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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오르크 필리프 텔레만

Mintaka5 2024. 10. 6.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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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org Philipp Telemann, 1681~1767

텔레만, 출처-위키피디아

출생

1681년 신성로마제국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 변경백국(Brandebourg-Prusse) 마그데부르크(Magdeburg)에서 아버지 하인리히 텔레만(Heinrich Telemann, 1646~1685)과 어머니 마리아 텔레만(Maria Telemann, 1642~1711)사이에서 태어남.

 

배경

바로크 작곡가로 원래는 라이프치히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하다가 음악으로 진로를 바꿨다. 당대에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보다도 더 널리 알려졌던 음악가이고 신사적인 품성으로 수많은 음악가들에게 존경을 받은 인물.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아들 카를 필리프가 태어날때부터 텔레만이 카를 필리프의 대부가 될 정도로 가까운 사이.  86세로 사망하기까지 3천여곡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작품을 남긴다. 

텔레만의 작품명 번호를 매길때 TWV(텔레만 작품 목록, Telemann Werke Verzeichnis)를 붙인다.

 

초년

명망깊은 도시 마그데부르크에서 조상대대로 부르주아 계층민이던 텔레만 가문에서 태어남. 3남매가 있었는데 텔레만 혼자 살아남았다. 후에 법학을 전공했지만 어릴적부터 음악에 노출이 많이 되어있던 환경에서 음악적 재능까지 겸비한 청소년기에부터 눈에 띄기 시작. 

더욱이 텔레만은 레슨을 받은적이 없다..! 아버지 하인리히 텔레만이 1685년 사망하기전에 아들에게 음악가의 사회적 지위가 낮다고 생각해 음악에 대한 생각을 반대했었다. 물론 반대한다고 말을 들을 텔레만의 열정이 아니였기에 그대로 감.    

고등학교 재학시에도 수많은 악기를 독학으로 배웠다(....). 

 

연구년

1701년 20살이 되던 해 어머니의 음악에 대한 반대로 라이프치히 대학교에서 법학공부를 시작했다. 당시 라이프치히는 현대음악(당시 바로크형식)의 중심지였기에 대학생활을 하면서도 음악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연구, 작곡을 지속하는데 학교내 대학생들 중에 음악을 사랑하는 학생 40명을 모아 오케스트라를 만들고 공개연주회까지열게 된다. 대학교 소속 교회에서 음악감독으로 고용되고, 라이프치히 오페라 감독에까지 임명될 정도로 법학보다(?) 왕성하게 음악에 심취한다.

이 시기 라이프치히 대학생 시절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Georg Friedrich Handel, 1685~1759)을 만난다.   

 

아이제나흐

텔레만은 1705년 소라우(Sorau)를 거쳐 1706년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의 고향인 아이제나흐(Eisenach)로 가서 공작 요한 빌헬름(프:Jean-Guillaume de Saxe-Eisenach, 독:Johann Wilhelm von Sachsen-Eisenach, 1666~1729, 재위1698~1729)의 궁정에 바이올린 연주자 겸 성가대로 임명된다.

이때 만나는 3명의 음악가가 다음과 같다.

  생몰년도 비고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 바로크 작곡가
볼프강 카스파 프린츠
Wolfgang Caspar Printz 
1641~1717 바로크 작곡가
요한 베른하르트 피셔 폰 에를 라흐
Johann Bernhard Fischer von Erlach
1656~1723 바로크 건축가

텔레만은 1709년 자신을 궁정으로 데려온 귀족 프로므니츠 백작 에르드만 2세(Erdmann II de Promnitz, 1683~1745)의 부인의 시녀인 아멜리아 루이제 줄리아나 에블린( Amalie Luise Juliane Eberlin, 1681~1711)과 결혼하지만, 1711년 딸을 낳고 난 후 산욕열로 사망.

 

프랑크푸르트-암마인

아내를 잃고 아이제나흐 궁정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프랑크푸르트 암마인으로 지원해와서 음악감독으로 일하면서 곡 작업을 계속하게 되는데, 이때 수많은 칸타타, 오라토리오, 오케스트라, 실내악 작곡을 한다.

왜 이렇게까지 곡을 많이 쓰고 출판을했냐면..  1714년 17살연하 마리아 카타리나 텍스터(Maria Katharina Textor, 1698~1775)와 결혼하지만, 사치가 심하고 도박중독까지 있던 마리아가 스웨덴 군 장교와 바람까지 나면서 현재가치 2억상당의 빚을 텔레만에게 떠넘기고 튀어버린다.. 이 빚을갚기위해많은 작품을 만든 것으로 빚을 떠안은 상황에서도 이혼하지않고(자식이 있었기에) 꾸준하게 갚아나가지만 결국 1736년 이혼을 한다. 

 

함부르크

1721년 함부르크시로 넘어와 칸토르로 임명되어 음악감독이된다. 이때 사실상 평생직업을 비로소 가졌다고 볼 수 있는데 다른 도시에서도 자리를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지만 모두 사양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대표적으로 라이프치히에서 온 요청은 친구인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맡게 됨). 

 텔레만은 1767년 사망할 때 까지 함부르크에 머물게 되는데, 사업수완도 어느정도 있었던 텔레만으로서 자신이 작곡한 음악물을 인쇄, 출판까지 하면서 부를 끌어들였고 동시에 함부르크 오페라 악단 경영자로 취임하면서 연봉까지 같이 겸해서 받게 된다. 

물론 1736년 두번째 부인이였던 바람난 마리아 카타리나 텍스터와 이혼하게 되면서 올곶이 혼자가 되고 죽을때까지 결혼하지 않는다. 텔레만은 매주 일요일마다 칸타타를 쓰고 종교음악들을 작곡한다. 

 

사망

1767년 86세라는 지금으로서도 상당히 고령인 나이에 사망하게 되는데, 죽기 전까지 곡을 작곡하다가 사망. 텔레만이 맡았던 함부르크 궁정악장직은 자신이 대부가되어 살피던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둘째아들 카를 필리프 에마누엘 바흐(Carl Philipp Emanuel Bach, 1714~1788)에게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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