홍씨(미래의 혜경궁 홍씨)가 사도세자의 세자빈으로 간택되고 1744년(영조20년)사도세자와 가례를 올리게 되면서 1745년(영조21년) 종2품으로 특진하게 되면서 양사 대간들의 비판이 쏟아지지만 영조(1694~1776, 재위1724~1776)가 이를 잘 무마하여 유지하고 1750년대에 들어서 정2품 판서직들을 역임, 1760년대에 들어서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등을 역임하게 된다. 

그러나 사위 사도세자가 1762년(영조38년)임오화변으로 뒤주에서 아사하고, 이후엔 3차례의 영의정을 지내면서 여러 개혁들을 주도하고 국정을 대변하지만 1771년(영조47년)탄핵을 받고 사직하고 이복동생 홍인한(1722~1776)과 정후겸(1749~1776)에 의해 더욱 권력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1776년 세손이자 외손주인 정조(1752~1800, 재위1776~1800)가 즉위하게 되면서 정조는 1775년 할아버지 영조를 대신해 대리청정을 할 때 방해를 한 홍인한과 정후겸등을 숙청하기에 이르고, 끝까지 홍봉한 자신을 괴롭히던 김귀주(1740~1786)를 외손자 정조가 오히려 위로하여 김귀주를 유배보낸다. 홍봉한은 1778년(정조2년) 사망한다.

 

 

초년

선조의 딸인 정명공주(1603~1685)의 5대손이고 혜경궁 홍씨(1735~1816)의 아버지. 이복동생으로 좌의정을 역임한 홍인한(1722~1776)이 있다. 할아버지 홍중기(1650~1706)는 서인의 영수였던 학자 송시열(1607~1689)의 문하생으로서 학문을 쌓았던 인물이였고 아버지 홍현보(1680~1740)는 정2품 예조판서에 이르는 인물이였다. 홍봉한 역시 1735년(영조11년)생원시, 1736년(영조12년)진사시에 합격하지만 성균관의 식점이 적다해 5년간 과거응시 금지를 당하는데 그 기간사이에 1740년(영조16년)아버지 홍현보가 사망하면서 다시 3년상까지 치르면서 총8년간 과거를 아예 응시하지 못한채 1742년이된다. 홍봉한의 둘째 딸인 홍씨는 1743년(영조19년) 사도세자(1735~1762)의 세자빈으로 간택되면서 인생이 확 바뀌게 되는데, 1744년(영조20년)사도세자와 홍씨간의 가례가 이뤄지면서 홍봉한 역시 이를 기념하는 정시문과 을과에 특별급제해서 사관이 되는데, 불과 1년후 1745년(영조21년) 종2품으로 특진이 이뤄지면서 파격적인 품계상승에 양사대간들의 비판이 줄지어 나오게 된다. 그러나 사돈인 영조(1694~1776, 재위1724~1776)가 이를 무마시켜 넘어가긴 한다. 

 

1760년대

I. 영의정

1761년(영조37년), 사도세자가 평양에 원유(놀러)를 갔다가 평양의 군대를 대동해 도성으로 와서 영조를 몰아내고 왕이되고자 한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이는 사실이 아니였지만 영조에게 있어서 정치적 부담을 느끼는 큰 사건이였기에 부담이 될 수 밖에 없었는데, 당시 영의정 이천보(1698~1761)와 좌의정 이후(1694~1761), 우의정 민백상(1711~1761)이 이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결을 선택하면서 사도세자를 지키고자 했다. 이에 삼정승(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이 한꺼번에 공백이 생겨버리면서 홍봉한은 우의정에 발탁되고, 곧바로 좌의정, 판돈녕부사를 거쳐 영의정에 바로 이른다. 1761년 한해동안 의정부3정승을 거친 것이다. 

 

II. 사도세자와 임오화변

사도세자는 이미 1750년즈음에 들어 아버지 영조를 대신하여 대리청정을 수행하고 있었는데, 정신질환 증세가 점점 퍼지고 있을 무렵 홍봉한 자신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자신의 병세를 걱정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함을 표시하기도 했다. 점점 병세가 심해지면서 영조와의 갈등이 깊어지는데 이후 노론, 소론, 왕후, 옹주들도 세자에 대한 공격을 계속 이어나간다. 특히 김귀주(1740~1786), 김상로(1702~1766), 김한구(1723~1769), 홍계희(1703~1771)등이 수시로 탄핵하고 거기다가 반대계열이였던 소론측 화완옹주(1738~1808), 노론측 정순왕후(1745~1805)등도 세자를 무고했다고 한다. 1760년대에 들어서 궁에서 사도세자의 비행이 도를 넘어 살인, 강간등을 행하며 도저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버리는데, 결국 1762년(영조38년) 윤급(1697~1770)의 종이였던 나경언(?~1762)이 10조항으로 된 세자의 비행을 열거하여 영조가 결국 뒤집어지는데, 이전부터 계속해서 사도세자의 비행을 봐오던 모친 영빈 이씨(1696~1764)역시 사도세자를 처벌하고 세손(미래의 정조)를 보호하라고 고변하기에 이른다. 결국 사도세자는 뒤주에 갇혀 8일만에 아사한다. 홍봉한은 사도세자의 장인으로서 보호를 하고자 했겠지만 영조부터 거의 모든 중신들이 사도세자의 비행을 고변하는 입장에서 자신이 반대를 한다면 홍봉한 본인의 가족뿐만아니라 장차 세손까지 피해를 입을 것을 염려하여 어쩔 수 없이 막을 수 없었다는게 학자들의 생각이다. 

 

이후

사도세자 사후 세손(정조)의 외조부로서 영조의 든든한 총애를 받고 세손을 보호하는 역할을 맡아 영조의 탕평책을 옹호하는 선두주자가 되면서 여러 개혁적 업무들을 보좌하는 역할까지 하게 된다. 1771년(영조47년)영중추부사 재직 당시 청주의 시골 유생인 한유(?~?)의 탄핵을 받고 사직하고, 사도세자의 서자들인 은언군(1754~1801), 은신군(1755~1771)을 후원하는 것이 김귀주, 정후겸등의 고변으로 세손대신 다른 왕족을 택하여 반하겠다는 의심을 영조가 품게되지만 이후 은언군과 은신군이 유배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된다. 1776년 세손 정조(1752~1800, 재위1776~1800)가 즉위한 뒤 사도세자 죽음에 대한 공격을 수차례 받게 되지만 정조는 외조부를 처벌할 마음이 없었고 오히려 홍봉한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홍봉한의 이복동생 홍인한(1722~1776)과 정후겸(1749~1776)등을 세손시절 대리청정을 마음먹고 반대했던 것에 대한 것으로 숙청하기에 이르고 홍봉한을 감쌌고 홍봉한은 1778년(정조2년) 65세의 나이로 사망하게 된다. 

반응형

'고위급 귀족 & 관리 > 조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좌의정 김종수  (0) 2025.03.06
208대 영의정 채제공  (0) 2025.03.05
혜경궁 홍씨(헌경왕후)  (0) 2025.03.02
밀풍군  (0) 2025.03.01
홍국영  (0) 2025.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