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쓰라-태프트 밀약(1905)
1905년에 미국의 필리핀에 대한 지배권, 일제의 대한제국 지배권을 상호 승인하는 회담내용을 담은 기록. 1924년 세상에 알려지기까지 극비리에 진행된 밀약. 일제 수상 가쓰라 다로(1848~1913)와 미합중국 전쟁부장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Wiliam Howard Taft, 1857~1930, 대통령재임1909~1913)사이에서 이루어졌다.
배경
러일전쟁(1904~1905)이 끝나갈 무렵인 1905년 7월, 일본이 우위를 차지해 사실상 승리가 확정되던 시점에 전쟁으로 막대한 재정을 쏟은 일제는 대한제국의 보호권을 열강들로부터 확실하게 인정받을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당시 미국은 일제에 호의적인 입장(러시아의 남하정책을 매우경계한 미국)으로 마침 필리핀을 식민지로 삼기위해 노력하던 시점이였고 일제는 대한제국을 식민지로 삼기위해 노력하던 시점이였기에 두 국가간 입장차이가 맞닿으면서, 미합중국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1858~1919, 대통령재임1901~1909)가 미 전쟁부장관이였던 태프트를 일제 수도 도쿄에 파견시킨다.
밀약
일제 수상 가쓰라와 미국 전쟁부장관 태프트는 도쿄에서 1905년 7월 27일 비밀리에 회동을 가지는데, 위에서 언급한 것 처럼 두 국가는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고 있었는데 미국에서는 일제가 러일전쟁에서 승리하게 되면 그 이후 필리핀까지 진출할 것이라는 미국 내부 여론을 알리게 되면서 일제또한 의식을 하고있었던 상태였다.
가쓰라는 필리핀에 어떤 침략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태프트에게 강조함과 동시에 대한제국 문제에 대해 대한제국이 러일전쟁의 원인이라고 주장하면서 전쟁이후 대한제국을 그대로 둔다면 다시 분쟁의 씨앗이 싹틀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태프트는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에게 이문제에 대한 위임은 받지 않아서, 개인적인 견해로서 외교권을 제한하고 일제가 대한제국에 대한 보호권을 갖는 차원에서 마무리를 짓자고 의견을 내비친다.
결과
이 밀약은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식민지배를, 대한제국에 대한 일제의 식민지배를 상호 양해협정에 가까웠고, 이 밀약4개월 후인 1905년 11월 17일 대한제국에 을사조약을 강요했고 미국은 이를 묵인했다. 일제는 이 밀약을 계기로 대한제국의지배를 재확인받은 셈이 되고, 조약체결 2달뒤 미국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중재로 일제 외상 고무라 주타로(1855~1911)와 러시아 제국 재무장관 세르게이 비테(1849~1915)간에 러일전쟁 강화조약인 1905년 9월 포츠머스 조약을 맺어 대한제국에 대한 지배권을 세계 열강들로부터 인정받게 된다.
아래 표는 가쓰라-태프트 조약당시 합의도출건에 대한 내용으로 1924년 미국 역사학자 타일러 데넷(Tyler Dennett, 1883~1949)에 의해 알려지게 되었다.
내용 | |
I | 필리핀은 미합중국과 같은 친일적인 국가가 통치하는 것이 일본 제국에 유리하고, 일본 제국은 필리핀에 대해 어떠한 침략 의도도 가지고 있지 않다. |
II | 극동지역의 평화 유지에 있어서 일본 제국, 미합중국, 대영제국 3국 정부의 상호 양해를 달성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며, 사실상 유일한 수단이다. |
III | 미합중국은 일본 제국이 대한제국에 대한 보호권을 확립하는 것이 러일전쟁의 논리적 귀결이고, 극동지역의 평화에 직접 공헌할 것으로 인정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