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급 귀족 & 관리/조선

혜경궁 홍씨(헌경왕후)

Mintaka5 2025. 3. 2.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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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경궁 홍씨, 헌경왕후, 1735~1816

 

 

 

출생

1735년 조선 한성부 반송방에서 아버지 영의정 홍봉한(1713~1778)과 어머니 한산 이씨 사이에서 태어남. 사도세자 이선(추존 장조, 1735~1762)의 세자빈이자 정조(1752~1800, 재위1776~1800)의 모후.

 

배경

정조의 어머니이자 사도세자의 세자빈으로서 생전 사도세자가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사망했기에 왕비가 되진 못한다. 시아버지 영조(1694~1776, 재위1724~1776)승하 후 아들 정조가 왕위에 오르고 난 뒤 혜경궁이라는 궁호가 내려져서 익숙하게 불려온다. 1743년(영조19년) 사도세자의 세자빈으로 간택되고, 1744년(영조20년) 사도세자와 가례를 올리고 세자빈에 책봉된다. 1750년 의소세손 이정(1750~1752)과 1752년 이산(미래의 정조)이 태어나지만 의소세손이 요절해버린다.

이후 1762년(영조38년)시아버지 영조와 남편 사도세자간의 갈등이 극심해져 결국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는 임오화변(1762)이 터지고 오로지 아들 산(미래의 정조)만을 바라보고 시아버지 영조의 눈에 나지 않게끔 세손(정조)을 가까이 지내게끔 하고, 이후 1775년(영조51년) 영조는 고령(당시 만81세)으로 세손에게 대리청정을 명령하고 이듬해 1776년 시아버지 영조가 승하하자 세손이 정조로 즉위하게 되고 자신은 혜경궁이라는 궁호를 받게 된다.  

 

 

집안

남편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는 13촌 숙질이였는데 다음과 같은 결과에서부터 나타나게 된다. 

  친가 외가
I 선조(1552~1608, 재위1567~1608)
II 정원대원군(추존 원종, 1580~1620) 정명공주(1603~1685)
III 인조(1595~1649, 재위1623~1649)
IV 효종(1619~1659, 재위1649~1659) 홍만용(1631~1692)
V 현종(1641~1674, 재위1659~1674) 홍중기(1650~1706)
VI 숙종(1661~1720, 재위1674~1720) 홍현보(1680~1740)
VII 영조(1694~1776, 재위1724~1776) 홍봉한(1713~1778)
VIII 사도세자 이선(1735~1762) 혜경궁 홍씨(1735~1816)

 

 

간택과 혼인

1743년(영조19년) 사도세자 이선(1735~1762)의 세자빈으로 간택되는데, 혜경궁의 할아버지 홍현보(1680~1740)는 정2품 예조판서를 역임한 중신이였는데도 불구하고 집안이 가난하여 혜경궁이 사도세자와 가례를 올릴 때 충분한 혼수품이 없어서 외현조모인 정명공주(1603~1685)가 쓰던 예물들을 보고 사람들이 의아해했다고 한다. 이듬해 1744년(영조20년) 사도세자와 가례를 올리고 세자빈에 비로소 책봉되기에 이른다. 

사도세자와의 사이에서 2남2녀가 있다. 장남 의소세손(1750~1752)은 영조(1694~1776, 재위1724~1776)의 첫 손자로서 기대가 남달랐지만 만2세에 요절해버리고 그해 차남 이산(미래의 정조, 1752~1800, 재위1776~1800)이 태어난다. 

 

나경언 사건과 임오화변

1762년(영조38년) 5월, 정2품 형조판서 윤급(1697~1770)의 종이였던 나경언(?~1762)이 형조에 사도세자의 비행을 고변하는 사건이 터진다. 이는 사도세자의 장인이자 혜경궁 홍씨의 아버지인 홍봉한(1713~1778)이 3정승(우의정, 좌의정, 영의정)을 6개월만에 모두 역임하고 급속도로 영의정으로 승진했다는것과 홍봉한이 노론으로서 노론 내 인사들이 인사에 대한 불만을가지고 이를 따지기 위해 덩달아 사위인 사도세자까지 폐위시키기 위해 지른 고변으로 윤급, 김한구(김귀주의 아버지, 1723~1769), 김상로(1702~1766)등이 윤급의 종인 나경언을 통해 고변케끔 한 것이다. 

이에 영조는 직접 심문하는과정에서 사도세자가 억울하여 자신을 고변한 나경언과 대질심문할 수 있게끔 영조에게 요구하지만 영조는 이를 거부하고, 고변내용이 계속 확대되어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영조는 사도세자에게 자결을 명하는데, 이를 거부한 사도세자에게 뒤주에 가둬버린다. 그렇게 8일만에 아사해버리자 영조는 '사도'라는 시호를 내림과 동시에 세자빈 홍씨에게는 '혜빈'의 시호를 내린다. 

이 이후 세자빈 홍씨는 어린 세손을 케어하고 보호하는데 모든 총력을 쏟게 된다. 1775년(영조51년) 영조가 만81세의 고령으로 세손 이산(미래의 정조)에게 대리청정을 명한다. 

 

정조 즉위 이후

1776년 영조가 승하하고 세손 이산이 정조(1752~1800, 재위1776~1800)가 즉위하는데, 작은 숙부 홍인한(1722~1776)이 세손이 대리청정할때부터 극히 반대를 피력하면서 찍혔었는데, 정조는 즉위 후 반대파 홍인한과 정후겸(1749~1776)등을 숙청하고 아버지 사도세자에게 '장헌'시호를 올리고 어머니 '혜빈'홍씨에게 '혜경궁'으로 궁호를 높인다. 

혜경궁 홍씨는 1795년(정조19년)그녀가 수십년간 궁생활을 하며 직접 쓴 회고록인 [한중록]을저술하게 된다. 이는 [조선왕조실록]에 서술되지 않은 혜경궁 홍씨의 경험들과 아버지 홍봉한이 공격당한일, 노론 벽파의 만행등이 쓰여있다. 

그러나 1800년 아들인 정조가 승하하고 혜경궁 홍씨의 손자이자 아들 정조의 아들인 순조(1790~1834, 재위1800~1834)가 즉위하게 된다. 1805년(순조5년) 왕실 최고 어른이였던 대왕대비 정순왕후 김씨(1745~1805)가 사망하면서 혜경궁은 명실상부 왕실 최고 어른이 되지만(정순왕후 김씨가 혜경궁보다 10살이 어렸지만, 영조의 후궁이라는 점에서 서열이 위), 이내 병을 앓고 오랫동안 투병을 해오다가 1816년(순조16년) 만81세로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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