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채보상운동, 1907
배경
일제가 1905년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뺏은 이래로 국권수탈이 가속화되면서 이후 대한제국을 경제적으로 예속시키고자 일제가 대한제국에 반강제적으로 제공했던 차관1300만원(현재가치 약3천억원)을 대한제국 국민들이 스스로 갚고자 벌인 운동으로, 1907년 경상북도 대구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지역에서부터 김광제(1866~1920), 서상돈(1850~1913), 윤필오(1860~1924), 양기탁(1871~1938)등이 주도가되어 시작되어 전국으로 퍼져나간다. 각계 각층에서 참여하여 큰 효과를 이루는데는 성공하지만, 일제가 이러한 움직임을 국권회복이라고 규정하고 방해해버리는 바람에 결국 실패하고 만다.
을사늑약시점
1905년(광무8년)11월 17일, 을사늑약이 체결되면서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일제로 넘어간다. 매국노5인인 을사오적(이완용, 이근택, 이지용, 박제순, 권중현)이 을사늑약 체결에 찬성한 것.
그렇게 일제는 을사늑약 체결 직후 재정 고문으로 메가타 다네타로(1853~1926)가 대한제국으로 파견된다. 탁지부 재정 고문으로 임명되면서 대한제국의 재정에 관여하기 시작하는데 메가타가 임명 후 처음으로 주도한 사업인 화폐정리사업이 시작된다.
화페정리사업은 전환국(현 한국은행 역할)을 폐지하고 일본제일은행 한양지점에 조폐권한을 부여하면서 조선 '원'에서 조선'엔'으로 화폐를 교체하고자 했다. 사실상 대한제국의 은행들이 일본제일은행에 종속되면서 대한제국의 경제권이 슬슬 일제로 넘어가기 시작한다.
그런 와중에 일제는 반강제적으로 차관 1300만원을 대한제국에게 제공함으로서 경제적 예속을 시도하게 된다.
이 폭탄을 어떻게..?
뭐 나라에 빚이 아예없는 상황은 존재하지 않겠지만, 이번 차관의 경우에는 일제가 을사늑약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내정간섭을 시작함에 따라 경제권까지 침탈하기위해 의도적으로 대한제국이 일제에 빚을 지게끔 강요하게된 상황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물론 친일파들과 일제관료들의 주장은 한결같이 고용시정, 내수개선, 간접기반 설치, 자금 회전등을 개선한다는 명목으로 했다고 하지만 차곡차곡 쌓인 빚은 1300만원에 달하면서 대한제국의 2년치 예산에 맞먹게 된다. 1907년 시점이였고 앞으로도 빚이 계속 늘을 상황이였던 것이 더욱더 위험했다.
돈갚고 국권회복하자
1907년 2월 16일, 경상북도 대구 중심부에서 애국지사들이 국채보상운동을 제창한다. 당시 대구 대동광문회 부사장 서상돈(1850~1913)이 처음으로 국채보상문제를 제의하고 김광제()와 함께 이에 대한 취지문을 작성해 대한제국 전역에 뿌리면서 동참을 호소한다. 그렇게 서상돈이 부사장으로 있던 대동광문회에서 김광제, 서상돈으로부터 시작하여 대구의 유지들과 국민들이 돈을 내게되면서 국채보상운동이 시작된다.
이렇게 자발적으로 국민들이 참석하여 전국적으로 확대됨에 따라 대한제국 관료들까지도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하게 되는데 대표적 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본관 | 생몰년도 | 비고 | |
윤웅렬 | 해평 | 1840 ~ 1911 | 국채보상운동 초대회장, 1910년 일제 남작 작위, 친일파 |
이상재 | 한산 | 1850 ~ 1927 | 조선긷독교청년회연합회 회장, YMCA회장, 신간회 회장 |
유길준 | 기계 | 1856 ~ 1914 | 을미사변 가담, 개화파, 흥사단조직 |
양기탁 | 남원 | 1871 ~ 1938 | 개화파,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령, 독립운동가 |
마치 1997년 IMF사태로 인해 전 국민들이 동참한 금모으기 운동의 원조격 운동과 같이 남성들은 담배를 끊고 한푼이라도 더 보탤려고 했고, 여성들은 비녀, 가락지등을 내면서까지 국채를 갚으려고 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비슷하다.
일제의 방해
그러나 일제는 이러한 대한제국 국민들의 행위가 국권회복을 시도하는 것으로 받아들여 이를 방해하기위해 친일적 성향을 띠는 단체인 일진회를 조종하여 국채보상운동의 주도적 역할을 하는 양기탁과 관계자들을 구속하여 방해하는 행위를 거듭한다.
특히 조선통감부에서는 영국출신 어니스트 토마스 베델(Ernest Thomas Bethell, 1872~1909)기자와 양기탁이 국채보상모금으로 모인 돈을 사적으로 빼돌려 착복했다는 소문을 퍼뜨리고 국채보상운동 회장인 윤웅렬에게 위 두인물이 착복을 시도했으므로 반환하라는 청구서를 제출하게끔하고 윤웅렬은 이에 청구서를 제출하게되면서 소문이 마치 사실처럼 확산되는 계기가 되어버린다.
이들간의 일련의 교착으로 국채보상운동이 상당히 약화되면서 국채보상운동은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만다. 일제가 원하는식으로 전개가 되어버린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