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제, 1339~1408
출생
1339년 아버지 민변(?~1377)과 어머니 양천 허씨 사이에서 태어남.
배경
고려의 유력한 집안이였던 여흥 민씨의 수장격 인물. 8명의 자식(4남 4녀)모두 역사속에 나오는 인물들과 혼인하였고 특히 3녀는 미래 태종의 왕비인 원경왕후(1365~1420)로서 민제는 조선3대 태종의 장인이 된다.
휘 | 생몰년도 | 비고 | |
장녀 | ? | 1355 ~ ? | 평원군 조박(영의정 조준의 7촌조카, 1356~1408)과 혼인, 슬하1남1녀 |
차녀 | ? | 1357 ~ ? | 완산부원군 이천우(이성계의 조카, 1354~1417)와 혼인, 슬하3남 |
3녀 | 원경왕후 민씨 | 1365 ~ 1420 | 조선3대 태종의 왕비로 슬하4남4녀, 조선4대 세종의 어머니 |
장남 | 민무구 | 1369 ~ 1410 | 찬성사 권현의 딸과 혼인, 슬하1남 |
차남 | 민무질 | 1372 ~ 1410 | 간관 한상환의 딸과 혼인, 슬하3남3녀 |
3남 | 민무휼 | 1373 ~ 1416 | 성산부원군 이직(1362~1431)의 딸과 혼인, 슬하3녀, 영의정 심온과 사돈관계(3녀가 심온의 장남 심준과 혼인) |
4남 | 민무회 | 1375 ~ 1416 | 지공조사 김익달의 딸과 혼인, 슬하1남1녀 |
4녀 | ? | ? ~ ? | 우의정 노한(1376~1443)과 혼인, 노사신(1427~1498)의 외할머니, 아들 노물재(?~1446)이 영의정 심온의 3녀와 혼인 : 심온과 사돈관계 |
관리
1357년(공민왕6년) 문과에 급제하여 관리가 된다. 급제이후 춘추관 검열, 지제교, 성균관 사예, 부령등을 역임하고, 1392년 조선이 건국된 이후에도 관직은 계속 이어진다.
I. 고려 관직
민제는 어린시절, 청년기시절부터 온화한 성품을 가지고 예를 잘 안다고 주변인들로부터 잘 알려져와있어서 그런지 관직에 진출한 이후에는 거의 예조에 소속되고 겸직까지 하는 움직임을 보인다. 예조는 주로 의례와 관련된 부서로서 민제의 타고난 성품에 따라 권력욕도 별로없어서 그런지 크게 관직의 변동사항은 없다고 보면 된다.
직급 | |
1357년 | 문과 급제 |
정9품 춘추관 검열 | |
1362년 | 정8품 예문춘추관 학사 |
1363년 | 정7품 통례문지후 |
1366년 | 정6품 전리좌랑 |
1371년 | 종5품 예부직랑 |
1372년 | 정5품 전리정랑, 6품급 지제교 |
1373년 | 종4품 성균관 사예 |
1375년 | 정4품 전의총랑, 종3품 성균관 사성 |
1382년 | 정3품 판전교시사 |
1387년 | 정3품 지춘주사 |
1388년 | 종2품 예문관 제학 |
1389년 | 종2품 개성윤 상의밀직사사 겸 정3품 예의판서 |
1390년 | 정1품 도평의사사 |
1392년 | 정2품 한양 판윤 |
II. 조선 관직
직급 | |
1392년 | 정2품 예문춘추관 태학사 |
1394년 | 종2품 정당문학, 종2품 보문각 대제학 |
1398년 | 정2품 수문전 태학사 |
1399년 | 종1품 판삼사사 겸 종3품 지공거 |
1400년 | 정1품 문하우정승(우의정) |
정1품 문하좌정승(좌의정) |
이방원
1382년(우왕8년)에 민제는 셋째딸을 이성계(1335~1408, 재위1392~1398)의 5남 이방원(미래의 태종)에게 시집보낸다. 이성계는 당시 고려 최강의 무장으로서 한번도 패배한 적이 없는 장수로서 남쪽의 왜구들 뿐만아니라 서북쪽의 홍건적, 동북쪽의 여진족까지 물리치면서 고려 내외로 영웅대접을 받고있었는데, 전공이 올라감에 따라 정치적인 입지도 올라감에 따라 고려의 전통 세족이였던 민제의 여흥 민씨와 사돈관계를 맺을 수준까지 성장한다.
어떤 차원에서는 이 혼인이 정치적인 동맹 성향을 띠는데, 민제가 고려 말기 새로운 변화세력 이성계의 세력을 지지해 신흥 세력인 이성계 세력과 연대를 해 입지를 공고히 하려는 전략적 혼인으로도 분석된다.
