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크시대 화가들/네덜란드 les Pays-Bas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Mintaka5 2024. 7. 1.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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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annes Vermeer, 1632~1675

자화상, 출처-위키피디아

출생

1632년 네덜란드 델프트에서 아버지 Reijnier Janszoon Vermeer와 어머니 Digna Baltus사이에서 둘째로 태어남(위로는 누나한명).

 

정체불명

누구에게 견습을 받았는지는 현재까지 문서가 발견되지 않아서 모르지만, 1640년대 말부터 화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다고 보면 됨. 공식기록은 1653년 델프트의 성-루가 길드의 일원으로서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여기에 가입하기위해선 6년간의 교육기간을 미리 거쳐가야하기 때문). 같은시대의 화가 렘브란트의 제자이름도 언급이되어있는등 간접적으로 렘브란트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음.

 

결혼

1653년 4월, 벽돌상인출신 부유한 카톨릭 신자집안의 카트린 볼네스와 결혼하지만, 칼뱅주의 개신교 교육을 받은 페르메이르로 인해서 처음엔 미래의 장모님이 결혼을 꺼려했지만, 결국에는 하게 됨.

와이프의 재정적 지원 덕분에 당시로서도 꽤나 부유한 삶을 살면서 작품활동을 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일까 작품에서도 급진적, 극단적으로 파장이 느껴질만한 작품이 거의 없이 원만한 파장에서 살짝살짝 튀는 정도가 다였다.

 

활동

1662년 30세의 나이로 성-루가 길드마스터로 선출되면서(최연소) 이후의 연간 3점씩 꾸준하게 그림을 그리게 된다. 이후1672년, 한스 요르단스4세(Hans IV Jordaens, 1616~1680)와 같이 헤이그에서 당시 방문중이던 브란덴부르크 귀족들에게 그림 컬렉션을 인증/판매하는 일을 맡으면서 재정적 문제를 어느정도 해결하게 됨. 

페르메이르의 그림은 색채가 매우 다양하고 강렬하진 않지만 균형있는 대비를 통해 살린 정경과 인물, 몽환적인 분위기까지 연출하며 정밀감이 아주 넘친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명암의 대비 파장이 점점 줄어드는 걸 볼 수 있음.

유명한 작품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1665). 길드마스터가 된 이후 나온 작품이다.

후원

같은 델프트 출신의 부유한 귀족 반 루이벤(Pieter van Ruijven, 1624~1674)은 단순하게 페르메이르의 후원자 사이 관계를 넘어서는 관계를 유지하게 되는데, 그의 작품을 20점이상 구매, 페르메이르 뿐만아니라 몇몇 예술가들에게 생활비등을 지원해주는등 많은 후원을 하게 됨. 그러나 이게 후일에 페르메이르의 작품성이 델프트바깥으로 더 나아가게되는 계기를 막을 줄은 알았을까,

 

루이14세... 그리고 사망

1672년 프랑스의 루이14세(Louis XIV, 1638~1715, 재위1643~1715)의 군대가 네덜란드를 침공함으로 인해 심각한 경제난을 겪게된 네덜란드였는데, 수도 암스테르담을 보호하기위한 명목으로, 운하를 터뜨리면서 주변도시의 땅이 바닷물에 잠기게되면서 농장, 부동산등에서 얻던 수익자체가 0이 되면서 비상상황에 직면하게 되는데, 1674년 든든한 후원자이던 반 루이벤마저 사망하게 되면서 더욱 상황이 악화된다.

결국, 1675년 7월에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암스테르담으로 가게되는데, 경제적으로 오는 스트레스와 개인적으로 경제상황이 더 나아질 기미도 보여지지 않자 정신적으로 괴로워하고 쇠약해져가게 되면서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사망.

가장의 죽음으로 더욱 남은 아내와 자녀들은 힘든 삶을 지속하게 됨. 이후 페르메이르가 남긴 작품, 가전등을 팔면서 어찌저찌 생활고를 해결하고자 했지만, 어렵게 살다가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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