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ongjong de Goreyo, 1018~1046, 재위1034~1046
출생
1018년 고려 개경 연경원에서 아버지 현종(992~1031, 재위1009~1031)과 어머니 원성왕후 김씨(?~1028)사이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왕형. 덕종(1016~1034, 재위1031~1034)의 동복 동생이며, 문종(1019~1083, 재위1046~1083)의 이복 형.
배경
배경을 이야기함에 앞서, 고려사에 정종이 2명 있는데, 고려 3대 정종(定宗, 923~949, 재위945~949)과 고려 10대 정종(靖宗, 1018~1046, 재위1034~1046)이 그 예시다. 한글로는 정종으로 같으나 한문은 엄연히 다른 글자를 쓰는 군주이니 헷갈리지 않게끔 유의하기 바란다.
1022년 평양군으로 봉해지고, 왕자로서 받을 수 있는 작위들은 다 받고 1034년 형 덕종이 승하하게되면서 유언에 따라 즉위하게 된다.
재위
1034년 즉위하고나서 팔관회(토속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의식으로 수도 개경과 서경에서 열림)를 열어 고려바깥국가들 상인에게도 의식을 관람시킬 수 있는 규정을 만들게 되면서 고려백성 뿐만아니라 외국인들까지 같이 관람할 수 있게끔 조치한다. 고대부터 믿어오던 토속신앙을 공존하고, 기리기위해 숭불정책으로 돌아가던 고려에서도 이런 행사를 진행하면서 정종은 이때 민심안정차원에서 행사시기때 대사면령을 내리고, 이 행사로 백성들이 화합하고 나라와 왕실의 안녕을 빌게되면서 국가적인 행사로 자리잡게 된다.
재위에 오르면서부터 민심안정에 우선적인 정책을 쓰던 정종이였기에 변방지역의 백성을 보호하기위해 성을 쌓아 수비를 강화하게 하면서 군인들(제위군)에게는 변방에 보내지는 혜택으로 녹으로 받는 토지를 더 지급하게 하여(멀리가는대신 보너스데이?) 변방성(함경도, 평안도)에 이주시킨 백성들을 보호하게끔 하여 체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하기에 이른다.
거란? 또 온다고?
그리고 형 덕종이 시행했던 것 처럼 거란과의 외교는 강경하게 밀어붙여나간다만 1037년(정종3년)에 거란이 사신을 보내 외교적 압박을 가하는 도잇에 또 압록강일대를 침략해오지만 이전에 이미 한대 줘 터진 경험으로 함부러 들어오진 못하고 별 성과없이 다시 돌아가게 되지만, 이 일대가 불안해지자 정종은 강화를 요청해 다시 거란의 연호를 쓰고 하정사를 보내줄테니 그만 공격하라고 요청하면서 강화가 체결됨에따라 외교적 관계는 이전보다 회복이 된다.
그러나 이는 형식적인 강화체결이였고 양국은 다시 견제모드에 들어가게 된다.
언제쯤 완성되노? 다 되씸미다
형인 덕종(1016~1034, 재위1031~1034)때 착공된 천리장성이 비로소 정종10년인 1044년에 완공이 되면서 효과적으로 방어와 동시에 이후 북방 여진족들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천리장성 남쪽으로 가기위해 고려로 귀순하는일이 점점 잦아진다.
군대가 있어야 나라도 있다
1037년 거란과의 외교관계 회복으로 일단 안도의 한숨은 쉴 수 있었지만 정종은 이전에 수십년간 고려를 공격해왔던 거란의 모습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이후에도 거란이 안쳐들어올것이란 보장이 없었기에 국방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정종의 이러한 노력은 1040년부터 기록이 나타나는데, 무예가 뛰어나고 용맹한 자를 선발하여 훈련케끔 하고 군사교본인 김해병서(고구려 연개소문이 지은것으로 추정되는 군사 교본)을 서북로병마사가 1권씩 하사하시게끔 상소를 올려 정종이 이를 제공해 주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승하
1046년 불과 28세의 정종이 병에걸려 위독해지면서 이복동생인 왕휘(미래의 문종)를 불러 국정을 맡기고 왕위를 선위하고 승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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