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군주, 고위 귀족/Capétiens, 카페왕조

필리프5세 장신왕

Mintaka5 2024. 7. 17.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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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pe V le Long, 1293~1322, 재위1316~1322

필리프5세, 출처-위키피디아

출생

1293년 프랑스 파리에서 아버지 필리프4세 미남왕(Philippe IV le bel, 1268~1314, 재위1285~1314)과 어머니 잔1세 드 나바라(Jeanne Ier de Navarre, 1273~1305, 재위1274~1305)사이에서 둘째로 태어남.

위로는 형 루이10세(Louis X, 1289~1316, 재위1314~1316), 아래로는 샤를4세(Charles IV, 1294~1328, 재위1322~1328)가 있다.

 

정당성이 딸리네..

형 루이10세가 아내 클레멘스 드 헝가리(Clémence de Hongrie, 1293~1328, 재위1315~1316)가 아들 장을 임신한채 1316년 갑자기 서거하면서, 5달간의 권좌공백기동안 섭정을 맡게되는데 이후 11월에 루이10세의 유복자 장1세(Jean Ier, 1316~1316, 재위5일)가 태어나자마자 왕이되지만 5일만에 사망하고 필리프가 필리프5세(Philippe V, 1293~1322, 재위1316~1322)로서 왕좌에 오른다. 오르는 과정에서 형 루이10세의 장녀 잔느(Jeanne de Navarre, 1312~1349, 재위1328~1349)의 지지자들에 의해 반박을 받게되지만, 필리프5세는 잔의 어머니가 네슬레 탑 사건(La tour de Nesle, 1314)에 연루되어 있으며 친자관계에 대한 의심이 있다는 것을 1317년 삼부회를 통해 잔의 주장을 일축하면서 정당성을 확보하게 된다.

살리 프랑크족의 관습에 의거해 여성은 프랑스 왕위를 계승할 수 없다는 주장까지 하게되면서 계승에서 완전히 제외되는데, 이 사건으로 인해 필리프는 왕위 계승에 대한 법을 만들게 되는데 이것이 살리카 법이다(Loi de Salique). 이후 공식화되면서 오랜시간 적용되온다.

 

겨우 확보되었네..

이 삼부회가 끝나고 이듬해1318년에 왕좌에 대한 정당성이 확보된 필리프5세는 드디어 정책을 마음놓고 펼치게 되는데, 아버지 필리프4세처럼 왕권을 강화시키기 위해 왕실과 귀족의 영지의 경계를 확실하게 긋는 작업을 시작. '왕권은 양도될 수 없다'라는 원칙을 토대로, 귀족들의 영지를 확실하게 보장해주되, 잘못하면 뺏는다 라는 원칙으로 왕권을 강화시킨다.

재무장관 앙리 드 쉴리(Henri de Sully, 1282~1336)를 중용하여 쉴리를 통해 세금을 거둬들이고(보통은 재무관, 공무원등을 통해 거둬들여졌었다), 매달 쉴리는 필리프5세에게 직접 작성한 재무부 명세서를 제출, 보고하고 필리프5세또한 재무관련 총책기관이자 왕실직계기관인 회계감사원(Chambre des comptes)을 1320년에 창설하면서 더욱 왕권이 강화가 된다.

 

처남 왜 깝쳐..

필리프5세에겐 막내 여동생 이사벨(Isabelle, 1295~1358)이 있었는데, 1308년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2세(Édouard II, 1284~1327, 재위1307~1327)에게 시집을 가게되면서 왕비가 된다. 그러나 가스코뉴(프랑스 남서부 스페인국경지역)에 대한 소유로 프랑스 왕에 대한 경의를 표하지 않은 것에 대해, 필리프5세는 1319년 에드워드에게 공물을 바치라고 통보하지만 거부. 1320년에 직접 공물 바치라고 소환을 하게되면서 소환에 결국 응한 뒤에 겨우 공물을 바치게 된다.. 

공물을 바침과 동시에, 개인적으로 충성까지 맹세하게끔 하는데, 이에 에드워드는 거절하면서 프랑스와 잉글랜드 사이에 긴장이 시작되는데, 1322년 필리프가 서거한 이후에도 이 관계가 더욱 악화된다.

 

또 십자군이야?

1316년 아비뇽 유수 두번째 교황 요한22세(Ioannes PP. XXII, 1245~1334, 재위1316~1334)가 선출되는데 아버지 필리프4세때부터 아비뇽 유수 교황들은 프랑스왕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필리프는 1320년 노르망디에서 십자군을 발발시키는데(파스투로 십자군), 대규모원정은 아니고 목적이 크게 분명하지 않은 형태로서 명분또한 부족한 입장에 통제가되지않아, 

사실상 반유대주의 운동으로 전락하고 말았는데, 이에 교황 요한22세가 도대체 뭐하고있는 짓이냐고 비난을 하며 욕을 먹고난 다음에야 이 십자군을 그냥.. 진압할 수 밖에 없어 아라곤쪽으로 몰아내버리고 허무하게 끝이나버린다.

 

30살도 안된 말년

1321년 하반기부터 이질과 열병을 앓으면서 고통을 앓기시작하면서 도저히 낫지 않고 1322년이 되자마자 서거. 자식이 없었으므로 동생 샤를4세(Charles IV, 1294~1328, 재위1322~1328)가 형의 뒤를 이어 왕이된다(샤를4세를 끝으로 1328년 카페왕조 직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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