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인갱화, 1806
배경
조선 22대 국왕 정조(1752~1800, 재위1776~1800)때부터 정조의 세력에 맞서오던 노론 벽파가 1806년(순조6년) 노론 시파에 의해 숙청당하는 일이 벌어진다. 1800년 정조가 승하하고 재위에 오른 순조(1790~1834, 재위1800~1834)는 즉위당시 10세에 불과하여 왕실최고어른이던 외증조모인 정순왕후 김씨(1745~1805)가 수렴청정을 하게 되면서 정조의 탕평책을 따르던 노론 시파는 힘을 잃게 된다. 정순왕후는 노론 벽파와 오랜기간 동안 손잡아 왔는데 이들은 노론 시파에 대해 국가를 전복하려는 모반 세력이라며 모두 숙청하고 노론 벽파가 정순왕후의 기세를 등입어 권세를 이어오다가, 1805년 정순왕후가 사망하면서 노론 벽파는 정치적으로 몰락의 길을 걷게되면서 시파의 공격을 받게 된다.
쌓인 원한
조선 후기에 들어오면서 영조(1694~1776, 재위1724~1776)대부터 이어져오던 탕평책에 지속적인 불만이 쌓이다가 영조의 손자인 정조(1752~1800, 재위1776~1800)가 즉위하여 할아버지가 해오던 탕평책을 그대로 이어받아 더욱 그 뜻을 강화하게 되면서 탕평책에 반대하는 무리들이 생겨난다. 사도세자(추존 장조, 1735~1762)의 세자빈인 혜경궁 홍씨(추존 헌경왕후, 1735~1816)의 부친인 홍봉한(1713~1778)은 1755년 을해옥사(나주 괘서 사건, 윤지의 난)으로 소론측의 반란을 일으켜 노론일파를 제거하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소론이 숙청당하게 되면서 아우 홍인한(1722~1776), 정후겸(1749~1776), 김귀주(1740~1786)등과 함께 척신이 되어 사실상 노론의 독주가 이어진다.
그렇게 1776년 영조가 승하하고 정조가 즉위한 이후 준론 탕평책을 씀에따라서 청명당 세력이 정계에 들어오면서 노론사이에서 분열이 일어난다. 정조 즉위 초반기부터 이어져오던 분열은 정확히 어느해부터 대립이 본격화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많지만 보통 1780년대 후반에 들어오면서 대립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들 한다.
노론은 그렇게 시파와 벽파로 나뉘어지게 되는데, 정조의 탕평책에 옹호하는 세력은 시파(시류에 편승하는 무리), 이에 반발하는 세력을 벽파(궁벽하게 의리를 지킨다)라 하였다.
한낱 꿈..같은 5년
1800년 정조 승하 후 순조(1790~1834, 재위1800~1834)가 즉위하지만 10세의 어린나이로 노론 벽파의 세를 업고있던 정순왕후 김씨(1745~1805)가 수렴청정을 하게 되면서 노론 벽파가 정권을 장악하게 되면서 시파를 국가를 전복하려는 세력으로 규정하여 온갖 죄목을 씌워 숙청하기에 이른다. 정순왕후와 노론 벽파는 당시 사학으로 규정되어 있던 천주학 세력에 대한 박해를 단행하며 1801년(순조1년) 신유박해를 단행하면서 정조때 등용되었던 시파, 남인세력들을 대거 숙청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정조대에 시행되었던 개혁정책들이 폐지되기에 이르고, 노론 벽파의 독주가 이어지게 된다. 이후 독주가 이어져가다가 1805년(순조5년) 정순왕후 김씨가 사망하면서 노론 벽파 역시 순식간에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병인갱화
노론 시파이자 정2품 이조판서 김달순(1760~1806)은 1805년 정순왕후 김씨 사후 순조의 장인이였던 친척 김조순(1765~1832)이 집권하면서 세도정치의 기반이 확립됨에 따라 자신도 정1품 우의정에 승차하지만, 오히려 반대파였던 노론 벽파편에 서서 시파를 공격하지만 탄핵을 받는다. 사도세자를 추숭하려는세력을 비판하며 스스로가 걸어왔던 길을 반대하면서까지 무리수를 두는데, 이에 조득영(1762~ 1824)이 김달순을 저격하는 상소를 올려 이에 마침 친정을 시작하여 안정을 추구하려 하였던 순조(1790~1834, 재위1800~1834)가 이 상소에 대해 수위를 높여 벽파 세력에 대한 숙청의 명분을 얻게 되어버린다.
그렇게 김달순은 유배보내지고 수개월간 노론 벽파 신하들에 대한 숙청이 단행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였는데, 정3품 상계 도승지 김이영(1755~1845)이 [8자 흉언 상소]라는 어마무시한 상소를 올리기에 이르는데, 김한록(1722~1790)이 흉언한 죄인(여기서 죄인은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아들은 왕이 될 수 없다라는 어마무시한 소에 순조는 대신들과 상의함에 따라 김한록이 김이영의 집안 사람에게 배척당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삼사대간, 의정부 정승들 할 것 없이 김한록을 노륙하고 김일주(?~?)를 국문하라고 하고 김한록의 5촌조카 김귀주(1740~1786)가 흉언의 근원이라고 아뢰면서 순조는 이에 연관된 자들을 추탈하라는 명을 내리기에 이른다.
그렇게 노론 벽파는 1806년 완전히 소멸되고 시파의 집권시대가 열림과 동시에 시파의 거두 안동 김씨의세도정치시대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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