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크시대 화가들/네덜란드 les Pays-Bas

피에르 폴 루벤스, 페테르 파울 루벤스

Mintaka5 2024. 4. 28.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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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erre paul rubens (1577~1640)

언어에따라 페테르 파울 루벤스로도 불리나, 영어보다 편한 프랑스어 베이스로 이름을 쓸 생각.

1577년 신성로마제국 지겐(Siegen, 독일 비트겐슈타인근방)에서 출생

바로크 스타일 화가, 플랑드르 학파 수장

루벤스 초상화

말이 필요없는 대가

이 인물은 화가로서뿐만아니라, 외교관으로서도 업적이 엄청난 인물이라 이야기하자면 스토리가 엄청나게 길어지기 때문에, 최소한으로 줄여서 핵심만 얘기해보고자 한다.

전에 올렸던 인물 안토니 반 다이크의 스승이기도 한데, 인생의 절반이상을 보내고 죽을때까지 살았던 도시 안트베르펜이랑 인연이 많은 루벤스인데

이곳에서 화가로서도, 외교관으로서도, 지역의 평화를위한 노력으로서도 엄청난 영향을 끼친 건 틀림없다.

처음 접했던 화풍스타일은 스승들의 스타일인 매너리즘 스타일인데, 아담 반 누트(Adam van Noort,1562~1641) 와 오토 반 빈( Otto van Veen, 1556~1629)밑에서 지도를 받았다. 이후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었다가, 본격적으로 1600년부터 이탈리아 여행을가게되면서 화가로서의 영감을 얻었다. 티치아노(1488~1576), 베로네제(1528~1588), 틴토레토(1518~1594)등 르네상스 거물급들의 작품을 보고나서부터. 이탈리아 만토바에서 통치자 공작 빈센조1세의 후원을 받으며 이탈리아 로마, 피렌체등 르네상스절정의 도시에서도 여행하며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1519), 라파엘로(1483~1520), 미켈란젤로(1475~1564)의 작품들을 보며 또 영감을 얻게됨.

 

대가위의 대가 카라바조..

그리고 당시 유행하던 카라바조의 스타일에도 영향을 받으며, 카라바조의 작품을 모작하기에 이르는데 그 작품이바로

La Mise au tombeau, 그리스도의 무덤, 1602-1604작, 카라바조

그리스도의 무덤이라는 카라바조(1571~1610)의 작품이다. 루벤스 뿐만아니라, 프랑스 로코코화가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Jean-Honoré Fragonard, 1732~1806), 낭만주의 화가 테오도르 제리코(1791~1824), 폴 세잔(1839~1906)또한 이 작품을 모작하였다.

외교관으로서도 수많은 업무를 병행한 결과 수많은 군주들과, 왕비, 대귀족들과도 교류가 많았다.

스페인의 펠리페4세(1605~1665), 영국의 찰스1세(1600~1649), 프랑스 앙리4세의 왕비이자 섭정 마리 드 메디시스(1575~1642), 루이13세의 왕비 안 도트리슈(1601~1666) , 만토바 공작 빈센초1세(1562~1612), 합스부르크의 알베르 도트리슈(1559~1621)등의 군주들과도 수많은 작품적, 외교적 교류를 하였고 펠리페4세와 찰스1세에게는 기사작위까지 받게됨. 얼마나 다들 루벤스를 아꼈으면.

 

대가는 대가를 알아보네..?

1709년 이탈리아에서 운명처럼 만나게 된 두 동갑내기 대 작곡가 헨델(1685~1759)과 스카를라티(1685~1757)처럼 루벤스도 펠리페4세 왕궁에 머물 때 그곳의 궁정화가이자 스페인 바로크 대표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1599~1660)도 만나게된다. 역시 대가들은 대가를 만나게 되는듯..?

안트베르펜에 머무르면서도, 당시 여긴 스페인 총독의 지배를 받던곳이라 루벤스가 계속해서 스페인과 수많은 군주들을 만나며 외교적 일을 보며 지역의 평화를 위해 애를 많이 써서, 12년간의 휴전(1621년)이라는 성과도 얻는 등 외교적으로도 유능한 성과를 많이 남겼다.

안트베르펜에서 1640년 통풍으로 사망하기까지 1403점이라는 작품들을 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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