민제는 이성계와 사돈관계를 맺으면서 이방원의 장인이자 정치적, 학문적 스승이 됨으로서 자신의 친구인 하륜(1348~1416)을 이방원에게 소개시켜주면서 친교관계를 맺게끔도 한다. 민제는 사위를 진심으로 잘 되게 하게끔 주변 능력있는 인물들을 소개시켜주면서 성장을 도모하게 된다.
한참 뒤 1차 왕자의 난 때 하륜은 이방원에게 안산 군수 이숙번(1373~1440)또한 이방원에게 소개시켜 사실상 이방원의 호위 군사로서의 임무를 맡을 수 있게끔 이방원을 지키는 인재로서 추천함과 동시에 정도전(1342~1398)이 사병혁파를 시행하고자 할 때 이숙번의 군사만큼은 그 시선에서 벗어나서 이방원이 왕자의 난을 성공시킬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주게 된다.
왕자의 난
민제는 1398년 1차 왕자의 난, 1400년에 2차 왕자의 난 때 직접적으로 참여는 하지 않고 이방원의 배경으로서 간접적인 지원을 했다.
1392년 조선이 건국되고 태조(이성계)는 첫째 부인 신의왕후 한씨(1337~1391)의 소생 아들이 아닌 둘째 부인 신덕왕후 강씨(1356~1396)소생의 아들 이방석(1382~1398)을 세자로 책봉하게 된다. 이에 첫째 부인 소생 아들들이 불만이 컸는데, 특히 5남 이방원(미래의 태종)이 불만이 컸는데 이는 조선이 건국되고 난 후 태조의 최측근 공신 정도전(1342~1398)이 야망이 넘치고 학문까지 깊고 사실상 조선이 건국되게끔 최선을 다했던 태조의 5남 이방원의 권력이 커지는 것을 견제하고자 이방석을 세자로 책봉하게 된 것이다. 이에 정안군 이방원은 부왕 태조의 결정에 상당히 불만이 컸다. 이후 이방원은 조용히 작전을 짜게되는데..
1398년(태조6년) 정안군 이방원이 난을 일으켜 정도전, 남은, 심효생등의 왕세자 이방석의 모든 과정을 책임지고있던 신료들이 모여있던 남은의 집을 습격하고 이들을 모두 살해하고, 둘째 형 영안군 이방과(정종, 1357~1419, 재위1398~14000를 왕위에 올리고 자기는 세자가 된다.
1400년(정종2년), 정안대군 이방원의 형이자 태조의 4남 회안대군 이방간(1364~1421)과 박포(?~1400)이 1차왕자의 난때 논공행상과 회안대군의 야심이 2차왕자의 난으로 발전하게 되면서 이방원에 대항하지만 순식간 끝난다.
민무구의 옥
민제에게는 4명의 아들(무구, 무질, 무휼, 무회)가 있었는데 이방원을 도와 1차, 2차 왕자의 난 에 혁혁한 공을 세워 공신에 책봉되고, 정안대군 이방원(1367~1422, 재위1400~1418)이 조선3대 태종으로 즉위하게 되면서 태종의 왕비 원경왕후 민씨(1365~1420)가 중전이 되면서 이들은 외척세력이 된다.
태종이 즉위하게 되면서 이들은 날개를 달게 되지만, 1407년(태종7년)부터 이들의 만행을 그냥 두지 않고 대신들이 탄핵을 한다. 당시 영의정인 의안대군 이화(1348~1408)부터 이들을 탄핵하여 처벌을 주청하여 태종역시 이들을 그냥두지 않는다. 첫째아들 민무구와 둘째아들 민무질이 탄핵이 되면서 유배형을 선고받게 되자 민제는 충격을 받아 몸져누웠다가 1408년 세상을 떠난다.
우선적으로 첫째아들 민무구, 둘째아들 민무질의 죄를 나열하여 태종이 교서를 내려 왕실에 해를 끼칠 여지에 왕권에 도전을 한다는 혐의들을 씌워 1410년 민무구, 민무질이 사사되고, 셋째 민무휼, 넷째 민무회가 두 형들이 억울하게 사사당했다고 주장하고 계속해서 태종에게 거슬리는 말을 했다가 다시 탄핵되어 1416년 무휼, 무회가 자결을 명 받아 사망하게 된다.
죽음
앞선글에도 언급했듯이, 첫째아들 민무구, 민무질이 탄핵당해 유배당할 당시 민제의 나이는 69세의 고령이였는데, 두 아들의 일에 적지않은 충격을 받아 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